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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Sep 30. 2020

006. 질문하다

안녕하세요,하다씨


답을 할 순 있지만 질문할 수 없는 로빈(컴퓨터)과 질문하는 그녀(마스터)는 목성에 살고 있다.  지구의 자원이 바닥나는 시기가 다가오자, 지구인들은 목성의 자연주기를 조절하여 삶에 필요한 생산물들을 빠르게 공급받고자 하였다. 오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돌아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목성의 마지막 오후를 그린 이 소설에서 나는 질문과 답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답보다 중요한 것은 질문이다.
질문이 있으면, 정답을 알 순 없어도 여러가지로 추론이 가능하다.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목성의 마지막 오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마스터와 같은 존재임에도 왜 로빈처럼 살아왔던거지?
이곳(오스트리아)에선 학생들이 궁금한게 생기면 검지손가락을 펼치고 손을 번쩍든다. 왜 검지손가락을 펼치는지 알 순 없지만(질문이 1개여서 그런게 아닐까 지인에게 농담처럼 말을 건낸적은 있다) 손을들어 내가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선생님께 알린다.  전형적인 한국 교육시스템에서 자라온 난 “질문있는 사람?” 이라는 선생님의 물음에도 두 손을 책상에 가지런히 올려놓는 아이었다. 그렇게  질문이 아닌 주어진 답을 받아먹으며 살아왔다. 그것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알지 못한채 말이다. 이 세상 던져진 수많은 답이 내 인생의 정답이 될 수 없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모르겠어’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정작 어떤 질문을 던져야하는지 알지 못한채 질문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언제부터 내 인생에 질문이 사라진 것일까.

“이 나이라면 이렇게 살아야합니다. 이런 방향으로 가야하며, 이렇게 자리를 잡아가야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이런이런 과정이 필요하죠 -”
생애주기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해야만 인정받는 세상이다. 물론 이는 개인의 성장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모두 같은 과업을 달성해야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린 그렇게 살아야하는 존재로 여겨져 왔다. 각자의 시간은 무시된 채 동일한 시간속에서 동일하게 성장해야했다.   
십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목성에 심은 나무는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그 열매에선 아무런 맛도 나지 않는다. 식물을 속여 자라게 하는 방식은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버린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시간이었다.

느끼기도 전에 훌쩍 가버리고
기다리기도 전에 이미 와 버리는 것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테니까.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목성의 마지막 오후’

 
시간은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슬픔과 기쁨, 여러가지 감정이 녹아 인생이 만들어진다. 익어져하는 감정이 있다는 말에 나는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뛰어넘고 싶었던 순간들이 과연 1초로 스쳐 지나갔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삶에 굴곡없이 존재하는 기쁨도 없으며 기쁨없이 존재하는 슬픔도 없다. 결국 시간과 시간에 얽힌 나의 감정들이 새로운 나를 만들어낸다. 지금의 감정은 결코 이 순간의 감정이 아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익어가는 나의 감정이라니!
나이 드는 게 행복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우리 삶에 얼마나 가짜가 많은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계절과일을 언제든 먹기위해 비닐하우스를 만들고 품종을 계량해왔다. 언젠가 “당신이 먹는 토마토는 토마토가 아닐 수 있다”라는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단축해왔고 만들어진 맛을 느끼며 사는데 익숙해져버렸다. 가짜가 가득한 세상에서 그것을 진짜라 여기면서 말이다.
속이는 것에 익숙한 삶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제철과일을 먹고 그 시절에 나는 것을 먹는 삶을 살자는 의미는 아니다.

뭐든지 빠르고 단축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나의 속도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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