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걷는 발길

장자와 만나는 장자 3

by 기픈옹달

<장자> 내편과 외잡편의 형식적인 차이로는 제목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내편>의 경우 각 편마다 세 글자의 제목이 붙었다. <소요유>, <제물론>, <양생주>, <인간세>,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이렇게 7편이다. 한편 외잡편의 경우에는 보통 시작하는 글자 가운데 두 글자를 뽑아 제목으로 삼았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자로 편명을 삼는 것은 고대 텍스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세 글자로 제목을 붙인 것이 좀 특별하다 하겠다. 다른 텍스트와 마찬가지로 <장자>에는 본디 편명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 따로 제목이 붙였으며, 특히 내편은 의미를 부여하여 새로 제목을 만들었다. 누가 이 편명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내편의 각 편명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편이다. 물론 <장자> 내편을 정리하고 여기에 제목을 붙인 사람은 꽤 고심하여 제목을 붙였을 것이다. 각 편의 핵심 내용을 대표하는 제목을 따로 지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편에서 가장 유명한 <소요유>와 <제물론>을 예로 들자.


<제물론齊物論>의 경우 '제물론'이라는 표현이 본문 안에 등장하지 않는다. 이를 두고 혹자는 '제물'론으로 혹자는 제'물론'으로 읽는데 이렇게 나누어도 마찬가지이다. '제물론'이라는 제목은 후대의 누군가가 이 편의 의미를 재구성하여 새롭게 붙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편의 제목을 입구 삼아 읽을 경우 부지불식간에 제목을 붙인 사람의 관점에 따라 <제물론> 편을 읽게 된다. 거꾸로 제목을 가리고 읽으면 어떻게 될까? '제물론'이라는 혹은 그와 비슷한 제목을 붙일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서 보다 자유로운 해석을 위해 가능한 제목을 잊고 <장자>를 읽기를 권하는 편이다. 외잡편처럼.


<소요유>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이 제목은 분명 '소요逍遙'와 '유遊'를 합쳐 놓은 것이다. 우선 '유遊'는 지금도 많이 쓰이는 한자이다. 예를 들어 '유희遊戱'라던가, '유원지遊園地', '유목遊牧'따위를 생각해보자. 즐겁고, 신나고, 자유로운 무엇이 떠오른 지 않는지. 여기에 '유흥遊興'까지 더하면 이 글자의 쓰임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글자를 '놀다'는 뜻으로 새긴다. 그러나 김시천이 지적했듯 이 글자는 '놀다'보다는 본래 '노닐다', '돌아다니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언제부터 여기에 '놀다'는 뜻이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후대에 의미가 확장, 변형되면서 위와 같은 뜻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일에 지친 우리가 이 글자를 보고 눈이 번쩍 뜨이는 것은 일견 당연한 일이라 하겠으나 과연 그것이 적절한 해석인지는 헤아려 볼 일이다.


장자 당대에 이 '유遊'의 쓰임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 있다. 바로 '유세객遊說客'이라는 표현이다. 지금도 쓰이는 '유세'라는 단어는 수천 년 전부터 쓰였다. '선거選擧'철이 되면 어디서나 화려한 사람들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다. 저마다 자기를 뽑아 달라며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자 애쓴다. 덕분에 선거철이 되면 볼거리가 풍성해진다. 그렇게 춤을 추고 별 짓을 다하던 인간이 불과 볓 달 후 표정이며 말투가 싹 바뀌는 것도 볼거리라면 볼거리라 하겠다.


그러나 장자 당대의 '유세'는 그와 달랐다. 당시의 '선거選擧'란 군주의 마음에 들어 자신의 뜻을 펼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순전히 제후왕의 손에 달린 일이었다. '유세'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이미 권력을 손에 쥔 사람을 찾아다니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금의 '유세'와는 큰 차이가 있다. 당시 '유세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로 공자가 있다. 지금의 유세꾼처럼 그 역시 수레를 타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가 탄 수레는 영 볼품없었으며, 유세를 위해 이곳저곳을 떠도는 그의 꼴 역시 별 볼 일 없었다. 오죽하면 그를 보고 '상갓집 개(喪家狗)'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까지 있었을까.


이렇게 보면 '유遊'란 도무지 낭만적이지 않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사는 일이란 매우 수고로운 일이다. 훗날 한비자는 유세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면서 '역린逆鱗'을 이야기하지 않았나. 당시 군주에게 유세하는 일은 얼마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따라서 '유遊'에서 억척스러움과 고단함을 읽어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거기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해 떠도는 삶이 묻어 있다.


한편 '소요逍遙'라는 표현은 <소요유> 끄트머리에 등장한다.


큰 나무를 가지고 계신다 하셨지요. 그게 쓸모가 없어 걱정이라구요. 그것을 어느 것도 없는 가 없이 막막한 들판에 심어둔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곁에서 '방황'해도 좋고, 그 아래에서 '소요'할 수 있겠지요. 잘려 나갈 일도 없고, 해칠 사람도 없을 겁니다. 쓸모가 없다며 고민할 필요가 뭐 있겠습니까?"

今子有大樹,患其無用,何不樹之於無何有之鄉,廣莫之野,彷徨乎無為其側,逍遙乎寢臥其下?不夭斤斧,物無害者,無所可用,安所困苦哉!


이야기의 배경은 이렇다. 장자의 친구 혜시라는 사람이 장자에게 묻는다. 자기에게 쓸모없는 나무가 하나 있는 데 이를 어떻게 할까 고민이라고. 크기는 한데 도무지 쓸모가 없어 골칫거리란다. 이 나무는 필시 장자를 두고 한 말이다. 네 말은 터무니없이 크기만 하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핀잔. 이 말에 장자의 대꾸가 재미있다. 쓸모없으면 어떤가? 이를 '아무것도 없는 곳, 드넓은 땅(無何有之鄉 廣莫之野)'에 심어두면 될 텐데. 그 곁에서 '방황'하며 그 아래서 '소요'하면 될 텐데.(彷徨乎無為其側 逍遙乎寢臥其下)


드넓은 땅에 심어둔 그 나무를 새롭게 이용하는 법이 바로 '방황'과 '소요'이다. 대구對句를 이루는 이 문장에서 왜 '소요逍遙'만 이편의 제목으로 남았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침와寢臥', 누워서 쉰다는 표현 때문이 아닐지. 실제로 <장자>를 그린 수많은 그림이 누워 잠자는 모습을 담았다. 여기에는 그 유명한 '호접지몽'의 고사도 큰 힘을 보탰을 것이다.


'소요' 보다는 '방황'에 주목해보자. 예를 들어 '소요유'가 아니라 '방황유彷徨遊'였다면 어떨까? 어쩌면 '소요' 보다는 '방황'이 위에서 언급한 '유'와 더 가깝지 않나? 장자가 혜시에게 제안한 낯선 공간, 아무것도 없는 곳, 드넓은 땅에 어울리는 것은 '어슬렁거리며 노니는 발걸음'보다는 방황하는 사람의 정처 없는 발길이 아닐까?


너희는 무엇을 보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이냐? <마테오의 복음서 11:7-8>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鄉'은 옮기기 까다로운 표현이다. '무하유無何有'라는 표현 자체가 모호하다. 이것은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일까. 이어서 장자는 '광막지야廣莫之野'를 말한다. 그가 제시한 '어느 것도 없는 고을無何有之鄉'이란 '아득히 넓어 끝이 없는 들판(廣莫之野)'이다. 오늘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광야라고 하면 적당할 테다. 이 광야는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 사는 곳이 아니다. 그곳은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공간, 바람만이 나를 휘감는 곳을 의미한다.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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