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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과 컵라면

줄리엣과 여행하는 법

by 구의동 에밀리

“그러면 동시에 말하자.”

“하나, 둘, 셋.”

“컵라면!”


줄리엣과 나는 싱긋 웃고서, 편의점을 찾으러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바닷물에 접한 쪽은 모래가 질척하고 시원했는데, 물이 없는 모래는 햇볕을 잔뜩 받아 하얗게 이글거렸다. 슬리퍼에 모래알이 끼면 까끌까끌해지니 피하고 싶었지만, 맥반석처럼 달궈진 모래밭을 맨발로 걸을 자신은 없었다.


모래사장을 나가서 길을 건너니 바로 편의점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 해도, 관광객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장사가 보장되나 보다.


“와, 컵라면 진짜 많아!”

“그러네. 뭐 먹을 거야?”

“으응~ 나는 새우탕면!”


줄리엣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주황색 컵라면을 집어들었다. 아니, 용기가 크니까 사발면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하지만 컵라면이라는 말이 훨씬 입에 착 붙었다.


“오, 무파마?”

“응. 난 요즘 이게 맛있더라.”

“신기하다, 난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컵라면 두 개와 함께 물 한 병을 나란히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더 살 건 없지?”

“응!”


뜨거운 물은 편의점 구석에 놓여 있었다. 전자레인지 옆에 있는 커다란 은색 통.


“뜨거운 물 조심해.”

“그럼그럼! 나도 어른이야~”

“맨발이니까 하는 소리야. 스타벅스에서도 직원들한테 슬리퍼는 못 신게 한다잖아.”

“오 진짜?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아니, 나 말고 컵라면 봐, 컵라면! 뜨거운 물 조심하라니까…….”


뜨거운 컵라면을 조심조심 들고, 편의점 유리문을 나섰다. 종소리가 짤랑, 하고 울렸다.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컵라면 두 개가 놓였다. 줄리엣과 나는 각자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며 앉았다.


“으, 엉덩이 축축해~”

“그래봤자 네 몸에 묻은 물이잖아?”

“그래두~”

“그럼 이렇게 수건을 깔아봐. 펼쳐서.”

“오, 괜찮은데? 신기하네, 물기가 없어진 것두 아닌데.”


나는 깔고 앉은 수건의 양쪽 끝을 접어 올려서 허벅지를 덮었다. 크지 않은 수건이라 자꾸만 흘러내리려고 했다.


나무젓가락을 꺼내, 절반만 살며시 열었다. 컵라면 뚜껑 끝부분을 용기와 맞닿게 여몄다. 나무젓가락이 아직 절반은 붙어있으니, 이렇게 하면 집게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오, 그거 신기하다! 나도 젓가락 해봐야지.”


그러더니 줄리엣은 나무젓가락을 완전히 뚝 분리했다. 그러더니 컵라면에 갖다대고서야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바보야?”

“아아~~~ 이게 뭐야~”


조금 있으니, 설정해 둔 타이머가 알람을 울렸다. 젓가락을 반으로 똑 떼내어, 뚜껑을 열고 휘휘 저었다. 줄리엣도 뚜껑에 얹어둔, 이미 오래 전에 분리된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휘저었다.


“근데 무파마는 무슨 맛이야?”

“글쎄. 그냥 좀 얼큰한 맛?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흐응, 되게 애매한 표현이고만~”

“무파마가 원래, 무, 파, 마늘 넣어서 무파마래. 그러니까 시원하다는 표현이 맞지, 뭐.”

“아? 그래서 무파마구나! 그러면 나 한 입만.”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데?”


나는 뚜껑을 깔때기처럼 돌돌 말아서, 한 젓가락을 담아 줄리엣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줄리엣은 “와! 이런거 만드는 거 진짜 신기해!” 하며 감탄했다.


“맛이 어때?”

“흐응~ 얼큰하고 시원한 맛~”

“거 봐. 내 말이 맞지?”

“근데 솔직히 다른 거랑 차이를 잘 모르겠어! 새우탕처럼 새우 향이 확 나면 모를까~”


줄리엣은 다시 새우탕면으로 돌아가서, 면발을 호로록 흡입했다.


“그러게. 무파마가 땡기는 건 그냥 기분 탓인가? 나도 삼양라면이랑 너구리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이~ 그건 삼양라면이랑 짜파게티 수준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근데, 라면도 딱 먹으면 뭐가 뭔지 알아맞히는 사람들이 있대! 막 면발이랑 국물이랑 차이를 다 안다더라구.”

“뭐든 조예가 깊어지면 어떤 경지에 오르는구나.”

“새우탕면 먹어볼래?”

“아니.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아.”


나는 줄리엣과 고개를 숙이고서 뜨거운 면발을 조심스럽게 먹었다. 아무리 막 입는 옷이라고 해도, 흰색 면티에 튀면 곤란하므로.


어느새 면티도 절반은 말라 있었다. 팔다리에 남아있던 물기도 여름의 열기에 날아갔다. 수분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작한 소금기만이 남았다. 피부가 살짝 땡기면서도 끈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 이런 기분 되게 좋아해.”


줄리엣이 문득 얘기했다.


“어떤 기분?”

“수영하고, 몸에 물기만 대강 닦고 뭐 먹는 거. 뭐랄까, 대충 사는 느낌?”

“그렇네. 마음 편하다, 대충 사는 거.”


발에 하찮을 정도로 소량의 모래 알갱이가 느껴졌다. 슬리퍼에도 파삭한 모래알들이 붙어 있었다. 수돗가 호스 물로 씻어냈는데도, 오는 길에 다시 묻었나 보다. 성의없이 발을 탁탁 털며 모래를 떨궈냈다.


“아, 삼각김밥도 데워 먹으면 좋은데. 근데 이제 와서 먹기에는 애매하네.”

“다음엔 그렇게 먹자.”


머릿속으로 ‘그렇다면 삼각김밥의 대체재로는 뭐가 좋을까?’ 하고 고민하며, 면발을 호로록 호로록 먹었다. 꽃게랑이나 한 봉지 사서, 가는 길에 까먹을까? 아니면 핫바 같은 걸 데워서, 슬리퍼 끌면서 먹을까?


괜찮네. 대충 사는 기분.


“그러면 동시에 말하자.”

“하나, 둘, 셋.”

“컵라면!”


줄리엣과 나는 싱긋 웃고서, 편의점을 찾으러 모래사장을 벗어났다. 바닷물에 접한 쪽은 모래가 질척하고 시원했는데, 물이 없는 모래는 햇볕을 잔뜩 받아 하얗게 이글거렸다. 슬리퍼에 모래알이 끼면 까끌까끌해지니 피하고 싶었지만, 맥반석처럼 달궈진 모래밭을 맨발로 걸을 자신은 없었다.


모래사장을 나가서 길을 건너니 바로 편의점이 있었다. 작은 마을이라 해도, 관광객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면 어느 정도는 장사가 보장되나 보다.


“와, 컵라면 진짜 많아!”

“그러네. 뭐 먹을 거야?”

“으응~ 나는 새우탕면!”


줄리엣은 한치의 고민도 없이 주황색 컵라면을 집어들었다. 아니, 용기가 크니까 사발면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일까? 하지만 컵라면이라는 말이 훨씬 입에 착 붙었다.


“오, 무파마?”

“응. 난 요즘 이게 맛있더라.”

“신기하다, 난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컵라면 두 개와 함께 물 한 병을 나란히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더 살 건 없지?”

“응!”


뜨거운 물은 편의점 구석에 놓여 있었다. 전자레인지 옆에 있는 커다란 은색 통.


“뜨거운 물 조심해.”

“그럼그럼! 나도 어른이야~”

“맨발이니까 하는 소리야. 스타벅스에서도 직원들한테 슬리퍼는 못 신게 한다잖아.”

“오 진짜? 그런 건 어떻게 알았어?”

“아니, 나 말고 컵라면 봐, 컵라면! 뜨거운 물 조심하라니까…….”


뜨거운 컵라면을 조심조심 들고, 편의점 유리문을 나섰다. 종소리가 짤랑, 하고 울렸다.


플라스틱 테이블 위에 컵라면 두 개가 놓였다. 줄리엣과 나는 각자 플라스틱 의자를 드르륵 끌며 앉았다.


“으, 엉덩이 축축해~”

“그래봤자 네 몸에 묻은 물이잖아?”

“그래두~”

“그럼 이렇게 수건을 깔아봐. 펼쳐서.”

“오, 괜찮은데? 신기하네, 물기가 없어진 것두 아닌데.”


나는 깔고 앉은 수건의 양쪽 끝을 접어 올려서 허벅지를 덮었다. 크지 않은 수건이라 자꾸만 흘러내리려고 했다.


나무젓가락을 꺼내, 절반만 살며시 열었다. 컵라면 뚜껑 끝부분을 용기와 맞닿게 여몄다. 나무젓가락이 아직 절반은 붙어있으니, 이렇게 하면 집게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오, 그거 신기하다! 나도 젓가락 해봐야지.”


그러더니 줄리엣은 나무젓가락을 완전히 뚝 분리했다. 그러더니 컵라면에 갖다대고서야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바보야?”

“아아~~~ 이게 뭐야~”


조금 있으니, 설정해 둔 타이머가 알람을 울렸다. 젓가락을 반으로 똑 떼내어, 뚜껑을 열고 휘휘 저었다. 줄리엣도 뚜껑에 얹어둔, 이미 오래 전에 분리된 젓가락을 들고 면발을 휘저었다.


“근데 무파마는 무슨 맛이야?”

“글쎄. 그냥 좀 얼큰한 맛?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

“흐응, 되게 애매한 표현이고만~”

“무파마가 원래, 무, 파, 마늘 넣어서 무파마래. 그러니까 시원하다는 표현이 맞지, 뭐.”

“아? 그래서 무파마구나! 그러면 나 한 입만.”

“왜 결론이 그렇게 되는데?”


나는 뚜껑을 깔때기처럼 돌돌 말아서, 한 젓가락을 담아 줄리엣에게 건넸다. 이번에도 줄리엣은 “와! 이런거 만드는 거 진짜 신기해!” 하며 감탄했다.


“맛이 어때?”

“흐응~ 얼큰하고 시원한 맛~”

“거 봐. 내 말이 맞지?”

“근데 솔직히 다른 거랑 차이를 잘 모르겠어! 새우탕처럼 새우 향이 확 나면 모를까~”


줄리엣은 다시 새우탕면으로 돌아가서, 면발을 호로록 흡입했다.


“그러게. 무파마가 땡기는 건 그냥 기분 탓인가? 나도 삼양라면이랑 너구리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에이~ 그건 삼양라면이랑 짜파게티 수준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근데, 라면도 딱 먹으면 뭐가 뭔지 알아맞히는 사람들이 있대! 막 면발이랑 국물이랑 차이를 다 안다더라구.”

“뭐든 조예가 깊어지면 어떤 경지에 오르는구나.”

“새우탕면 먹어볼래?”

“아니. 무슨 맛인지 알 것 같아.”


나는 줄리엣과 고개를 숙이고서 뜨거운 면발을 조심스럽게 먹었다. 아무리 막 입는 옷이라고 해도, 흰색 면티에 튀면 곤란하므로.


어느새 면티도 절반은 말라 있었다. 팔다리에 남아있던 물기도 여름의 열기에 날아갔다. 수분이 사라진 자리에는 바작한 소금기만이 남았다. 피부가 살짝 땡기면서도 끈적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 이런 기분 되게 좋아해.”


줄리엣이 문득 얘기했다.


“어떤 기분?”

“수영하고, 몸에 물기만 대강 닦고 뭐 먹는 거. 뭐랄까, 대충 사는 느낌?”

“그렇네. 마음 편하다, 대충 사는 거.”


발에 하찮을 정도로 소량의 모래 알갱이가 느껴졌다. 슬리퍼에도 파삭한 모래알들이 붙어 있었다. 수돗가 호스 물로 씻어냈는데도, 오는 길에 다시 묻었나 보다. 성의없이 발을 탁탁 털며 모래를 떨궈냈다.


“아, 삼각김밥도 데워 먹으면 좋은데. 근데 이제 와서 먹기에는 애매하네.”

“다음엔 그렇게 먹자.”


머릿속으로 ‘그렇다면 삼각김밥의 대체재로는 뭐가 좋을까?’ 하고 고민하며, 면발을 호로록 호로록 먹었다. 꽃게랑이나 한 봉지 사서, 가는 길에 까먹을까? 아니면 핫바 같은 걸 데워서, 슬리퍼 끌면서 먹을까?


괜찮네. 대충 사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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