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해

사마천과 만나는 장자 6

by 기픈옹달

장자와 사마천 모두 빼어난 이야기꾼이었다. 이들은 천년을 넘어 여전히 우리를 매혹시키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사마천이 구체적인 인물의 이야기를 전하는 반면 장자는 우화를 들려준다는 점이다. 하여 누군가는 장천마지莊天馬地, 하늘에는 장자가 있고 땅에는 사마천이 있다고 하였다. 장자의 우화는 우리를 드넓은 하늘로 이끌고, 사마천의 글쓰기는 우리를 개별 인간의 삶으로 파고들게 만든다.


후대의 문학가들이 이 둘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자>와 <사기>는 상상력의 보물창고였으며, 참고할 수 있는 다양한 인생들이 들어있는 이야기보따리이기도 했다. 장자와 사마천이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가 여기에 있기도 하다. 속담으로 사자성어로 장자와 사마천의 글이 전해지고 있다.


당랑거철과 조삼모사, 호접지몽 등은 매우 유명하다. 우물 안의 개구리나, 달팽이 뿔 위에 싸운 이야기는 어떤가. 모두 <장자>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사면초가와 발산개새, 다다익선과 토사구팽, 더 거슬러 올라가면 관포지교와 와신상담, 완벽귀조와 물경지교까지. 어찌 보면 사자성어에서만 보면 <사기>의 압승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장자가 선물한 상상의 세계는 수많은 문인,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2016년 중국에서 <나의 붉은 고래>라는 애니메이션을 개봉했다. 중국어 원제는 '대어해당大鱼海棠', 여기서 말하는 고래, 즉 큰 물고기란 <장자: 소요유>에서 나온 곤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애니메이션은 하늘로 날아오른 커다란 물고기를 소개하며 <장자>의 첫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北冥有魚,其名為鯤。鯤之大,不知其幾千里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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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애니메이션은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전을 읽고 과거 역사를 뒤돌아보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작품의 출현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는 것이 고민이다. 이 작품의 실패를 두고 사람들은 서사력의 부재를 이야기한다. 기술적으로는 꽤 빼어난 수준을 보였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즉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것.


그러나 하나의 중요한 시도라는 점에서 이러한 흐름이 시사하는 바를 너무 간과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이야기를 차용하여 새롭게 해석한 작품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2015년 <서유기대성귀래西遊記之大聖歸來>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서유기>의 내용을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이다.


<서유기대성귀래>가 이전 작품과 다른 점은 제천대성, 즉 손오공이 활개 치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때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는 이름으로 천궁天宮을 호령하던 손오공이 다시 각성한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이 애니메이션은 우리가 알고 있던 손오공 이야기 밖의 이야기를 전한다. 한편 '귀래歸來'라는 제목처럼 이는 중국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한다.


2008-2010년 사이에 중국이 G2로 부상한 이후 중국의 영향력은 날로 확대되고 있다. 2015년 손오공의 귀환을 이야기한 이 작품은, 제국으로 다시 부상하는 중국의 자기 모습을 서술한 것이 아니었을까. 한편 이 작품의 제작진이 만든 2019년 <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는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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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지마동강세哪吒之魔童降世>. 이 제목을 우리말로 바로 옮기면 마동魔童, 즉 악마 '나타哪吒'가 세상에 태어났다 정도가 될 것이다. 나타는 <봉신연의>를 비롯해 중국 신화에서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그는 <서유기>에도 등장하는데 손오공을 맞서 화려하게 싸우기도 한다. 이 작품은 신화의 주인공 나타를 문제 있는 악동으로 그려낸다. 악마라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는 나타를 주인공을 내세워 조금은 다른 영웅 이야기를 전한다. 마동 나타는 주변국들에게 손가락질당하는 중국 자신을 묘사한 하나의 우화는 아니었을까?


제작사는 이어 이 흥행을 바탕으로 후속작을 제작한다. 제목은 <강자아姜子牙>, 즉 주나라의 건국 영웅 강태공 여상의 이야기를 애니매이션화한 작품이다. 최근 제작되는 일련의 작품들은 길을 찾고자 하는 중국의 고민을 보여주는 것일 테다. 현재의 문제를 돌파할 길을 옛이야기에서 찾아보고 있다.


이야기는 힘이 있다. 하늘로 날아오른 곤이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저 먼 옛날 은나라를 무너뜨리는 활약을 펼친 강태공의 이야기가 재해석된다. 이는 장자와 사마천은 갑갑한 세계의 틀에 갇힌 인물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좀 다른 길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야기 속에 우리는 현실을 새롭게 관조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할 힘을 얻는다. 그것이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어버리는,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야기를 읽는 만큼 자유로워진다고 말해도 무방하리라.


하나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이면 우리는 종종 이 이야기들을 남의 것이라 생각하곤 한다. <장자>는 중국 고전이고 <사기>는 중국 역사라는 식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구약성서>에 기록된 것이 이스라엘의 역사에만 그치지 않는 것처럼, 그리스로마신화가 그리스와 로마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에는 주인이 없다. 가져다 쓰는 사람이 주인이다.


우리는 이야기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야기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젖혀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버팀목이 되기도 하며, 재미를 주기도 하며, 주장과 생각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 2021년 우리는 분명 어떤 역사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아니 벌써 훌쩍 지나버렸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의 태도가 개발되어야 하지만 여전히 낡은 습속에 매여 있는지도 모른다.


장자는 자명한 진리를 흐트려 버린다. 상식을 뒤엎고 일상을 낯설게 만든다. 장자가 그리는 인간은 한치도 이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지만 터무니없는 질문과 상상으로 가득 찬 존재다. 그래서 그는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껏 가지고 있던 지식이 쓸모 없어진들 어떠랴. 그는 기꺼이 변화를 반기는 사람이다. 모든 존재는 변화에 열려있다.


사마천은 제 삶의 고유성을 주장한 인물이다. 생사라는 실존의 문제를 맞아 그는 소멸에 저항하였다. 죽음은 언젠가 도래할 사건이지만 넋 놓고 맞이할 수는 없는 대상이다. 그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묻는다. 죽음이, 몰락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것들을 대할 것인가가 문제다. 일상이 무너지고 변화를 요구당하는 현실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낯선 변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문제다.


이럴 때 누군가는 안내자가 필요하다 말한다. 루쉰의 말을 빌리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 역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를 것이라고. 친절한 안내자보다는, 자명한 해답보다는 이야기들에 힘을 빌리자. 더 많은 이야기들. 장자와 사마천을 곁에 두는 것은 그래서 의미있다.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

https://url.kr/abfcl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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