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철학사 3-1
* 동대문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여섯 꼭지로 읽는 중국 철학사' 강의안 초안입니다. (링크)
송나라 사람이 밭을 갈고 있었다. 그의 밭에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토끼가 달려가다 나무 그루터기에 머리를 박고는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이를 본 농부는 밭일을 팽개치고 나무 그루터기를 지켜보며 다시 토끼를 잡을 날을 고대했다. 토끼를 다시 잡는 일은 없었고, 그는 나라 전체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宋人有耕田者,田中有株,兔走,觸株折頸而死,因釋其耒而守株,冀復得兔,兔不可復得,而身為宋國笑。<한비자韓非子 : 오두五蠹>
성인이 다시 태어나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실 테다. 맹자는 자신감이 넘치는 인물이었다. 그는 예언자적 인물이었다. 자신이 옛 성인의 가르침을 계승한 사람이며, 자신의 입으로 고스란히 가르침이 전승되고 있다고 믿었다. 후대의 유학자 가운데도 이런 확인에 찬 인물이 여럿 있었다. 이들은 선왕先王, 즉 고대의 훌륭한 임금을 숭상했다. 선왕을 성인聖人으로 모시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성인의 가르침은 똑같이 유효하다 생각했다.
비판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장자는 옛 성인이 남긴 글은 이미 알맹이가 다 삭아버린 찌꺼기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장자> 윤편輪扁의 고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제환공은 책을 읽고 있었고, 윤편은 바퀴를 깎고 있었다. 일을 하다 무료했는지 윤편이 환공에게 묻는다. 무얼 하고 계십니까? 성인의 말씀을 읽고 있다.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 이미 돌아가셨다. 그럼 임금께서 읽는 것은 옛사람의 찌꺼기에 불과하군요. 이 당돌한 말에 환공은 노기를 띄고 묻는다. 감히 바퀴나 깎는 천한 것이 임금의 독서를 평가하다니!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죽이겠다!!
윤편은 낯빛도 바뀌지 않고 답한다. 바퀴통을 깎는데 덜 깎으면 뻑뻑하여 들어가지 않고, 너무 많이 깎으면 헐거워 빠져버리고 만다. 적당히 잘 깎아야 하는데, 이걸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 70이 넘어서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고. 윤편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손과 마음에 익어 말로 옮길 수 없습니다.(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 장자는 언어와 기록을 믿지 않았다. 감각의 현재성만큼 생생한 것이 어디 있으랴.
성인의 가르침은 성인과 함께 죽어버렸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선왕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지금 난세의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방법일 수 있을까. 이에 순자는 후왕後王, 고대 임금 대신 현재의 임금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제자 한비자의 주장도 비슷하다. 과거 성인들은 그 시대의 문제를 해결했던 사람들이다. 옛 성인의 방식을 지금 그대로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웃음거리에 불과하지 않겠는가? 수주대토守株待兎의 고사가 보여주는 어리석은 농부와 다를 것이 무엇일까.
훗날 중국 최초의 황제가 되는 진왕 영정이 한비자를 얻고 싶어 했던 것은 이러한 논의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던 까닭이다. 비록 한비자를 대면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곁에는 한비자와 동문수학했던 이사(李斯 BCE284~BCE208)라는 인물이 있었다. 아니, 그 스스로 이미 새로운 시대를 견인할 덕목을 갖추고 있었는지 모른다. 시대가 인물을 낳는다는 말도 있고, 반대로 인물이 시대를 만들어낸다는 말도 있다. 진왕 영정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정확히 후자의 말이 맞을 것이다.
사마천은 그의 어머니가 여불위의 무희였다 전한다. 여불위는 빼어난 장사꾼이었는데, 조나라에 볼모로 와 있던 자초를 진나라의 왕으로 만들겠다며 거의 모든 재산을 쏟아붓는다. 하루는 자초가 여불위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여흥을 즐기는 일이 있었다. 우연히 한 무희에게 마음을 빼앗겨 여불위에게 그를 달라고 조르는데, 그가 바로 나중에 영정의 어머니가 된다. 사마천은 <여불위열전>에서 무희가 여불위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로 자초의 아내가 되었다 말한다. 그러니까 영정의 진짜 아버지는 여불위라는 말이다.
실상을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 이야기는 후대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진시황에게 저런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니. 한편 이는 영정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숱한 정적을 해치우고 강력한 왕권을 취득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효과를 낳기도 한다. 영정이 상대해야 했던 정적으로는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정부情夫로 노애, 그리고 당시 상국相國의 지위에 올라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여불위도 있었다. 전설을 따르면 그는 어머니, 아버지를 해치우고 진나라의 권력을 손에 넣고, 나아가 유일무이한 제국의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그는 반역의 통치자가 되어 버린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정이 진왕이 되었을 때 진나라에는 여러 나라에서 몰려든 인물이 많았단다. 그중에는 진나라에서 성공해보겠다고 찾아온 이도 있었지만 첩자로 진나라 궁궐에 흘러들어온 자도 있었다. 정국이라는 자도 그렇게 진나라에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쓸모없이 대규모 운하를 파서(!) 국력을 소진토록 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단다. 다행히 그의 계책이 발각되어 쓸모없이 국력을 낭비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이 일로 진왕은 축객령逐客令, 즉 다른 나라 출신들을 모두 내쫓는 정책을 펼친다. 이때 진나라에서 쫓겨날 처지가 되었던 이사는 이런 글을 진왕에게 올린다.
"태산은 흙덩이를 마다하지 않아 그렇게 클 수 있습니다. 하해河海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아 그렇게 깊을 수 있습니다. 왕 노릇 하는 자는 뭇 백성들을 내치지 않아야 그 덕을 떨칠 수 있습니다. (太山不讓土壤,故能成其大;河海不擇細流,故能就其深;王者不卻眾庶,故能明其德。)" 이사는 묻는다. 왕이 궁궐에서 즐기는 산해진미와 화려한 옷감과 보석들은 다 어디서 나는 것인가? 모두 이웃나라에서 가져온 것 아닌가. 이웃 나라에서 가져온 것이라며 물리친다면 궁궐은 텅텅 비고 말 것이다. 마찬가지로 조정의 인물을 마찬가지. 태산이나 하해와 같으려면 일국一國에 갇히지 말아야 한다. 나라를 따지지 말고, 출신을 묻지 말아야 한다. 위대한 포용력을 가질 것. 새로 태어날 나라는 이 포용력을 바탕으로 한 나라여야 한다. 진시황은 이 글을 보고 축객령을 취소하였으며 이사를 자신의 곁에 두었다 한다.
주나라의 천하가 주나라를 종주로 삼는 커다란 한 가족의 모습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천하가 한 가족이라는 말은 작은 가족을 위해서 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의 이익을 위해 복무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나 이사의 비전에는 가족이 없다. 이름 모를 흙덩이가 태산을 이루고, 어디서 흘러들어온지 모르는 물줄기가 하해를 만드는 것처럼, 천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구성원들을 통해 새롭게 재편되어야 한다. 주나라의 낡은 체제가 천하'국가國家'를 중시했다면 새로운 통일국가는 '천하天下'국가를 중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저 모든 것을 수용하자는 말이 핵심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사가 말하는 것은 관계의 기술이 아니다. 그는 포용력 자체보다 그 목표에 더 주목하고 있다. '成其大', 크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 포용력이 필요한 이유이다. 효과, 성과, 업적 등을 의미하는 ‘성成'이라는 글자는 <노자>에서도 수차례 만날 수 있다. <노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보다 복잡하다.
"끝내 스스로 크다고 하지 말아야 크게 이룰 수 있다. (以其終不自為大,故能成其大。)", "이런 까닭에 성인은 끝내 스스로 크다고 하지 않았기에 크게 이룰 수 있었다. (是以聖人終不為大,故能成其大。)" 궁극의 목표, 큰 것을 이루기 위해 또 다른 태도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하면 너무 앞서지 말 것. 그러나 진왕은 <노자>의 가르침에 주목하지 않았다. 설사 그런 말을 들었다 하더라도 별로 크게 무게를 두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너무 자신만만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궁궐의 암투 속에 승리자가 되었다. 정적을 제거하고 탄탄한 권력의 기반을 닦았다. 한편 전국시대의 나머지 여섯 나라를 차례로 정벌하여 일통천하一統天下를 이루었다. 진왕이 보기에 이것은 단순히 커다란 업적을 이룬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상 아무도 이루지 못했던 새로운 업적을 세운 것이다. 통상의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따라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
중국의 역사는 임금이 세상을 떠난 뒤, 그를 부르는 이름을 정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사후에 붙이는 이름을 시호諡號라고 한다. 그러나 진왕이 보기에 이는 부당한 일이었다. 어찌 아들이 아비를, 신하가 임금을 평가한다는 말인가? 이에 그는 자신을 부를 이름을 새로 지었다. 왕王이라는 낡은 호칭 대신 황제皇帝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고대의 삼황오제三皇五帝의 호칭을 참고하여 새로운 이름을 만들었다. 시호를 붙이는 관습을 없애고 자신에게 처음 황제, 시황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다음은 이세二世, 삼세三世라 하여 만세萬世까지 이르고자 하는 게 그의 꿈이었다.
진시황(秦始皇 BCE 259 ~ BCE 210)은 스스로 새로운 시대를 여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역사가 어떻든 과거는 과거의 것으로 내버려 두고 지금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시황제는 그 웅대한 꿈을 보여주는 호칭이었다. 자신으로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한다는 선언. 차후 유가儒家가 그를 그토록 미워한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을 테다. 진시황에게 전통은 과거의 낡은 유산에 불과했다. 현재에 걸맞은 이름과 제도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했고, 지방과 수도로 이어지는 길을 닦았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옛 서적을 불태우고 유학자들을 매장하는 그런 사상탄압이 있었을까? 이를 정확히 고증할 수 있는 길은 없다. 어떤 사람은 유학자들이 진시황을 모함하고자 만든 소문에 불과하다 말한다. 어떤 사람은 사상탄압이 있었다 해도 전해지는 것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진시황의 비전과 분서갱유의 전설을 통해 우리는 두 정신이 날카롭게 충돌하며 갈등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유래와 근본을 따지고 전통을 숭상하는 유학자들에게 진시황과 같은 존재는 엄청난 해악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진시황의 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제국은 진시황의 죽음과 함께 무너진다. 그를 이어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자리에 오르나 그는 허수아비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나라를 보고 유가는 근본을 무시했기 때문이라며 손가락질했을 테다. 그러나 <노자>를 애독하는 독자라면 너무 성급했기 때문이라 말할 것이다. "큰 도구는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大器晚成)" 천하가 통일되어 커다란 제국을 이루었으나 이를 다스릴 구체적인 방법이 채 마련되지 않았다. 이것의 진시황의 한계였다. 비전은 있으나 수단이 없었다.
진시황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이후 여러 차례 황궁을 비웠다. 각 지역에 가서 자신의 위세를 직접 내보이며, 현장을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자>는 말한다. 통치자는 직접 움직이지 않고도 천하의 일을 알아야 하며, 일일이 직접 보지 않고도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聖人不行而知,不見而名,不為而成。) 그렇게 몸소 행동하지 않아도 천하의 일이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