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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Nov 24. 2024

Ch.09 프로의 패배와 일의 의미

여행자 숙소를 찾아보려 지도를 펼쳐보니,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미 여행자 숙소로 보이는 장소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친절한 화살표를 참고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밤이라 그런지 확실히 낮에 비해 길가의 인파가 줄었다. 그래도 황성은 황성인지, 인적이 아주 드물지는 않다. 정말로 유럽 어느 도시의 밤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다.

여행자 숙소 입구가 보이는 지점에 다다르자,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도로시]

하앙~ 정말 맛있는 요리들이었어!


[제이크]

꼬마 마녀님도 빨리 어른이 되어서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요리도 요리지만, 와인이 인상적이었거든. 역시 와이너리 레스토랑이라 그런가?


[도로시]

흐음, 궁금하긴 해. 술은 무슨 맛일까?

그치만 술 말고도 맛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와인이든 럼주든 그런 건 나중으로 아껴둬야지~


[엘레나]

후훗, 도로시는 여행자 패스로 식도락 여행을 다니겠네.


[도로시]

응, 엄청 기대 중인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은 전부~


[제이크]

잠깐만. 저기 누가 쓰러져 있어.


[엘레나]

저건……?


여행자 숙소 건물의 옆골목에, 로브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도로시]

주, 죽은 건가?!


[제이크]

아냐, 살아 있어.


[엘레나]

멀쩡한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이는 거 아니야……?


스토리가 잠시 멈추고, 로브 낭인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아무리 봐도 저거 다니엘라다.

이렇게 또 길드원 하나가 확보되는 건가? 그런데 길드에 체스 선수를 넣어서 뭘 어쩌려는 걸까. 체스 선수를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쓸 수가 있나?

어쨌든 다가가니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흔들어서 깨워 본다


[엘레나]

저기요. 괜찮아요?


[ ? ? ? ]

으으…… 누구…….


[엘레나]

푸앗, 술냄새가 지독하네.

어라…… 당신은?!


[도로시]

이 사람, 그 체스 선수잖아?!


뒤집어 쓴 로브 아래로 역시나 다니엘라의 모습이 보인다.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가 독특해서 잊을 수가 없다. 체스 선수만 아니었어도 물 속성 마법사라고 추측하기 쉬운 외양이다.


[엘레나]

저기, 정신 차려봐요. 일어설 수 있어요?


[다니엘라]

…….


[엘레나]

반응이 없네.

이제 정말 죽은 건가?


[제이크]

아니, 잠들었어.


[도로시]

방금 진심으로 한 말 같았는데…….

엘레나야말로 극단적이잖아?


[제이크]

성가신 사람이네. 우리 편 선수도 아닌데, 그냥 버리고 갈까?


[엘레나]

아니, 버리고 갔다가 진짜 죽으면 어떡해. 그런 건 찜찜한데.


[제이크]

찜찜한 게 이유인 거야……?


[도로시]

그럼 일단 숙소로 데리고 갈까?


[엘레나]

그러자.


[도로시]

그렇다면 제이크, 이 사람 좀 업어다줘.


[제이크]

아니 왜 나야……?! 나는 버리고 가자는 주의인데.


[도로시]

불의 드래곤은 다트만 던져도 벽을 뚫는다며? 그 힘 뒀다가 어디 쓰려구.


[제이크]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부려먹는 거야?


[도로시]

엘레나, 비협조적인 길드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엘레나]

흐음, 확실히 재고의 여지가…….


[제이크]

알았어, 알았어.


셋은 그렇게 투덜거리는 제이크를 어르고 달래서 다니엘라를 들처업게 한다. 어쩐지 ‘들처업는다’기 보다는 ‘줍는다’는 표현이 더 맞아 보인다.

스토리가 끝나고, 엘레나를 움직여 여행자 숙소로 들어선다.


~ 여행자 숙소 ~


1층은 보아하니 라운지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테이블과 의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벽면에는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조용히 타오른다. 대체로 소박하게 꾸민 공간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준다.

아직 잠에 들지 못한 몇몇 여행자가 가벼운 안주를 나누어 먹거나 카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어있는 한 테이블에 화살표가 반짝여서 다가가 본다.


> 앉기


테이블에 앉으니 역시나 스토리가 재개된다.


[다니엘라]

으으, 여기가 어디…….


[엘레나]

여행자 숙소예요. 급한대로 데려왔어요.


[다니엘라]

여행자 숙소, 라고요…….?


[엘레나]

네. 이제 정신이 들어요?


[다니엘라]

그렇다면 당신들도…… 여행자 패스를……?


[엘레나]

네? 그건 맞긴 한데.


[다니엘라]

그, 그럼, 저도! 여행자 그룹에 끼워주세요!


[엘레나]

에?


[도로시]

다짜고짜 뭐라는 거야, 이 사람?


[제이크]

이런, 신입 입장에서 웬만하면 거들어주고 싶지만.

술 냄새를 풍기면서 그렇게 얘기해 봤자…….


[다니엘라]

역시…… 체스에서 이기지 못하는 나는 쓸모없나요?


[엘레나]

네? 그건 또 무슨 말……?


[다니엘라]

으흑, 우아앙……!!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다니엘라 선수. 구슬같은 눈물이 도록도록 방울지며 떨어진다.


[도로시]

어, 어쩌지?


[제이크]

이렇게 울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천사님, 내가 달래보고 있을 테니까 저기서 데운 우유 한 컵만 가져다 줄래?


제이크의 요청과 함께 스토리가 중단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 테이블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가 보니 쿠키며 커피같은 기본적인 다과가 놓여 있다. 출출하면 아무나 마음껏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라운지라니, 최곤데?


  진한 포트 커피

>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초코칩 쿠키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제이크에게 돌아가자, 스토리가 이어진다.


[제이크]

고마워.

자, 이거 한 입 마셔봐요.


[다니엘라]

흐윽, 끅…….


[제이크]

괜찮아요, 괜찮아.


[엘레나]

잘 달래주네…….


제이크가 다니엘라의 어깨를 한 쪽 팔로 감싸고 토닥여준다. 다니엘라의 흐느끼는 소리도 차츰 줄어든다.


[도로시]

우우……. 난 역시 이 연애 반댈세야.

절대 넘어가지 마, 엘레나.


[엘레나]

그 헛소리를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어?


[제이크]

헛소리라니? 이미 사내연애 중이잖아.


[엘레나]

뭐? 누구 맘대로?!

아무튼 둘 다 그만…….


[다니엘라]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어느 새 울음을 그치고, 부러운 눈으로 엘레나 일행을 바라보는 다니엘라.

그 눈빛에 일행이 투닥거리기를 멈춘다.


[엘레나]

그러고 보니, 아까 여행자 그룹에 끼워달라고 하셨죠?


[다니엘라]

네. 하지만 쓸모 없다면…….


[엘레나]

자신이 쓸모 없다느니, 그런 말은 섣불리 하지 말아요.

보아하니 최상위 체스 선수 치고는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뭐가 그렇게 속상해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그 때, 문이 열리고 두 남성이 라운지로 들어온다. 제이크가 알은체를 한다.


[제이크]

보호자들께서 오셨구만?


[엘레나]

보호자?


[제이크]

사파이어 상단 좌석에 있었던 사람들이잖아. 한 명은 그 쪽 상단주인 것 같은데?


~ 당신의 선택은? ~

> “혹시 이 사람을 찾으시나요?”

  (일단 담요라도 뒤집어 씌워서 숨겨볼까……)

[ 확인 ]


[토비어스]

상단주님, 찾았습니다!


[윌라드]

여기 있었구만?


[다니엘라]

상단주님? 여긴 어떻게……?


[윌라드]

어떻게라니? 상단의 정보망을 뭘로 아는 거야.

그런데 이 사람들, 루비 상단 쪽에 앉아있었지 않았어? 다니엘라, 챔피언십 끝났다고 벌써 이적하는 거야?


[엘레나]

저희는 루비 상단원이 아니에요. 멜리사님 초대로 경기를 같이 봤을 뿐이에요.


[윌라드]

아아, 그렇군요.

이것 참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대회 끝나고 사라져버렸길래 그만.


[엘레나]

뭐……. 괜찮습니다.


[윌라드]

소개가 늦었습니다. 사파이어 상단의 상단주, 윌라드라고 합니다. 이 쪽은 제 수행비서, 토비어스라고 하고요.


[토비어스]

처음 뵙겠습니다.


[엘레나]

안녕하세요. 저는 엘레나라고 해요.

이 쪽은 저희 길드원들, 도로시, 제이크라고 하고요.


[윌라드]

네……. 보아하니 이 친구가 신세를 진 것 같군요.


~ 당신의 선택은? ~

  쓰러져 있어서 지나칠 수 없었어요.

> 길에서 주웠을 뿐이에요.

[ 확인 ]


[윌라드]

이거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후, 술은 또 왜 이렇게 마셨어?


[다니엘라]

제가…… 제가 졌어요.


[윌라드]

그래서 이렇게 풀이 죽은 거야?


[다니엘라]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말로, 다 포기하고 체스에만 매달렸는데, 그런데…….


[윌라드]

그런데?


[다니엘라]

그런데도 챔피언 자리를 빼앗겨 버렸어요.


[윌라드]

흐음……


[다니엘라]

여태껏 스스로 체스만큼은 일인자라고 생각하면서 달려왔는데, 딱히 체스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가 봐요…….


[윌라드]

그래. 챔피언 자리를 뺏긴 건 사실이지.

하지만 소질이 없다는 건 틀렸어.


[다니엘라]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


[윌라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뿐이야. 만약 네가 소질이 없었다면,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우리 사파이어 상단이 대표 선수로 뽑았을까?


[다니엘라]

그건…….


[윌라드]

그리고 여행자 패스를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여기 있는 분들이랑 동행할 생각이야?


~ 당신의 선택은? ~

> 저희랑 동행이라니요?

  눈치가 빠르시네요.

[ 확인 ]


[다니엘라]

동행이라니, 그걸 상단주님께서 어떻게……?


[토비어스]

사파이어 상단이 모르는 정보는 없답니다, 다니엘라 님.


[제이크]

잠깐, 아직 우린 동행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윌라드]

여행자 패스는 낮에 이미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떠나는 건 확정이 아닌가 보네.


[다니엘라]

네……. 그치만 바로 떠날 생각은 아니었어요!

저를 믿고 대표로 선발해 주신 사파이어 상단인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떠나겠어요? 게다가 지금 저 말고는 바로 뛸 선수도 없고…….

여행자 패스는 발급 받고 바로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음, 또 반드시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좀 상황을 봐서…….


[윌라드]

무슨 소리야? 갈 거면 빨리 떠나야지.


[다니엘라]

네?


[윌라드]

상단한테 미안해서라면, 걱정할 것 없어. 선수 하나 빠진다고 해서 상단이 무너지진 않아.


[다니엘라]

상단주님…….


[윌라드]

체스 선수이기 전에 한 명의 젊은이잖아? 앞날 창창한 사람을 체스라는 한정된 세계에 꾸역꾸역 가둬놓는 악덕 상단주가 될 생각은 없어.


[제이크]

엘레나, 이 사람……. 루비 상단주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않아?


[윌라드]

체스에서 활력을 얻는 건 좋지만, 본인의 존재 의의 자체를 체스에 의존하지는 마. 그런 건 잘 될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는 법이야.


[다니엘라]

……으흑, 으허엉!


[윌라드]

아니, 왜 울고 그래? 떠나면 바로 대타 투입해서 다음 시즌 준비시키고 있을 거니까 서운해하지나 말라고.


[다니엘라]

흑, 고마워요…… 흐어엉…….


두 번째로 울음을 터뜨린 다니엘라. 아까와 같이 제이크가 능숙하게 달래준다.

다니엘라가 실컷 울고 나서야 사파이어 상단주와 수행비서가 자리를 뜬다.


[토비어스]

엘레나 님이라고 하셨나요?

모쪼록, 다니엘라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윌라드]

언제든 상단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저희 지부를 통해 연락 주시지요.

파란색 사파이어 표시를 찾으시면 편할 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상단주와 수행비서가 여행자 숙소를 나서자, 다니엘라가 입을 연다.


[다니엘라]

저어…… 죄송해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 제가 다짜고짜…….


[엘레나]

뭐,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길드는 원래 그렇게 들어오거든요.


[다니엘라]

네?


[엘레나]

마침 내일 정식으로 길드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여행자 패스는 받았어요?


[다니엘라]

네…….


[엘레나]

오늘 하루 힘들었을 테니까 우선은 푹 쉬고요.

우유 남은 것 천천히 마시고, 내일 봐요.


[다니엘라]

네…… 네!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는 눈으로, 생글생글 웃는 다니엘라.

한편, 화면은 여행자 숙소 앞으로 전환된다. 사파이어 상단주와 그의 수행비서가 전용마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토비어스]

이젠 어쩌죠, 상단주님?

다니엘라가 워낙 독보적이었어서 웬만한 최상위 선수들은 진작에 다른 상단들 대표급 자리로 빠져나가고 없는데.


[윌라드]

토비어스.


[토비어스]

네?


[윌라드]

체스 배워볼 생각 없나?


[토비어스]

상단주님~!


[윌라드]

왜? 우리 이제 내년 경기 준비해야지.


[토비어스]

말도 안되는 농담 마세요.


[윌라드]

자네 무대공포증라도 있었나?

뭐, 그럼 다른 수를 알아봐야겠네.


[토비어스]

휴우……. 상단주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그 천재소녀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실 줄은…….


[윌라드]

본인이 체스 선수가 될 생각이 없다면, 체스 선수를 뽑는 오디션을 준비해주게.


[토비어스]

……오디션이요?


[윌라드]

아예 내년 대표 자리를 놓고 공개 오디션을 하자구. 체스 경기 해봤자 매니아들 티켓값만 벌었잖아?

상금까지 두둑하게 걸면, 체스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달려들 거야. 우린 그렇게 모인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티켓을 파는 거지.

그리고 인기 있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악수회를 연다거나, 오디션에 쓰이는 체스판은 따로 한정판 세트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볼 수도 있겠어.


[토비어스]

이걸 또 이렇게 푸시다니…….


[윌라드]

다니엘라가 쉰다니 다음 챔피언십은 루비 상단이 가져가겠지만, 아쉬운 대로 우리도 살 길을 찾아야지 어쩌겠나?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도 모험을 좀 해봐야겠어. 다니엘라 그 친구, 체스판에서 본인이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어쩐지 겹쳐져서 말이지.

열심인 것은 좋지만, 자기가 설정한 틀 안에서 괴로워하는 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래도 좀 손해 같달까…….

아, 마차가 도착했군.


사파이어 상단의 상단주 윌라드와 그의 수행비서 토비어스의 대화가 끝난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여행자 숙소에서 멀어져 간다.



  

Ch.09 프로의 패배와 일의 의미

- 끝 -

Ch.09 프로의 패배와 일의 의미


여행자 숙소를 찾아보려 지도를 펼쳐보니,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미 여행자 숙소로 보이는 장소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친절한 화살표를 참고해서 목적지로 향한다. 밤이라 그런지 확실히 낮에 비해 길가의 인파가 줄었다. 그래도 황성은 황성인지, 인적이 아주 드물지는 않다. 정말로 유럽 어느 도시의 밤거리를 거니는 기분이다.

여행자 숙소 입구가 보이는 지점에 다다르자, 스토리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도로시]

하앙~ 정말 맛있는 요리들이었어!


[제이크]

꼬마 마녀님도 빨리 어른이 되어서 술을 마실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요리도 요리지만, 와인이 인상적이었거든. 역시 와이너리 레스토랑이라 그런가?


[도로시]

흐음, 궁금하긴 해. 술은 무슨 맛일까?

그치만 술 말고도 맛있는 게 이렇게 많은데, 와인이든 럼주든 그런 건 나중으로 아껴둬야지~


[엘레나]

후훗, 도로시는 여행자 패스로 식도락 여행을 다니겠네.


[도로시]

응, 엄청 기대 중인걸!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각 지역의 맛있는 음식들은 전부~


[제이크]

잠깐만. 저기 누가 쓰러져 있어.


[엘레나]

저건……?


여행자 숙소 건물의 옆골목에, 로브를 뒤집어 쓴 누군가가 쓰러져 있다.


[도로시]

주, 죽은 건가?!


[제이크]

아냐, 살아 있어.


[엘레나]

멀쩡한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이는 거 아니야……?


스토리가 잠시 멈추고, 로브 낭인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아무리 봐도 저거 다니엘라다.

이렇게 또 길드원 하나가 확보되는 건가? 그런데 길드에 체스 선수를 넣어서 뭘 어쩌려는 걸까. 체스 선수를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쓸 수가 있나?

어쨌든 다가가니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 흔들어서 깨워 본다


[엘레나]

저기요. 괜찮아요?


[ ? ? ? ]

으으…… 누구…….


[엘레나]

푸앗, 술냄새가 지독하네.

어라…… 당신은?!


[도로시]

이 사람, 그 체스 선수잖아?!


뒤집어 쓴 로브 아래로 역시나 다니엘라의 모습이 보인다.

파란 머리카락에 파란 눈동자가 독특해서 잊을 수가 없다. 체스 선수만 아니었어도 물 속성 마법사라고 추측하기 쉬운 외양이다.


[엘레나]

저기, 정신 차려봐요. 일어설 수 있어요?


[다니엘라]

…….


[엘레나]

반응이 없네.

이제 정말 죽은 건가?


[제이크]

아니, 잠들었어.


[도로시]

방금 진심으로 한 말 같았는데…….

엘레나야말로 극단적이잖아?


[제이크]

성가신 사람이네. 우리 편 선수도 아닌데, 그냥 버리고 갈까?


[엘레나]

아니, 버리고 갔다가 진짜 죽으면 어떡해. 그런 건 찜찜한데.


[제이크]

찜찜한 게 이유인 거야……?


[도로시]

그럼 일단 숙소로 데리고 갈까?


[엘레나]

그러자.


[도로시]

그렇다면 제이크, 이 사람 좀 업어다줘.


[제이크]

아니 왜 나야……?! 나는 버리고 가자는 주의인데.


[도로시]

불의 드래곤은 다트만 던져도 벽을 뚫는다며? 그 힘 뒀다가 어디 쓰려구.


[제이크]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부려먹는 거야?


[도로시]

엘레나, 비협조적인 길드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엘레나]

흐음, 확실히 재고의 여지가…….


[제이크]

알았어, 알았어.


셋은 그렇게 투덜거리는 제이크를 어르고 달래서 다니엘라를 들처업게 한다. 어쩐지 ‘들처업는다’기 보다는 ‘줍는다’는 표현이 더 맞아 보인다.

스토리가 끝나고, 엘레나를 움직여 여행자 숙소로 들어선다.


~ 여행자 숙소 ~


1층은 보아하니 라운지다. 나무로 만든 투박한 테이블과 의자가 여기저기 놓여 있다. 벽면에는 모닥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조용히 타오른다. 대체로 소박하게 꾸민 공간이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을 준다.

아직 잠에 들지 못한 몇몇 여행자가 가벼운 안주를 나누어 먹거나 카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비어있는 한 테이블에 화살표가 반짝여서 다가가 본다.


> 앉기


테이블에 앉으니 역시나 스토리가 재개된다.


[다니엘라]

으으, 여기가 어디…….


[엘레나]

여행자 숙소예요. 급한대로 데려왔어요.


[다니엘라]

여행자 숙소, 라고요…….?


[엘레나]

네. 이제 정신이 들어요?


[다니엘라]

그렇다면 당신들도…… 여행자 패스를……?


[엘레나]

네? 그건 맞긴 한데.


[다니엘라]

그, 그럼, 저도! 여행자 그룹에 끼워주세요!


[엘레나]

에?


[도로시]

다짜고짜 뭐라는 거야, 이 사람?


[제이크]

이런, 신입 입장에서 웬만하면 거들어주고 싶지만.

술 냄새를 풍기면서 그렇게 얘기해 봤자…….


[다니엘라]

역시…… 체스에서 이기지 못하는 나는 쓸모없나요?


[엘레나]

네? 그건 또 무슨 말……?


[다니엘라]

으흑, 우아앙……!!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다니엘라 선수. 구슬같은 눈물이 도록도록 방울지며 떨어진다.


[도로시]

어, 어쩌지?


[제이크]

이렇게 울면 마음이 약해지는데.

천사님, 내가 달래보고 있을 테니까 저기서 데운 우유 한 컵만 가져다 줄래?


제이크의 요청과 함께 스토리가 중단된다.

주위를 둘러보니 바 테이블 쪽에 화살표가 반짝인다. 가 보니 쿠키며 커피같은 기본적인 다과가 놓여 있다. 출출하면 아무나 마음껏 음식을 가져다 먹을 수 있는 라운지라니, 최곤데?


  진한 포트 커피

> 따뜻한 우유

  달콤한 핫초코

  바삭한 나초칩

  초코칩 쿠키


우유 한 잔을 가지고 제이크에게 돌아가자, 스토리가 이어진다.


[제이크]

고마워.

자, 이거 한 입 마셔봐요.


[다니엘라]

흐윽, 끅…….


[제이크]

괜찮아요, 괜찮아.


[엘레나]

잘 달래주네…….


제이크가 다니엘라의 어깨를 한 쪽 팔로 감싸고 토닥여준다. 다니엘라의 흐느끼는 소리도 차츰 줄어든다.


[도로시]

우우……. 난 역시 이 연애 반댈세야.

절대 넘어가지 마, 엘레나.


[엘레나]

그 헛소리를 아직도 신경 쓰고 있었어?


[제이크]

헛소리라니? 이미 사내연애 중이잖아.


[엘레나]

뭐? 누구 맘대로?!

아무튼 둘 다 그만…….


[다니엘라]

다들, 사이가 좋아 보이시네요.


어느 새 울음을 그치고, 부러운 눈으로 엘레나 일행을 바라보는 다니엘라.

그 눈빛에 일행이 투닥거리기를 멈춘다.


[엘레나]

그러고 보니, 아까 여행자 그룹에 끼워달라고 하셨죠?


[다니엘라]

네. 하지만 쓸모 없다면…….


[엘레나]

자신이 쓸모 없다느니, 그런 말은 섣불리 하지 말아요.

보아하니 최상위 체스 선수 치고는 나이도 많지 않아 보이는데, 뭐가 그렇게 속상해서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요?


그 때, 문이 열리고 두 남성이 라운지로 들어온다. 제이크가 알은체를 한다.


[제이크]

보호자들께서 오셨구만?


[엘레나]

보호자?


[제이크]

사파이어 상단 좌석에 있었던 사람들이잖아. 한 명은 그 쪽 상단주인 것 같은데?


~ 당신의 선택은? ~

> “혹시 이 사람을 찾으시나요?”

  (일단 담요라도 뒤집어 씌워서 숨겨볼까……)

[ 확인 ]


[토비어스]

상단주님, 찾았습니다!


[윌라드]

여기 있었구만?


[다니엘라]

상단주님? 여긴 어떻게……?


[윌라드]

어떻게라니? 상단의 정보망을 뭘로 아는 거야.

그런데 이 사람들, 루비 상단 쪽에 앉아있었지 않았어? 다니엘라, 챔피언십 끝났다고 벌써 이적하는 거야?


[엘레나]

저희는 루비 상단원이 아니에요. 멜리사님 초대로 경기를 같이 봤을 뿐이에요.


[윌라드]

아아, 그렇군요.

이것 참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대회 끝나고 사라져버렸길래 그만.


[엘레나]

뭐……. 괜찮습니다.


[윌라드]

소개가 늦었습니다. 사파이어 상단의 상단주, 윌라드라고 합니다. 이 쪽은 제 수행비서, 토비어스라고 하고요.


[토비어스]

처음 뵙겠습니다.


[엘레나]

안녕하세요. 저는 엘레나라고 해요.

이 쪽은 저희 길드원들, 도로시, 제이크라고 하고요.


[윌라드]

네……. 보아하니 이 친구가 신세를 진 것 같군요.


~ 당신의 선택은? ~

  쓰러져 있어서 지나칠 수 없었어요.

> 길에서 주웠을 뿐이에요.

[ 확인 ]


[윌라드]

이거 참,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어후, 술은 또 왜 이렇게 마셨어?


[다니엘라]

제가…… 제가 졌어요.


[윌라드]

그래서 이렇게 풀이 죽은 거야?


[다니엘라]

저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정말로, 다 포기하고 체스에만 매달렸는데, 그런데…….


[윌라드]

그런데?


[다니엘라]

그런데도 챔피언 자리를 빼앗겨 버렸어요.


[윌라드]

흐음……


[다니엘라]

여태껏 스스로 체스만큼은 일인자라고 생각하면서 달려왔는데, 딱히 체스에 소질이 있는 것도 아닌가 봐요…….


[윌라드]

그래. 챔피언 자리를 뺏긴 건 사실이지.

하지만 소질이 없다는 건 틀렸어.


[다니엘라]

위로해 주시는…… 건가요?


[윌라드]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할 뿐이야. 만약 네가 소질이 없었다면, 이익을 철저히 계산하는 우리 사파이어 상단이 대표 선수로 뽑았을까?


[다니엘라]

그건…….


[윌라드]

그리고 여행자 패스를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여기 있는 분들이랑 동행할 생각이야?


~ 당신의 선택은? ~

> 저희랑 동행이라니요?

  눈치가 빠르시네요.

[ 확인 ]


[다니엘라]

동행이라니, 그걸 상단주님께서 어떻게……?


[토비어스]

사파이어 상단이 모르는 정보는 없답니다, 다니엘라 님.


[제이크]

잠깐, 아직 우린 동행하겠다는 대답은 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윌라드]

여행자 패스는 낮에 이미 신청했다고 들었는데.

아직 떠나는 건 확정이 아닌가 보네.


[다니엘라]

네……. 그치만 바로 떠날 생각은 아니었어요!

저를 믿고 대표로 선발해 주신 사파이어 상단인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떠나겠어요? 게다가 지금 저 말고는 바로 뛸 선수도 없고…….

여행자 패스는 발급 받고 바로 써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음, 또 반드시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좀 상황을 봐서…….


[윌라드]

무슨 소리야? 갈 거면 빨리 떠나야지.


[다니엘라]

네?


[윌라드]

상단한테 미안해서라면, 걱정할 것 없어. 선수 하나 빠진다고 해서 상단이 무너지진 않아.


[다니엘라]

상단주님…….


[윌라드]

체스 선수이기 전에 한 명의 젊은이잖아? 앞날 창창한 사람을 체스라는 한정된 세계에 꾸역꾸역 가둬놓는 악덕 상단주가 될 생각은 없어.


[제이크]

엘레나, 이 사람……. 루비 상단주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않아?


[윌라드]

체스에서 활력을 얻는 건 좋지만, 본인의 존재 의의 자체를 체스에 의존하지는 마. 그런 건 잘 될 때도 있고, 안 풀릴 때도 있는 법이야.


[다니엘라]

……으흑, 으허엉!


[윌라드]

아니, 왜 울고 그래? 떠나면 바로 대타 투입해서 다음 시즌 준비시키고 있을 거니까 서운해하지나 말라고.


[다니엘라]

흑, 고마워요…… 흐어엉…….


두 번째로 울음을 터뜨린 다니엘라. 아까와 같이 제이크가 능숙하게 달래준다.

다니엘라가 실컷 울고 나서야 사파이어 상단주와 수행비서가 자리를 뜬다.


[토비어스]

엘레나 님이라고 하셨나요?

모쪼록, 다니엘라 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윌라드]

언제든 상단에서 도울 일이 있다면 저희 지부를 통해 연락 주시지요.

파란색 사파이어 표시를 찾으시면 편할 겁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상단주와 수행비서가 여행자 숙소를 나서자, 다니엘라가 입을 연다.


[다니엘라]

저어…… 죄송해요. 처음 보는 사이인데, 제가 다짜고짜…….


[엘레나]

뭐,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네요.

그래도 괜찮아요. 우리 길드는 원래 그렇게 들어오거든요.


[다니엘라]

네?


[엘레나]

마침 내일 정식으로 길드 등록을 하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여행자 패스는 받았어요?


[다니엘라]

네…….


[엘레나]

오늘 하루 힘들었을 테니까 우선은 푹 쉬고요.

우유 남은 것 천천히 마시고, 내일 봐요.


[다니엘라]

네…… 네!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는 눈으로, 생글생글 웃는 다니엘라.

한편, 화면은 여행자 숙소 앞으로 전환된다. 사파이어 상단주와 그의 수행비서가 전용마차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토비어스]

이젠 어쩌죠, 상단주님?

다니엘라가 워낙 독보적이었어서 웬만한 최상위 선수들은 진작에 다른 상단들 대표급 자리로 빠져나가고 없는데.


[윌라드]

토비어스.


[토비어스]

네?


[윌라드]

체스 배워볼 생각 없나?


[토비어스]

상단주님~!


[윌라드]

왜? 우리 이제 내년 경기 준비해야지.


[토비어스]

말도 안되는 농담 마세요.


[윌라드]

자네 무대공포증라도 있었나?

뭐, 그럼 다른 수를 알아봐야겠네.


[토비어스]

휴우……. 상단주님 마음도 이해는 되지만, 그 천재소녀를 그렇게 쉽게 놓아주실 줄은…….


[윌라드]

본인이 체스 선수가 될 생각이 없다면, 체스 선수를 뽑는 오디션을 준비해주게.


[토비어스]

……오디션이요?


[윌라드]

아예 내년 대표 자리를 놓고 공개 오디션을 하자구. 체스 경기 해봤자 매니아들 티켓값만 벌었잖아?

상금까지 두둑하게 걸면, 체스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었다 하는 사람들은 죄다 달려들 거야. 우린 그렇게 모인 다수의 대중을 상대로 티켓을 파는 거지.

그리고 인기 있는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악수회를 연다거나, 오디션에 쓰이는 체스판은 따로 한정판 세트 상품으로 만들어서 팔아볼 수도 있겠어.


[토비어스]

이걸 또 이렇게 푸시다니…….


[윌라드]

다니엘라가 쉰다니 다음 챔피언십은 루비 상단이 가져가겠지만, 아쉬운 대로 우리도 살 길을 찾아야지 어쩌겠나?

그리고 이번 기회에 나도 모험을 좀 해봐야겠어. 다니엘라 그 친구, 체스판에서 본인이 최고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갖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모습을 보니 내가 어쩐지 겹쳐져서 말이지.

열심인 것은 좋지만, 자기가 설정한 틀 안에서 괴로워하는 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래도 좀 손해 같달까…….

아, 마차가 도착했군.


사파이어 상단의 상단주 윌라드와 그의 수행비서 토비어스의 대화가 끝난다. 그들을 태운 마차가 여행자 숙소에서 멀어져 간다.



  

Ch.09 프로의 패배와 일의 의미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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