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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의동 에밀리 May 10. 2024

사적이고 정당한 직무유기

1개월 24일

광장동 스타벅스에 왔다.


아이에게 루틴한 하루 일과를 만들어주면 아이도 하루를 예상할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들었다. 먹고, 놀고, 잠드는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라고.


그래서 아침 7시에 첫 수유를 해주고, 1시간 반 정도 놀게 해주었다. 모빌도 두 가지나 보여주고, 손발을 잡고 놀아도 주고, 애벌레 인형으로 터미타임도 해줬다. 오늘은 유모차 바퀴를 닦아서 집 안 구경도 시켜주었다. 영 허리가 아파서 들고 다닐 수가 있어야지.


그러다 졸려하는 기색이 보여서 남편이 아이를 재워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좀 칭얼대다가 이내 쪽쪽이를 물고 눈을 스르르 감았다. 옆으로 누워서 가슴을 남편에게 대고 자는 게 편안한 모양이었다.


“카페라도 좀 다녀와요.”


남편이 아이를 봐주는 덕분에 카페를 다녀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분유를 140ml 먹었으니 아마 아이는 11시쯤이 되어서야 배고프다고 할 것 같았다. 그럼 2시간 정도가 남아 있었다. 하루 일과를 규칙적으로 만들어 두면 아이 뿐 아니라 엄마도 일정을 예측할 수 있어서 좋다더니, 그게 이런 뜻이었구나.




그러다 문득, 아이를 놔두고 어딘가를 ‘루틴하게’ 다녀오면 그것은 좀 직무유기가 되려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 9시, 동네 카페를 향하는 길은 오늘따라 화창하고 기분 좋았다. 이제 벚꽃은 다 졌을 정도로 밖은 완연한 봄 날씨라더니 과연 그랬다.


문득 매일 토요일 아침마다 예전처럼 성수동에 요가 수업을 다녀온다거나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 동안은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는 토요일 오전을 혼자만의 시간으로 가지면 리프레쉬도 되고 좋지 않을까?


하지만 그러자니 어딘가 좀 찜찜했다. 왠지 직무유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회사로 치면, 월화수목금 출근하기로 해 놓고서 “수요일마다는 오후에만 출근하겠습니다” 하고 선언하는 듯 한 느낌이었다. 회사랑 조율만 된다면야 불가능할 일도 아니었지만, 조율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왠지 관심병사로서의 첫걸음을 내딛는 것 같달까?


따지고 보면 나 혼자만 아이의 부모인 게 아닌데, 괜히 혼자서 켕겨하는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도 나도 동등하게 아이의 부모라면, 아이에게서 자리를 뜨는 시간을 내가 남편만큼 가지더라도 유난히 더 비난을 받거나 마음 무거워할 일은 아니지 않을까?


어쩌면 지금은 혼합수유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모유만 주는 것도 아니고, 한 끼니가 140ml라면 30ml 정도는 모유로, 110ml는 분유로 주는 이 어정쩡한 혼합수유. 내가 없으면 모유수유가 안 되니까(유축을 하면 될 텐데?) 분유 100%를 먹이게 된다는 생각에 왠지 잘못을 하는 기분이 든다. 모유가 집밥이라면 분유는 왠지 인스턴트 식품처럼 느껴지는 바람에 그렇다. 사실은 완전분유수유를 하는 집이 얼마나 많은데!




어디까지가 리프레쉬고, 어디부터가 직무유기가 될 지 잠시 고민했다.


하루에 30분에서 1시간 정도 어디 동네 마실을 다녀오는 정도는 확실히 리프레쉬에 해당해 보였다. 그런 기분전환이 없으면 오히려 산모에게도 아기에게도, 그리고 전반적인 가정의 평화에도 독이 된다. 산모가 너무 집에만 있으면 육아에만 점점 더 몰두하게 되어서 육아의 요소 하나하나에 집착하게 되니까. 그러면 뭐 하나만 까딱 잘못돼도, 예컨대 수유텀이 예상보다 겨우 15분 차이가 나버리게 된다 해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고 온 식구가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그럼 매일 1시간씩 기분전환 시간을 가지는 것은 괜찮을까? 그래, 그 정도는 충분히 괜찮아 보였다. 당장 나만 해도 지금 이렇게 스타벅스에 와서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있으니 ‘이 정도면 성공한 인생이지!’ 라며 즐거워하고 있는걸. 좋아하는 일을 언제 어디서든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쓱쓱 해내면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인생이라니! 육아에만 올인하면서 번아웃을 자초하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그렇다면 2시간씩은? 여기까지도 왔다갔다 하는 시간을 고려하면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지하철이라도 한 번 타면 그 정도 시간은 소요되니까.


그런데 게임은 왠지 정말 직무유기처럼 느껴졌다. 산후도우미 관리사님이 아이를 봐주실 때도 게임만큼은 손이 가지 않았다.


학생 때 이따금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들어와서 청소를 하실 때가 있었는데 딱 그 느낌이었다. 어머니가 내 방을 청소해주시고 계신데, “너는 신경 쓰지 말고 공부하고 있어~” 하는 말 그대로 진짜 신경을 안 쓰고 있을 수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내 아이를 관리사님이 안고서 분유를 주시거나 하고 있는데 그 옆에서 나는 컨트롤러에 이어폰까지 장착하고 게임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게임은 5~10분이 아니라 기본 30분 이상은 해야 일일 퀘스트라도 깰 텐데, 그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한편, 게임이 아니라 책을 읽는 일은 괜찮게 느껴졌다. 이게 무슨 조화일까?




너무 완벽하게 아이에게 헌신하기란 애초에 힘든 일이지 않을까 싶다.


모유수유를 하면서는 사실 할 일이 딱히 없다. 기껏해야 아이와 눈을 맞추면서 말을 걸거나 아니면 깊은 젖물리기가 되었는지 중간중간 체크하는 것 정도였다.


한 번은 모유수유 중에 아이 기저귀 겉면을 살짝 만져보았다. 축축해 보이는 것이 소변을 본지 얼마 안 된 듯 싶었다. 그런데 아이는 딱히 기저귀가 축축하다고 칭얼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이는 대변을 보고 나서도 그저 속이 시원해서 기분 좋아할 뿐, 대체로 똥기저귀 갈아달라고 칭얼대지는 않았다.


그 동안 아이가 울 때마다 왜 우는지 알 수 없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이는 상당 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던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점이 100가지라면 그 중 10~20가지 정도만 빼액 울어서 해결을 보고, 80 정도는 ‘에휴 내가 말해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거고…… 별로 대수롭지 않으니까 넘어가지 뭐’ 하는 게 아닐까?




손톱도 한 번 들여다 보니, 날카로운 부분이 여전히 있었다. 대체 손톱은 어째서 다듬고 또 다듬어도 날카로운 부분이 항상 남아있는 걸까? 얼굴 긁는 것은 그렇다 쳐도, 눈을 찌를까 항상 걱정이 드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가위로 오려내기에도 너무 좁쌀만큼 작은 손톱이라 손 떨리고.


그러다 한 번은 왼손만 손톱깎기에 성공해서 오른손은 그대로 손싸개를 해 둔 적도 있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바운서에서 팔다리를 휘저으며 놀 때도 왼손은 맨손, 오른손은 손싸개를 한 상태였다. 그래도 개의치 않고 잘 노는 아이가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래 너도 나도 이 정도 선에서 최선을 다하며 지내는 거지 뭐’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이고 내가 양손을 모두 다듬어주지 않아서 아이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있구나!’ 라며 자책했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그저 ‘아이고 귀엽다’ 하면서 조만간 오른손도 마저 다듬어줘야지 하고 바라보며 나도 식탁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좀 쉬고 있었다.


그래, 할 수 있는 데까지 하는 거지 뭐. 완벽한 육아가 어디 있겠어? 아이도 그럭저럭 지내고, 나도 나름대로 사람다운 삶(!)을 살면서, 그렇게 한 가족이 되어 같이 살아가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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