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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Nov 06. 2020

011. 궁금해하다

안녕하세요 하다씨

“언제 줄 거야?” 


한 수 앞선 상대방의 공격을 방어해야 하는 날이 왔다. 가족 모두가 모이는 명절이어서가 아니다.

오늘은 부모님을 따라 청년시절 나갔던 교회를 함께 가는 날, 50주년을 맞은 교회에 함께 가자는 아빠의 제안에 마지못해 따라나섰다. 

지금은 서로 다른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부모님 교회에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면 함께 가곤 한다. 예를 들어 성탄절이나 송구영신예배 같은 날이다. 나의 유년시절과 고3부터 4년여간 다녔던 곳이어서 대부분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고 있다. 누가 누구인지 모두가 아는 조그마한 교회, 그곳에서 나 역시 사랑받으며 자랐던 곳이기에 교회 사람들의 환영이 싫지만은 않다.


이렇게 특별한 날 교회를 가면 그 시절 함께했던 동생들을 만나게 된다. 모두가 어른이 된 지금,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다 보니 모두 흩어졌지만 특별한 날엔 모두 자연스레 교회로 모인다. 우릴 보고 누군가 말했다.

“오늘이 정모 날이네!” 

나를 제외하고 모두 90년대에 태어난 어린이들이다. 지금은 모두 나의 인생 선배들이 되었지만 만나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든다

A는 벌써 44개월 차의 남자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B은 6년 차 직장인이며,  C는 이제 갓 신입 딱지를 땐 어엿한 사회 구성원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자연스레 향한 스타벅스에서 우리는 커피를 홀짝이며 서로 자주 듣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둘째는 언제 갖냐고 물어봐. 그게 부담돼서 교회 오는 게 싫어.” 

44개월 차 아이의 엄마가 된 A의 말에 나는 “언제 줄 거야?”라고 되물었다.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난 늘 이 말을 들어. 찍지도 않은 청첩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참 많지. 남자 친구 있냐는 말보다 언제 가냐, 날짜는 잡았냐 라는 말을 듣는다고” 

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뜨거운 아메리카노가 오늘따라 더 쓰게 느껴졌다. 


“할 말이 없어서 물어보는 거야” 누군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할 말이 없어서 나에게 가장 필요해 보이는 질문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색한 안부인사를 대신하는 말이란 걸 알면서도 듣고 싶지 않은 질문을 받을 때면 괜히 마음이 꺼림칙해진다.


“밥은 잘 먹고 다녀요?”라는 질문을 하기에도 어색하고,

“그래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구체적인 대답을 해야하는 두루뭉술한 질문도 어색하니 당장 너의 인생에 필요한 과업을 달성하였는지 묻는 게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결혼 소식을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불편한 질문에 “그러게요. 언젠가 가겠죠?”라고 답하며 웃음을 지어 보이고 자리를 피한다. 정말 궁금해서 물은 것이 아니니 구구절절 나의 인생을 브리핑할 이유도 없다. 그저 나의 대답은 오늘의 안부 정도로 기억될게 분명하기에 나는 웃음으로 모든 걸 해결하곤 한다. 


내가 오랜만에 나타나 “서프라이즈~”하며 청첩장을 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기대는 조금 하고 있겠지)

나에게 듣고 싶어 하는 좋은 소식이 결혼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웃프다. 지금도 행복한 나에게 결혼은 필수 불가결한 인생의 과업이자 정답이라는 점, 아이가 하나여도 좋은 부부에게 둘째가 생기는 것이 더 좋은 소식이라는 게 아이러니할 뿐이다. 타인이 좋게 여기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충분히 행복한 나에게 더 나은 삶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묻는 게 예의이자 배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울 뿐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나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원하는 답을 듣고 싶어서가 아니라면,

"잘 지내고 있지?"라는 짧은 안부로 충분하다.


190922/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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