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이 죽었다

장자와 만나는 장자 1

by 기픈옹달
話說天下大勢,分久必合,合久必分
천하의 흐름을 이야기해보자. 나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지면 반드시 나뉜다.


모종강의 <삼국지>는 통일과 분열,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는 중국 역사를 간결하게 정리하며 시작한다. 주나라의 몰락으로 나뉘었다면, 진나라의 통일로 합쳐지고, 다시 나뉘어 초나라와 한나라의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나라의 통일. <삼국지>는 이렇게 말한다.


주나라 말년에 일곱 나라로 나뉘어 다투다가 진나라로 통일되고, 진나라가 멸망한 뒤에 초나라와 한나라가 다투다가 다시 한나라로 통일되었다.

한고조 유방이 흰뱀을 베어죽이고 의를 일으켜 천하를 통일한 뒤로 광무제 때에 크게 일어났다가 헌제에 이르러 세 나라로 분열되었으니, 환제와 영제 때로부터 나라가 어지러워졌다.

<삼국지>, 황석영 역, 창비


중국 역사를 보면 한나라는 중간에 왕망의 신나라를 기준으로 나뉜다. 전한과 후한, 혹은 수도에 따라 서한과 동한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삼국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을, '동한東漢 말년末年'은 한나라 말 시작된 혼란기를 여는 말이다.


<삼국지> 혹은 <삼국지연의>는 말 그대로 세 나라가 서로 다투는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세 나라로 정리되는 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이고, 민란과 군벌의 등장, 조정의 혼란으로 <삼국지> 이야기는 막을 연다.


무능한 임금, 탐관오리의 등장, 도탄에 빠진 백성 등 뻔한 배경을 걸러내면 장각, 장보, 장량 삼 형제의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장각은 과거에 실패한 선비로 약초를 캐며 살았다. 장각은 산에서 한 노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장각에게 주는 책이 바로 <태평요술서太平要術書> 세 권이었다. 책 제목은 태평太平, 즉 천하를 평안케 한다는 내용이지만 장각의 행보는 이와는 좀 달랐다.


그는 산에서 내려온 이후 부적과 약물을 써서 백성들의 병을 고쳐주며 백성의 마음을 샀다. 수백, 수천 나아가 수만의 백성이 그를 따르자 다음과 같은 말을 세상에 퍼뜨렸다.


푸른 하늘이 죽어버렸다.
누런 하늘이 새로 서리라.
해가 바뀌면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蒼天已死,黃天當立
歲在甲子,天下大吉


이들은 누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다녔기 때문에 이들을 황건적黃巾賊이라 불렀다. 전통사회에서 '적賊'이란 사회를 어지럽히는 불온한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이 커다란 무리가 되어 나라를 뒤흔드니 흔히 이를 '황건적의 난亂'이라 한다.


허나 이는 조정의 시각에서 평가한 말일뿐이다. 역사 이래로 부당한 착취에 항거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난亂'은 '치治'의 반대, 즉 빨리 해결되어야 할 사회적 혼란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 혼란은 대부분 혼란의 원인, 그러니까 백성을 착취하는 관리나 토호들을 없애기보다는 불만을 품은 백성의 목소리를 짓밟는 식으로 해결되곤 했다.


조정이 볼 때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불온한 세력이겠지만 거꾸로 백성의 입장에서는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 사건을 '황건적의 난'이라 하지 않고 '황건기의黃巾起義', 누런 수건을 쓰고 의롭게 일어난 운동으로 부르기도 한다.


무튼, 장각을 대표로 하는 황건 무리는 성공하지 못했다. <삼국지>의 맥락에서 이들은 뒤에 출현할 영웅호걸을 위한 조연에 불과하다. <삼국지>를 대표하는 세 영웅, 유비, 조조, 손견은 모두 황건적 토벌로 공을 세운 이들이었다.


비록 '황천당립黃天當立' 누런 하늘을 새롭게 세우겠다는 이들의 목표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창천이사蒼天已死' 푸른 하늘이 죽었다는 선언은 분명한 현실이 되었다. 황건 무리의 퇴장과 함께 한나라 황제 역시 역사의 조연으로 물러서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삼국지>는 지금도 큰 사랑을 받는다.


돌아와 이 혼돈의 시대, 새로운 변화의 시대의 포문을 연 장각이 만났던 노인은 누구였을까. <삼국지>는 '푸른 눈에 동안이었고 손에는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다'고 묘사한다. 영락없는 신선의 모습이다. 장각이 그의 이름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한다.


"내가 바로 남화노선이다."
吾乃南華老仙也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바람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남화노선이란 바로 춘추전국 시대의 장주莊周, 그러니까 장자의 다른 이름이다. <장자>는 <남화진경南華眞經>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장자가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올라갔다는 설화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장자가 다시 땅에 내려와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장자>에서도 신선을 묘사하는 부분을 만날 수 있다.


"막고야산에 신묘한 사람이 살고 있데. 피부가 마치 눈처럼 뽀얗고, 여인과 같은 자태를 가졌다나. 헌데 곡식은 먹지 않고 바람과 이슬을 마신 다지. 구름을 타고, 용을 부리며 세상 밖으로 노닌다네. 신묘함을 모아 병을 고치기도 하고 곡식을 여물게 한다지. 그 말이 너무 어처구니없어 믿지 못하겠더라구."
<장자: 소요유>


그러나 <장자>는 장자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 부분을 다시 보자.


장자의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이 성대한 장례를 준비했다. 이를 두고 장자가 말했다.

"하늘과 땅이 있는데 관이 무슨 쓸모가 있느냐. 해와 달을 구슬 장식으로, 별을 옥 장식으로, 만물을 부장품으로 삼으면 된다. 관과 부장품이 모두 있으니 또 무엇이 더 필요할까."

"새들이 선생님의 시신을 쪼아 먹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땅 위에 있으면 새가 쪼아 먹겠지만, 땅 아래 있으면 벌레들이 먹겠지. 이쪽이 먹는다고 그것을 빼앗아 다른 쪽에게 줄 필요가 무엇이냐. 그렇게 하나만 생각할 게 무어냐."

<장자: 열어구>


장자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도 따로 장례를 치르지 말 것을 주문한다. 죽음 이후 인간의 육체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뿐이다. 과연 장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죽어서 땅에 버려졌을까? 장자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성대한 장례를 치렀을까. 그것도 아니면 전설처럼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을까.


나는 장자 역시 평범한 죽음을 맞았으리라 생각한다. <장자>는 유한한 삶을 인정하며 긍정하고 이를 충실히 살아내는 법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그렇다면 <남화진경>이나 남화노선이니 하는 이야기는? 이는 장자에 대한 또 다른 기대가 만들어낸 상상일 것이다.


다만 주목해 볼 것은 <삼국지>에서 왜 그를 호출했는가 하는 점이다. <삼국지> 이야기에 따르면 그 모든 혼란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남화노선, 장자에 이르지 않는가. 이는 <장자>의 중요한 특징, 난세의 텍스트라는 점 때문일 테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상상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때야 말로 <장자>에 주목할 시간이다.


합리적인 세계, 기존의 법칙이 별 무리 없이 작동하는 시대는 <장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장자는 예외적 존재, 비상식적 상황,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상식이 파괴되고, 끊임없이 질문이 솟구치는 시대에 <장자>는 빛을 발한다. 아니 반대로 <장자>는 안온한 삶에 균열을 내고 독자를 혼돈에 빠뜨리는 책일 수도 있다. 푸른 하늘, 자명한 진리에 균열을 내는.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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