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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Dec 01. 2024

Ch.10 가상세계와 원목 체스 (1)

~ 여행자 숙소 ~


사파이어 상단의 마차가 멀어져가는 것을 끝으로, 스토리가 마무리된다.

다시 화면은 여행자 숙소로 돌아온다. 배고픔 게이지와 체력 게이지가 바닥이 나 있다. 스토리 시작하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낮에 채워놨어도 이 시점에서는 바닥을 찍게 되어있는 걸까?

아무튼 뭘 좀 먹고 한 숨 자라는 뜻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야겠다. 1층 라운지의 셀프바로 다가간다.


  진한 포트 커피

>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초코칩 쿠키


사실 아까 다니엘라가 마시는 걸 봤더니, 그 때부터 따뜻한 우유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우유만으로는 속이 찰 리가 없으니, 탄수화물도 집어먹어야겠지?


  진한 포트 커피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 초코칩 쿠키


음식을 선택할 때마다, 엘레나의 손에 들린 쟁반에 하나씩 아이템이 올라간다.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가 앉으니 역시나 먹는 모션이 나오면서 체력도 배고픔도 게이지가 차오른다.

하지만 체력 게이지는 예상한대로 절반을 못미치는 수준으로만 회복된다. 자러 가야 하는 타이밍이 확실하다.

다른 길드원들이 테이블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가 마음에 드는 방에 쓱 들어간다. 고양이 여관에서는 체크인을 해야 했지만,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침대에서 잠을 청해볼까나.


> 잔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아침이다. 방에는 제이크도, 다니엘라도, 도로시도, 아무도 없다. 다들 조식을 먹으러 갔나? 엘레나만 빼놓고?

긴가민가하며 1층 라운지로 내려가자, 활기차 보이는 여행객들 사이로 저 멀리 길드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이 보인다. 이미 식탁에는 각자 몫으로 아침 식사도 한 그릇씩 놓여 있다.

비어있는 한 자리에 반짝이는 화살표가 둥둥 떠 있다. 다가가 앉으니 스토리가 시작된다.


> 앉기


[제이크]

그래서.


[엘레나]

응.


[제이크]

그 친구도 이제부터 우리 길드원인 거, 맞지?


쌩쌩한 것은 기존의 길드 멤버들 뿐.

챔피언십에서 졌다며 만취 상태로 하소연하던 다니엘라만 아직 꿀잠을 자고 있다.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등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도 방에 데려가 재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엘레나]

음…….


[제이크]

이제 와서 “음”이라니? 어제 사파이어 상단주한테까지 동행이라고 얘기했잖아.


[도로시]

도로시도 마음에 들던데.

굳이 비교하자면 제이크보다 말도 더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이크]

뭐?


[엘레나]

그래도, 글쎄. 이런 식으로 무작정 길드원 수만 늘려나가도 되는 걸까? 내가 그 정도 길드마스터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엘레나의 말에 제이크가 웃음을 흘린다.


[제이크]

뭐야, 그게 고민이었어? 길드 마스터 자격이 있을지, 하는 게?


[엘레나]

왜? 난 정말인데. 지금 이렇게 셋만으로도 내가 어떤 이끄는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는데.


[제이크]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애초에 길드의 의미부터가 그런 게 아니니까.


[엘레나]

길드의 의미?


[제이크]

길드는 일종의 협동 조합이잖아? 길드 마스터는 통솔을 하고 길드원들은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조직이 아니야.


[엘레나]

흐음, 그런가…….


[도로시]

이번만큼은 제이크 말에 나도 찬성이야! 엘레나한테 모든 걸 떠맡기고 싶지는 않거든.

같이 즐겁게 여행을 하는 동행이 좋지, 한 쪽에 짐을 몰아버리는, 그런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에 또…… 극악무도한…… 아무튼 그런 모임은 도로시도 원하지 않아.


[엘레나]

극악무도, 까지……?


[제이크]

어쨌든, 그럼 된 거지, 엘레나?


[엘레나]

으응. 그렇게 얘기해주니 마음이 편하네.

그리고 그 동안 얘기를 못 했는데, 다들 고마워. 나는 사실 길드 마스터 같은 걸 맡을 줄은 몰랐거든.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지금도 이런 나를 믿고 함께해저서 고맙고.


[도로시]

에이, 무슨 소리야~

엘레나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구. 제이크가 길드 마스터라고 생각해 봐!


[제이크]

뭐야, 나는 또 왜 걸고 넘어지는 건데?


도로시와 제이크가 티격태격하려던 그 때, 졸린 눈을 비비며 다니엘라가 고개를 든다.


[엘레나]

다니엘라, 잘 잤어요?


[다니엘라]

으움, 네에……. 윽! 뻐근하네…….

핫! 제가 지난 밤에 민폐를 끼친 것 같은데……!


[도로시]

그 정도로 민폐라뇨~

이 녀석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제이크]

천사님, 도로시가 나 괴롭혀~


[엘레나]

왜, 왜 갑자기 달라붙고 그래?!


[다니엘라]

다들, 활기차 보이시네요. 부러워라…….


고개를 떨군 채 어딘가 쓸쓸한 표정이 된 다니엘라.

엘레나가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엘레나]

이제부터는 다니엘라도 동행이니까, 같이 즐겁게 여행해 봐요.

우리 길드, 들어올 거죠?


[다니엘라]

정말 그래도 되나요?


[엘레나]

풋, 안 되는 일이었더라도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으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환영해요.


~ 체스 플레이어 다니엘라 ~

새로운 길드원 확보!

“체크메이트! 너무 쉬운걸?”

[ > 확인 ]


[다니엘라]

정말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엘레나]

후훗, 여행인데 열심히까지는 괜찮아요.


[제이크]

그래 그래, 말도 편하게 하라구. 앞으로 같이 다닐 거잖아?


[다니엘라]

그, 그럼……. 잘 부탁해, 다들!


[도로시]

헤헷, 나도 잘 부탁해 다니엘라!


[엘레나]

자, 그럼 오늘은~

아침 먹고 나서 길드 등록부터 해야 하니까, 다니엘라도 어서 와서 같이 먹자.


[다니엘라]

응……!


다니엘라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밝은 미소가 얼굴 한가득, 푸른빛의 머리칼과 어울리는 환한 표정이다. 이 캐릭터는 아무래도 우울보다 이런 명랑함이 더 잘 어울린다. 드디어 본인의 모습을 찾은 것 같네.

엘레나의 말을 들으니, 길드 등록을 하러 가야 하는 모양인데. 지도를 펼치니 이번에도 반짝이는 화살표가 미리부터 마중을 나와 있다. ‘길드 관리소’라고 적힌 곳이구나.

우선 여행자 숙소를 나서본다.


~ 델피온 황성 ~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아침 같은 기분이다. 어젯밤보다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열어서 활기찬 분위기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지도를 따라 목적지로 이동한다.


~ 길드 관리소 ~


건물에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자판기……랄까, 어떤 기계장치 같은 오브젝트에 반짝이는 화살표가 둥둥 떠 있다. 중세 판타지에 자판기라니. 게다가 다가가니 싱겁게도 선택지조차 하나만 뜬다.


> 길드 등록


~ 안내 ~

길드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 > 확인 ]


뭐야? 이게 다야?

심지어 NPC를 거치지도 않다니. 힘을 뺄 때는 허무할 정도로 확 빼는 게임이네.

길드 관리소는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서 슬슬 둘러보다가 다시 거리로 나온다. 그러자 스토리가 시작된다.


~ 델피온 황성 ~


[제이크]

흐음~ 길드 등록이란 건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걸?


[도로시]

그러게, 여행자 패스는 신청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는데.


[다니엘라]

이런 거라면 누구든 길드를 얼렁뚱땅 만들 수도 있겠어.

다니엘라 길드, 제이크 길드, 도로시 길드~


[엘레나]

길드 마스터라는 거, 생각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거구나.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다니엘라]

그래도 정식 길드라고 하니, 왠지 신나!

뭐랄까, 이제 정말로 여행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기분?


[도로시]

응! 도로시도 신나!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는 다니엘라가 이렇게 밝은 성격인 줄 몰랐는데. 덕분에 길드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걸?


[다니엘라]

헤헷, 어제는 챔피언십에서 졌으니까.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경기였는데, 지고 나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구.


그 때, 다니엘라의 가방에서 무언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엘레나]

으음? 다니엘라, 가방에서 뭔가 소리가 나는데?


[다니엘라]

아아, 이건 말이지. 흐음…….


~ 당신의 선택은? ~

> “뭔지 궁금한걸?”

  “숨기는 거라도……?”

[ 확인 ]


[다니엘라]

음, 딱히 숨길 것도 아니니까…….

짠! 이거야.


[도로시]

작은 상자?


[제이크]

그러게. 처음 보는 물건인걸?


[다니엘라]

휴대용 체스판이야. 언제 어디서든 가상의 체스판을 신기루처럼 만들어주는 마도구랄까?


[엘레나]

신기하네. 그런데 진동은 계속 울리는 거야?


[다니엘라]

이 마도구는 체스판의 환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상의 플레이어를 찾아주는 매개체 역할도 해주거든. 누군가에게서 체스 신청이 들어오면 이렇게 진동하도록 되어 있어.


[도로시]

그럼 언제 어디서든 체스를 할 수 있는 거야?


[다니엘라]

프로 선수로 뛰려면 의무적으로 계속 플레이를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대국 상대들을 계속 붙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렇게 랜덤으로 누군가와 매칭될 수 있는 마도구를 들고 다니는 편이야.


[도로시]

정말 프로의 세계는 쉽지 않구나.


[다니엘라]

그리고 가끔 수준이 비슷하거나, 도전하고 싶은 플레이어를 만났다 싶으면 말이지. 따로 챙겨두었다가 지정을 해서 대국 신청을 하기도 해. 지금 신청을 걸어온 사람은, 어디 보자……. ‘밤의 올빼미’! 나랑 종종 같이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야.


[제이크]

아는 사람이야? 선수?


[다니엘라]

으음, 사실 일반인 치고는 실력이 꽤 좋아서 나도 늘 궁금해 하기는 했는데……. 아는 사람이라기에는 조금 무리이려나? 얼굴도 모르긴 하거든, 헤헷.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지금은 여행 중인데.


[제이크]

뭐,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딱히 상관 없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는 사람이잖아?


[다니엘라]

그래도, 같이 플레이하면서 지낸 사이니까…….


체스 마도구를 만지작거리는 다니엘라의 손길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체스라는 가상의 세계, 그러나 열정을 쏟아부었던 세계.


[다니엘라]

하긴, 제이크 말이 맞겠지? 어쨌든 이건 가상의 세계니까…….


[엘레나]

있잖아, 다니엘라.


[다니엘라]

응?


[엘레나]

그 마도구로 메세지도 주고받을 수 있어?


[다니엘라]

으응, 짤막한 서신 한두 줄 정도는 가능해.


[엘레나]

그럼 직접 찾아가 보자. ‘밤의 올빼미’라는 사람.


[다니엘라]

으응? 갑자기?


[엘레나]

다니엘라의 맞수였다고 하니까, 누군지 정체가 궁금한걸? 의외로 아는 사람일 지도 모르고 말이야.


[다니엘라]

으음……. 괜찮아? 나야 원래도 플레이는 같이 했었으니까, 궁금하긴 했는데. 셋은 전혀 몰랐던 사람이잖아. 귀중한 여행 시간인걸.


[엘레나]

나는 괜찮아. 어차피 뭔가 급한 목적이 있어서 하는 여행도 아닌데 뭐. 도로시랑 제이크는, 어때?


[도로시]

으응, 사실 아까부터 얘기하려고 했는데. 나는 오늘 지팡이를 좀 수리해야 할 것 같아.

동쪽 숲에서 고블린이랑 싸우다가 잘못 휘둘러서 금이 간 것 같거든. 이왕이면 황성에서 수리하고 가는 게 좋겠어.


[제이크]

나도 오늘은 좀 갈 데가 있는데.

아무래도 루비 상단 본부에 가서 골드를 좀 달라고 읍소해봐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증서만 가지고는 영 불안해서.


[다니엘라]

증서? 여행자 패스 말이야? 그걸로 루비 상단한테 골드를 받을 수 있어?


[엘레나]

제이크는 루비 상단에서 장학증서를 받았거든. 여행자 패스랑은 달라.

그런데 제이크, 그 때 상단주님이 일부러 패스로 바꿨다고 하지 않았어? 골드를 달라고 해도 어차피 거절 당할 것 같은데.


[제이크]

한 번 얘기해 보는 거지, 뭐. 안 되면 말고~


[엘레나]

굉장하네. 건투를 빌어.

그럼 나랑 다니엘라는 ‘밤의 올빼미’를 만나고 올게. 정식 길드로 등록했으니까, 이따가 통신구로 연락해서 만나자.


[도로시]

응, 이따 봐!


[제이크]

좋은 시간 보내고 와, 천사님~


[엘레나]

그럼, ‘밤의 올빼미’한테 연락을 해볼까?


엘레나의 말에, 다니엘라는 체스 마도구에 뭔가를 입력한다.

한편, 도로시와 제이크는 손을 흔들고 길을 떠난다. 저 둘 없이 돌아다니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색할 정도다.

어디 보자, 이번에도 아마 지도에 표시가 되겠지? ‘밤의 올빼미’라. Ch.10 가상세계와 원목 체스 (1)


~ 여행자 숙소 ~


사파이어 상단의 마차가 멀어져가는 것을 끝으로, 스토리가 마무리된다.

다시 화면은 여행자 숙소로 돌아온다. 배고픔 게이지와 체력 게이지가 바닥이 나 있다. 스토리 시작하기 전에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낮에 채워놨어도 이 시점에서는 바닥을 찍게 되어있는 걸까?

아무튼 뭘 좀 먹고 한 숨 자라는 뜻으로 순순히 받아들여야겠다. 1층 라운지의 셀프바로 다가간다.


  진한 포트 커피

>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초코칩 쿠키


사실 아까 다니엘라가 마시는 걸 봤더니, 그 때부터 따뜻한 우유를 먹고 싶었다……. 하지만 우유만으로는 속이 찰 리가 없으니, 탄수화물도 집어먹어야겠지?


  진한 포트 커피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 초코칩 쿠키


음식을 선택할 때마다, 엘레나의 손에 들린 쟁반에 하나씩 아이템이 올라간다. 쟁반을 들고 테이블로 돌아가 앉으니 역시나 먹는 모션이 나오면서 체력도 배고픔도 게이지가 차오른다.

하지만 체력 게이지는 예상한대로 절반을 못미치는 수준으로만 회복된다. 자러 가야 하는 타이밍이 확실하다.

다른 길드원들이 테이블에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뒤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가 마음에 드는 방에 쓱 들어간다. 고양이 여관에서는 체크인을 해야 했지만, 보통은 아닌 모양이다. 침대에서 잠을 청해볼까나.


> 잔다


자고 일어나니, 벌써 아침이다. 방에는 제이크도, 다니엘라도, 도로시도, 아무도 없다. 다들 조식을 먹으러 갔나? 엘레나만 빼놓고?

긴가민가하며 1층 라운지로 내려가자, 활기차 보이는 여행객들 사이로 저 멀리 길드원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이 보인다. 이미 식탁에는 각자 몫으로 아침 식사도 한 그릇씩 놓여 있다.

비어있는 한 자리에 반짝이는 화살표가 둥둥 떠 있다. 다가가 앉으니 스토리가 시작된다.


> 앉기


[제이크]

그래서.


[엘레나]

응.


[제이크]

그 친구도 이제부터 우리 길드원인 거, 맞지?


쌩쌩한 것은 기존의 길드 멤버들 뿐.

챔피언십에서 졌다며 만취 상태로 하소연하던 다니엘라만 아직 꿀잠을 자고 있다. 테이블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등에 담요를 덮어주는 것 외에는 아무도 방에 데려가 재우지 않았던 모양이다.


[엘레나]

음…….


[제이크]

이제 와서 “음”이라니? 어제 사파이어 상단주한테까지 동행이라고 얘기했잖아.


[도로시]

도로시도 마음에 들던데.

굳이 비교하자면 제이크보다 말도 더 통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제이크]

뭐?


[엘레나]

그래도, 글쎄. 이런 식으로 무작정 길드원 수만 늘려나가도 되는 걸까? 내가 그 정도 길드마스터 자격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엘레나의 말에 제이크가 웃음을 흘린다.


[제이크]

뭐야, 그게 고민이었어? 길드 마스터 자격이 있을지, 하는 게?


[엘레나]

왜? 난 정말인데. 지금 이렇게 셋만으로도 내가 어떤 이끄는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는데.


[제이크]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 애초에 길드의 의미부터가 그런 게 아니니까.


[엘레나]

길드의 의미?


[제이크]

길드는 일종의 협동 조합이잖아? 길드 마스터는 통솔을 하고 길드원들은 지시를 따르기만 하는, 그런 일방적인 조직이 아니야.


[엘레나]

흐음, 그런가…….


[도로시]

이번만큼은 제이크 말에 나도 찬성이야! 엘레나한테 모든 걸 떠맡기고 싶지는 않거든.

같이 즐겁게 여행을 하는 동행이 좋지, 한 쪽에 짐을 몰아버리는, 그런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에 또…… 극악무도한…… 아무튼 그런 모임은 도로시도 원하지 않아.


[엘레나]

극악무도, 까지……?


[제이크]

어쨌든, 그럼 된 거지, 엘레나?


[엘레나]

으응. 그렇게 얘기해주니 마음이 편하네.

그리고 그 동안 얘기를 못 했는데, 다들 고마워. 나는 사실 길드 마스터 같은 걸 맡을 줄은 몰랐거든. 스스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서. 지금도 이런 나를 믿고 함께해저서 고맙고.


[도로시]

에이, 무슨 소리야~

엘레나만큼 믿음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구. 제이크가 길드 마스터라고 생각해 봐!


[제이크]

뭐야, 나는 또 왜 걸고 넘어지는 건데?


도로시와 제이크가 티격태격하려던 그 때, 졸린 눈을 비비며 다니엘라가 고개를 든다.


[엘레나]

다니엘라, 잘 잤어요?


[다니엘라]

으움, 네에……. 윽! 뻐근하네…….

핫! 제가 지난 밤에 민폐를 끼친 것 같은데……!


[도로시]

그 정도로 민폐라뇨~

이 녀석을 생각하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제이크]

천사님, 도로시가 나 괴롭혀~


[엘레나]

왜, 왜 갑자기 달라붙고 그래?!


[다니엘라]

다들, 활기차 보이시네요. 부러워라…….


고개를 떨군 채 어딘가 쓸쓸한 표정이 된 다니엘라.

엘레나가 곁으로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린다.


[엘레나]

이제부터는 다니엘라도 동행이니까, 같이 즐겁게 여행해 봐요.

우리 길드, 들어올 거죠?


[다니엘라]

정말 그래도 되나요?


[엘레나]

풋, 안 되는 일이었더라도 그렇게 반짝이는 눈을 하고 있으면 누구도 거절하지 못하겠어요.

환영해요.


~ 체스 플레이어 다니엘라 ~

새로운 길드원 확보!

“체크메이트! 너무 쉬운걸?”

[ > 확인 ]


[다니엘라]

정말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


[엘레나]

후훗, 여행인데 열심히까지는 괜찮아요.


[제이크]

그래 그래, 말도 편하게 하라구. 앞으로 같이 다닐 거잖아?


[다니엘라]

그, 그럼……. 잘 부탁해, 다들!


[도로시]

헤헷, 나도 잘 부탁해 다니엘라!


[엘레나]

자, 그럼 오늘은~

아침 먹고 나서 길드 등록부터 해야 하니까, 다니엘라도 어서 와서 같이 먹자.


[다니엘라]

응……!


다니엘라의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밝은 미소가 얼굴 한가득, 푸른빛의 머리칼과 어울리는 환한 표정이다. 이 캐릭터는 아무래도 우울보다 이런 명랑함이 더 잘 어울린다. 드디어 본인의 모습을 찾은 것 같네.

엘레나의 말을 들으니, 길드 등록을 하러 가야 하는 모양인데. 지도를 펼치니 이번에도 반짝이는 화살표가 미리부터 마중을 나와 있다. ‘길드 관리소’라고 적힌 곳이구나.

우선 여행자 숙소를 나서본다.


~ 델피온 황성 ~


새로운 도시에서 맞는 아침 같은 기분이다. 어젯밤보다 오가는 사람들도 많고, 가게들도 모두 문을 열어서 활기찬 분위기다.

여기저기 구경하면서, 지도를 따라 목적지로 이동한다.


~ 길드 관리소 ~


건물에 들어서자, 나무로 만든 자판기……랄까, 어떤 기계장치 같은 오브젝트에 반짝이는 화살표가 둥둥 떠 있다. 중세 판타지에 자판기라니. 게다가 다가가니 싱겁게도 선택지조차 하나만 뜬다.


> 길드 등록


~ 안내 ~

길드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 > 확인 ]


뭐야? 이게 다야?

심지어 NPC를 거치지도 않다니. 힘을 뺄 때는 허무할 정도로 확 빼는 게임이네.

길드 관리소는 딱히 구경할 것도 없어서 슬슬 둘러보다가 다시 거리로 나온다. 그러자 스토리가 시작된다.


~ 델피온 황성 ~


[제이크]

흐음~ 길드 등록이란 건 생각보다 빨리 끝나는걸?


[도로시]

그러게, 여행자 패스는 신청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는데.


[다니엘라]

이런 거라면 누구든 길드를 얼렁뚱땅 만들 수도 있겠어.

다니엘라 길드, 제이크 길드, 도로시 길드~


[엘레나]

길드 마스터라는 거, 생각보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거구나. 너무 어렵게 생각했나?


[다니엘라]

그래도 정식 길드라고 하니, 왠지 신나!

뭐랄까, 이제 정말로 여행이 우릴 기다리고 있는 기분?


[도로시]

응! 도로시도 신나!

그나저나 처음 봤을 때는 다니엘라가 이렇게 밝은 성격인 줄 몰랐는데. 덕분에 길드 분위기가 확 살아나는걸?


[다니엘라]

헤헷, 어제는 챔피언십에서 졌으니까. 오랫동안 열심히 준비해 온 경기였는데, 지고 나니까 너무 속상하더라구.


그 때, 다니엘라의 가방에서 무언가 진동하는 소리가 들린다.


[엘레나]

으음? 다니엘라, 가방에서 뭔가 소리가 나는데?


[다니엘라]

아아, 이건 말이지. 흐음…….


~ 당신의 선택은? ~

> “뭔지 궁금한걸?”

  “숨기는 거라도……?”

[ 확인 ]


[다니엘라]

음, 딱히 숨길 것도 아니니까…….

짠! 이거야.


[도로시]

작은 상자?


[제이크]

그러게. 처음 보는 물건인걸?


[다니엘라]

휴대용 체스판이야. 언제 어디서든 가상의 체스판을 신기루처럼 만들어주는 마도구랄까?


[엘레나]

신기하네. 그런데 진동은 계속 울리는 거야?


[다니엘라]

이 마도구는 체스판의 환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가상의 플레이어를 찾아주는 매개체 역할도 해주거든. 누군가에게서 체스 신청이 들어오면 이렇게 진동하도록 되어 있어.


[도로시]

그럼 언제 어디서든 체스를 할 수 있는 거야?


[다니엘라]

프로 선수로 뛰려면 의무적으로 계속 플레이를 해야 하니까. 그렇다고 해서 대국 상대들을 계속 붙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이렇게 랜덤으로 누군가와 매칭될 수 있는 마도구를 들고 다니는 편이야.


[도로시]

정말 프로의 세계는 쉽지 않구나.


[다니엘라]

그리고 가끔 수준이 비슷하거나, 도전하고 싶은 플레이어를 만났다 싶으면 말이지. 따로 챙겨두었다가 지정을 해서 대국 신청을 하기도 해. 지금 신청을 걸어온 사람은, 어디 보자……. ‘밤의 올빼미’! 나랑 종종 같이 플레이를 하는 사람이야.


[제이크]

아는 사람이야? 선수?


[다니엘라]

으음, 사실 일반인 치고는 실력이 꽤 좋아서 나도 늘 궁금해 하기는 했는데……. 아는 사람이라기에는 조금 무리이려나? 얼굴도 모르긴 하거든, 헤헷.

그나저나 이를 어쩐다? 지금은 여행 중인데.


[제이크]

뭐,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딱히 상관 없지 않을까 싶은데. 모르는 사람이잖아?


[다니엘라]

그래도, 같이 플레이하면서 지낸 사이니까…….


체스 마도구를 만지작거리는 다니엘라의 손길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체스라는 가상의 세계, 그러나 열정을 쏟아부었던 세계.


[다니엘라]

하긴, 제이크 말이 맞겠지? 어쨌든 이건 가상의 세계니까…….


[엘레나]

있잖아, 다니엘라.


[다니엘라]

응?


[엘레나]

그 마도구로 메세지도 주고받을 수 있어?


[다니엘라]

으응, 짤막한 서신 한두 줄 정도는 가능해.


[엘레나]

그럼 직접 찾아가 보자. ‘밤의 올빼미’라는 사람.


[다니엘라]

으응? 갑자기?


[엘레나]

다니엘라의 맞수였다고 하니까, 누군지 정체가 궁금한걸? 의외로 아는 사람일 지도 모르고 말이야.


[다니엘라]

으음……. 괜찮아? 나야 원래도 플레이는 같이 했었으니까, 궁금하긴 했는데. 셋은 전혀 몰랐던 사람이잖아. 귀중한 여행 시간인걸.


[엘레나]

나는 괜찮아. 어차피 뭔가 급한 목적이 있어서 하는 여행도 아닌데 뭐. 도로시랑 제이크는, 어때?


[도로시]

으응, 사실 아까부터 얘기하려고 했는데. 나는 오늘 지팡이를 좀 수리해야 할 것 같아.

동쪽 숲에서 고블린이랑 싸우다가 잘못 휘둘러서 금이 간 것 같거든. 이왕이면 황성에서 수리하고 가는 게 좋겠어.


[제이크]

나도 오늘은 좀 갈 데가 있는데.

아무래도 루비 상단 본부에 가서 골드를 좀 달라고 읍소해봐야 할 것 같단 말이지. 증서만 가지고는 영 불안해서.


[다니엘라]

증서? 여행자 패스 말이야? 그걸로 루비 상단한테 골드를 받을 수 있어?


[엘레나]

제이크는 루비 상단에서 장학증서를 받았거든. 여행자 패스랑은 달라.

그런데 제이크, 그 때 상단주님이 일부러 패스로 바꿨다고 하지 않았어? 골드를 달라고 해도 어차피 거절 당할 것 같은데.


[제이크]

한 번 얘기해 보는 거지, 뭐. 안 되면 말고~


[엘레나]

굉장하네. 건투를 빌어.

그럼 나랑 다니엘라는 ‘밤의 올빼미’를 만나고 올게. 정식 길드로 등록했으니까, 이따가 통신구로 연락해서 만나자.


[도로시]

응, 이따 봐!


[제이크]

좋은 시간 보내고 와, 천사님~


[엘레나]

그럼, ‘밤의 올빼미’한테 연락을 해볼까?


엘레나의 말에, 다니엘라는 체스 마도구에 뭔가를 입력한다.

한편, 도로시와 제이크는 손을 흔들고 길을 떠난다. 저 둘 없이 돌아다니는 건 너무 오랜만이라서 어색할 정도다.

어디 보자, 이번에도 아마 지도에 표시가 되겠지? ‘밤의 올빼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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