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의동 에밀리 Dec 08. 2024

Ch.10 가상세계와 원목 체스 (2)

과연 예상대로다. 지도를 펼치니 ‘밤의 올빼미의 집’에 반짝반짝 화살표가 친절하게 떠 있다. 그런데 ‘밤의 올빼미’라는 사람, 이 넓은 델피온 제국에서 바로 이 황성 안에 살고 있었다니. 랜덤으로 만난 체스 상대 치고는 우연의 일치가 굉장하다.

황성 거리를 이리저리 구경하며 향하다 보니, 조금은 더디더라도 가는 길이 재밌다. 이번에는 도로시와 제이크가 없고 다니엘라와 단둘이 다니다 보니 어쩐지 느낌도 조금 다르다. 이동할 때마다 다니엘라가 파란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며 총총 따라온다.

이윽고 ‘밤의 올빼미의 집’에 다다른다. 생각보다 규모가 크다. 잘 사는 집인가?


> 진입


~ 밤의 올빼미의 집 ~


벽난로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따스하게 타오르는 아늑한 거실이 눈에 들어온다.

털이 부드러운 골든 리트리버 한 마리가 불을 쬐고 느긋하게 누워 있다.


[다니엘라]

저어,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밤의 올빼미님.


[‘밤의 올빼미’ / 다이애나]

후후, 나야말로 반가운 손님을 맞아서 즐거운 걸요? 물론 의외의 방문이긴 했지만요.

본명은 다이애나라고 해요. 편하게 불러요.


[엘레나]

(다이애나, 다니엘라, 다니엘라, 다이애나……. 헷갈린다.)


[다니엘라]

제 이름은…….


[다이애나]

다니엘라, 맞죠?


[다니엘라]

아? 어떻게 아셨어요?


[다이애나]

체스 경기를 자주 봤어요. 푸른색 머리칼이 예쁜, 천재 체스 플레이어는 하나 뿐이고요.


[다니엘라]

헤헤, 감사해요.


[다이애나]

가끔 같이 대국을 할 때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하다고는 느꼈는데, 정말 본인일 줄은 몰랐어요. 직접 만나게 되다니, 팬으로서 영광이에요.


[다니엘라]

아, 아니에요, 저야말로 무작정 연락을 드렸는데. 환영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본인을 다이애나라고 소개한 이는 백발의 노부인이다.

인자한 얼굴로 따뜻한 홍차와 스콘을 내어주는 몸짓에서는 온화한 성품이 느껴지지만, 총기 가득한 눈에는 예리함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캐릭터 디자인만 봐도 대강 어떤 성격일지 감이 온다.


[다이애나]

같이 오신 분도 체스 선수이신가요?


[엘레나]

아, 아니에요. 저는 그저 여행자랍니다. 사제 출신의 힐러, 랄까요.


[다이애나]

사제 출신이시군요?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나이를 먹으니까 신에게 기대게 되더군요. 젊었을 때는 신앙심 같은 건 희미했던 것 같은데 말이죠, 하하.


[다니엘라]

그런데 여기, 그림이 많이 걸려 있네요.


다니엘라의 말을 끝으로, 벽에 걸린 그림들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다가가보니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그림을 구경한다


[다이애나]

그 쪽에는 제 초상화 위주로 그림들을 걸어두었는데, 대체로 시간 순서대로 놓아 두었답니다. 이 늙은이의 짧은 역사라고나 할까요?


[엘레나]

이건 마법학교 졸업사진인가요?

와……. 여기를 수석으로 졸업하셨어요?


[다이애나]

후후, 젊었을 땐 저도 한가닥 했죠. 물의 마법에는 특히 자신이 있어서, 한 때는 물을 다루는 데에 특화된 마도구로 크게 사업을 벌이기도 했고요.

마침 그 옆에 있는 그림이 회사를 처음 차렸을 때 모습이네요.


[다니엘라]

수석 졸업에, 마도구 사업까지…….

가상 체스를 둘 때는 이런 이야기를 가진 분이실 줄은 전혀 몰랐어요.


[다이애나]

사람이든 책이든, 이름과 표지만 봐서는 알 수 없는 법이죠. 일단 속을 들여다 보면 그제야 그 안에 깃든 이야기를 알게 되고 친밀감을 느끼게 된달까요?


[다니엘라]

정말 맞는 말씀이에요.


[다이애나]

여행을 하신다니 앞으로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이 지역 사람은 어떻게 사나, 저 동네 사람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나, 호기심을 가지고 직접 많이 만나 봐요. 가상 세계에서 체스만으로 이어지는 것과는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아, 얘기가 나온 김에, 가상 체스 말고 진짜 체스 한 번 어때요?


[다니엘라]

네, 좋아요!


밝고 명랑한 대답에, 다이애나가 미소 짓고는 바로 옆의 테이블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다니엘라에게 반대편에 앉으라며 손짓으로 자리를 권한다.

다니엘라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자 다이애나가 접혀 있던 테이블을 펼친다. 테이블은 금세 체스판이 된다. 체스판 아래쪽에 달린 서랍에서 다이애나가 익숙한 동작으로 체스 말들을 꺼내고, 다니엘라와 함께 하나씩 놓는다.


~ 곧 체스 경기가 시작합니다 ~


안내 멘트가 끝나자, 테이블 옆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다가가보니 선택할 수 있는 창이 뜬다.


~ 다니엘라가 움직일 말을 선택하세요 ~

> 폰

  나이트

[ 확인 ]


폰을 고르자, 다니엘라가 그에 맞게 체스판 위에서 말을 움직인다.

아니, 그런데 다니엘라는 정상급 체스 선수잖아? 내가 엉뚱한 말을 선택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뭐……. 별 일 없겠거니.


[엘레나]

우와, 그건……. 체스 전용 테이블인가요?


[다이애나]

맞아요. 옛날에는 귀족들이 주로 오락용으로 썼죠.


[다니엘라]

저도 얘기로만 들어왔는데,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에요. 신기해요.


[다이애나]

그럴만도 하죠. 대대로 델피온 제국은 실용성을 중시하는 풍토였으니까요. 이런 체스용 테이블의 생산이 많지는 않았어요.

이것도 서쪽의 오스페스 왕국에서 들여온 수입품이랍니다.


~ 다니엘라가 움직일 말을 선택하세요 ~

> 폰

  나이트

  그 밖의 말

[ 확인 ]


진짜 이거 아무거나 선택해도 상관없나?

하아, 모르겠다. 폰이 제일 무난하겠지.


[엘레나]

오스페스 왕국이라면,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 말씀이시죠?


[다이애나]

맞아요. 특히나 그 나라는 예술가 마을이 유명하다기에 가족들과 한 번 여행차 방문한 적이 있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이 멋진 테이블을 발견하게 됐고, 누가 채갈세라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했죠.

벽에 걸린 그림들 중에도 여행했을 때의 모습이 하나 있을 거예요.


다이애나의 말이 끝나자, 화살표가 다시 벽에 걸린 그림 쪽에 반짝인다.

다가가니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그림을 구경한다


[엘레나]

음, 이 그림이 그 때 인가요?


한 그림 앞에 엘레나가 멈추어 서서 묻는다. 화면이 액자 하나를 자세히 비춘다.

가운데에는 젊은 시절의 다이애나가 체스 테이블을 가리키며 씨익 웃고 있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어깨동무를 걸치고 있고, 아들과 딸이 브이를 그리고 있는 화목한 모습이다.

다이애나가 여유롭게 체스말을 움직이며 이야기를 잇는다.


[다이애나]

맞아요. 이 체스 테이블은 나름 추억의 물건인 셈이에요. 기념품이랄까요?


[엘레나]

멋지네요. 가족들과 함께 멀리 여행을 다녀오신 것도, 값비싼 가구를 기념품으로 구매하시는 것도.


~ 다니엘라가 움직일 말을 선택하세요 ~

  폰

  나이트

> 그 밖의 말

[ 확인 ]


말을 집어들기 위해 손을 든 다니엘라. 그런데 한참을 고심하며, 빈 손이 공중에 멈춰 있다.


[다니엘라]

…….


[다이애나]

다니엘라 양……?


[다니엘라]

…….


[다이애나]

다니엘라 양.


두 번째로 다니엘라의 이름을 불렀을 때, 노부인은 다니엘라가 말을 든 손을 자신의 손으로 부드럽게 감싼다.


[다니엘라]

……?!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몰입하는 바람에…….


[다이애나]

다니엘라 양, 숨 쉬어요.


[다니엘라]

……네?


[다이애나]

경기에 몰입해서 숨을 멈춘 것 같더군요.


[다니엘라]

아, 그러고 보니…….


[다이애나]

지나친 긴장은 몸에도 마음에도 좋지 않아요. 그러니 앞으로는 의식적으로라도 호흡하려고 노력해봐요.

승부에 욕심을 내는 것은 젊은이로서 가질 만한 좋은 덕목이지만, 그보다 다니엘라 양 자신이 더 중요하니까요.


[다니엘라]

그런가요…….


[다이애나]

다니엘라 양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눈 시간이 짧다 보니, 다니엘라 양에 대해서 내가 아는 바는 많지 않지만 말이지요.

아마 이토록 젊은 나이에 빛나는 성취를 거두기 위해서는, 그만큼 지금껏 위만 올려다보고 힘껏 날아올라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지만 그럴수록 땅에 단단하게 발을 디딜 줄도 알아야 해요. 그에 익숙해져야만 추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유롭게 상공을 비행할 수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죠?


[다니엘라]

…….


다니엘라는 어딘가 감동한 표정으로 체스 말을 만지작거린다.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원목 체스말에서 어떤 안정감을 느끼는 것만 같다. 일전에 다니엘라가 보여준 가상 체스는 언제든 홀연히 사라져버릴 수 있는 환영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쪽은 확실히 실재하는 체스 말처럼 단단해 보인다.


[다이애나]

훈계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젊은 시절의 나를 보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조금 했네요.


[다니엘라]

네? 잔소리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감사해요.

그 동안 수없이 가상 체스를 두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거든요.


[다이애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사실 나는 좀 후회가 되거든요. 젊었을 때, 가족이 있을 때, 좀 더 현재에 충실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고.


[엘레나]

그 말씀은…….


[다이애나]

마도구 사업이 한창 커질 즈음, 국외로 사업을 확장하려고 했어요. 그 때 나는 본사를 비울 수 없어서 남아있었고, 남편이 대리인으로 바다를 건너갔죠. 아이들도 배를 좋아해서 아빠를 따라 여행을 떠났는데, 항해 도중에 배가 폭풍을 맞아서 모두 죽어버렸지요……. 결국 나 홀로 살아남아 버렸어요.


[엘레나]

그런…….


[다이애나]

아까 그 초상화 있죠? 그 때의 여행이 우리 가족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되어 버렸어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왜 그렇게 일에 몰두했나 싶어요. 결국 지금에 와서야 모든 걸 내려놓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돌아오지는 않더군요.


[엘레나]

그런 일이 있었다니, 뭐라 위로를 드려야 할 지…….


[다니엘라]

저도…… 죄송해요. 이 체스 테이블, 소중한 추억이 깃든 물건인 줄도 모르고 덥썩 앉아버렸네요.


[다이애나]

으응, 아니에요. 이젠 다 지난 일인 걸. 덕분에 오랜만에 옛 추억도 생각나고, 이 늙은이는 기뻤답니다.

체스는 이쯤에서 그만할까요? 어차피 내가 평소처럼 또 질 게 뻔하기도 하고. 마침 오븐에 넣어 둔 반죽이 다 구워진 것 같네요.


[엘레나]

반죽이요?


[다이애나]

손님들이 오신다고 해서, 시나몬 롤을 좀 구웠거든요. 글쎄, 부족하지 않으려나 모르겠네.


[엘레나]

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계피 향이 향긋했는데. 시나몬 롤이었군요?


다이애나가 부엌 오븐에서 빵을 구운 트레이를 꺼내온다. 부족할지 모르겠다던 다이애나의 말이 무색하게, 시나몬 롤은 트레이에 한가득이다.

싱글벙글한 다이애나를 두고, 다니엘라와 엘레나가 서로 눈짓을 교환한다. 그러고는 엘레나가 다이애나에게 뭔가를 말하고, 통신구로 도로시와 제이크를 불러낸다.

도로시, 제이크, 다니엘라, 엘레나, 이렇게 네 명의 손님과 함께 다이애나가 갓 구워진 시나몬 롤을 즐긴다. 모두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는 장면으로 스토리는 끝이 난다.

다이애나의 집 현관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바로 나가기는 아쉬운데.

캐릭터들이 제각기 서 있는 집 안에서 빙글빙글 혼자 좀 돌아다니다가 현관으로 다가간다.


> 나가기


~ 델피온 황성 ~


[도로시]

와, 정말 맛있는 시나몬 롤이었어! 안 그래도 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말야~ 룰루 룰루~


[엘레나]

그러게. 눈물 범벅이 된 도로시도, 울음을 그치고 나서 또다시 맛있게 먹을 정도로 말이지.


[도로시]

아앗, 엘레나! 그건…… 너무 슬픈 이야기였잖아!

시나몬 롤은…… 시나몬 롤이었고!


[제이크]

그나저나 그 할머니, 쓸쓸해 보이면서도 대단한 사람 같더라.

인간이란 드래곤에 비해 나약하기만 한 존재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야.


[다니엘라]

드래곤?


[제이크]

아, 내가 이야기 안 했나? 우리 길드원이니까 특별히 얘기해 주는데, 나는 불의 드래곤이야.


[다니엘라]

와아, 정말?!


[도로시]

에휴. 이젠 나도 모르겠다~

다니엘라가 술 취했을 때 이미 말했던 것 같기도 하고.


[다니엘라]

글쎄, 기억이…….

아무튼, 이젠 경기에서 졌다고 해서 엄청 취해버리거나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엘레나]

그래?


[다니엘라]

응. 이제 드디어 체스판 밖의 현재를 살아가는 기분이 들기 시작했거든.

물론 내게 체스는 여전히 열정을 쏟아붓고 싶은 세계야. 나는 지금껏 자신감도, 의욕도, 성장도, 체스에서 모두 배웠거든.

그래도 어쩐지 체스판보다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졌달까……?


다니엘라의 말을 끝으로 스토리가 종료되고 플레이어블 모드로 전환된다.

이제 뭘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체력 게이지를 보니 아무래도 한숨 자고 가야 하는 상태 같다. 우선은 여행자 숙소에 다시 들러서 체력을 보충해야겠다. 그러고 나면 또 친절한 게임 시스템이 다음 목적지를 알려주겠지.

어쩐지 시나몬 롤이 먹고 싶어졌다. 웬만하면 갓 구워서 따끈하고 향긋한 걸로.


  

Ch.10 가상세계와 원목 체스

- 끝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