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와 만나는 장자
<장자>는 북명北冥, 어두컴컴 아득한 북쪽 바다에서 시작한다. 빛이 닿지 않는 캄캄한 깊은 바닷속에서 장자는 곤을 불러낸다. 이 아득하고 심원한 세계야 말로 <장자>를 읽으며 계속 들여다보아야 할 곳이다. 서양 철학의 주류는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비춰야 한다고 보았다. 빛은 지혜의 상징이자 진리를 드러내는 도구이다.
장자만 어둠에 주목했던 것은 아니다. <노자>에서도 이와 비슷한 표현을 만날 수 있다.
이 둘은 함께 나오나 서로 이름은 다르다. 함께 아울러 아득하다(玄) 하겠다. 아득하고 아득하니 모든 오묘한 것이 나오는 도다.
此兩者,同出而異名,同謂之玄。玄之又玄,衆妙之門。
여기서 현묘玄妙라는 표현이 나왔다. 도의 오묘함을 표현하는 말이다. 도는 무엇이라 분명히 묘사할 수 없음을, 흐릿하고 불투명하여 포착되지 않음을 나타낸 말이다. 그러나 또한 여기에 그치지 않고자 '현지우현玄之又玄', 아득하고 아득하다고 말하였다. 이를 줄이면 중현重玄이라 한다. 도의 모호함을 더욱 강조한 표현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도란 컴컴하고 캄캄하다 하겠다.
통상적으로 위진시대의 학술을 현학玄學이라 하며, 수당시대에 이를 더욱 발전시킨 것을 중현학重玄學이라 한다. 한나라의 몰락 이후 당나라라는 새로운 제국의 출현까지는 이른바 현玄, 즉 도를 더듬는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다시 <삼국지> 이야기로 돌아가 이 시대의 시작을 둘러보자.
한나라 황실은 황건적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애쓴다. 이때 새롭게 권력을 잡는 인물이 바로 대장군 하진이다. 백정 출신이었던 그가 대장군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누이가 바로 하태후, 한영제의 황후였기 때문이다. 황제의 외척으로 권력을 손에 쥔 것. 헌데 그는 후계자 싸움에 휘말려 비참하게 죽음을 맞는다. 그를 죽인 것이 십상시十常侍, 이 사건이 그 유명한 십상시의 난이다.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에 미루자. <삼국지> 이야기에서 밀려난 하진은 일족이 몰살당하는 화를 입는다. 그러나 다행히 손자가 살아 남아 후대에 이름을 남겼다. 그의 어머지 윤씨는 조조의 총애를 받아 조조의 아들과 함께 성장했다고 한다. 조비가 그를 두고 '주어온 자식'이라며 손가락질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하안何晏(190?~249). 그를 소개하는 이유는 그가 중국 철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까닭이다.
그는 <논어>를 정리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완성한다. 여기에 주석을 붙여 <논어집해論語集解>라는 책을 펴낸다. 이 책은 훗날 주희가 <논어집주論語集註>를 펴낼 때까지 약 1,000여 년 간 <논어>의 표준 주석이었다. <논어>의 역사를 둘로 나누면 하안의 시대와 주희의 시대로 양분할 수 있다는 말씀.
현학의 시대답게, 하안은 <논어> 이외에도 <노자>에 주석을 달고자 했다고 한다. 그러나 왕필王弼(226 ~ 249)을 만나고는 그 생각을 접었다. 왕필이 워낙 빼어나서 따로 글을 쓰는 것이 거추장스러운 일이었던 까닭이다. 왕필은 <노자>, <주역>에 주석을 달았다. 그의 주석은 오늘날까지도 <노자>와 <주역>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텍스트이다. 한편 온전한 상태로 전하지는 않지만 왕필 역시 <논어>에 관심을 가졌고 <논어>에 대한 글을 쓰기도 했다고 한다. 왕필에게는 <노자>, <주역>, <논어>가 모두 도를 이야기하는 텍스트 가운데 하나였던 셈이다.
역사는 한나라 말을 혼란기로, 그리고 이후에 일어난 여러 왕조를 묶어 '위진남북조'시대라 일컫는다. 어지럽고 복잡하다. 그러나 철학의 눈에서 보면 그 시기는 새로운 해석의 시대였다. 하안의 <논어>, 왕필의 <노자>와 <주역>이 그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위의 생몰 연대를 보면 알겠지만 왕필은 약관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그를 중국 철학사를 대표하는 천재 가운데 하나로 꼽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천재란 요절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의 죽음은 정치적 사건과 엮여 있다. 하안과 왕필은 동일한 해, 249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그 해는 사마의가 쿠데타, 이른바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은 해였다. 이 사건에 휘말려 하안은 처형당하고 왕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난다.
이처럼 이 시기는 혼란의 시대였다. 권력의 암투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재능 있는 이들일수록 화를 입기 쉬운 상황. 염세적 사상에 빠진 이들이 늘어난 것은 이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이들이 <논어>, <노자>, <주역> 등을 뒤섞어 연구한 것은 이런 시대의 어지러움과도 연관되어 있다. <장자>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노자>, <주역>, <장자>를 꼽아 삼현三玄이라 부르는데, 나름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당대 지식인들의 고민이 담긴 표현이다.
곽상郭象(? ~ 312)은 앞서 언급한 하안, 왕필과 함께 소개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의 행적은 크게 알려진 것이 없지만 <장자>에 주석을 달았다는 점은 주목해서 보아야 할 부분이다. 곽상의 <장자주>는 이후 <장자>를 읽는 이라면 참고해야 할 중요한 해석이다.
일찍이 사마천은 장자가 약 10만 자의 남긴 글을 남겼다고 말했다. 한편 한서 예문지의 기록에 따르면 <장자>는 모두 52편이었다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장자>는 총 33편, 약 6만 4천 자이다. 약 1/3이 전해지지 않는 셈이다. 아마도 곽상을 거치며 <장자>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형태로 정리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따라서 위진시대는 현묘한 도를 탐구하는 시대였던 동시에 고대의 텍스트를 새롭게 정리하고 해석하는 시대였다. <장자>는 물론 <논어>, <노자>, <주역>이 모두 이 시대를 관통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장자>에는 고대 전국시대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 장자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곽상 등 고대 지식인의 손때도 함께 묻어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점은 <논어> 등도 마찬가지일 테다.
조금 더 부연하면 오늘날 전해지는 <장자>는 내편, 외편, 잡편으로 나뉜다.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이 가운데 내편이 장자 본인의 목소리에 가까울 것이라 추정한다. 그렇다면 외편과 잡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통상적으로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후예들이 장자의 이름을 빌려 덧붙인 이야기라고 본다. 그렇게 <장자>에는 장자 본인의 말, 혹은 글과 그의 이름을 빌린 이들의 말과 글이 함께 뒤섞여 있는 셈이다.
문득 이런 질문이 든다. 과연 <장자>에서 장자 본인의 글이나 말이라 할만한 것이 있기나 할까? 내편 조차도 훗날 누군가 장자의 이름을 빌려 쓴 것이라면? 사실 이런 호기심 넘치는 질문에 정확히 답할 말은 없다.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과연 <장자> 속에서 장자 본인의 말은 얼마나 될까?
이런 호기심을 묻어두고, 혹은 이런 의심을 품고 읽어도 되는 책이 <장자>이다. <장자> 속의 장자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이야기했을 것 같다. 꼭 누구의 말이어야 그 글이 힘을 얻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은 작가를 떠나 글 자체로 제 길을 간다. 더구나 <장자>가 보여주는 길은 굽이굽이 컴컴하고 캄캄한 길 아닌가. 그러니 그 목소리가 또렷하게 장자의 것이 아니어도 무슨 상관이랴.
* 고덕평생학습관 강의 : 장자를 만나러 가는 길(5강)의 강의안 초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