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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Mar 25. 2024

기록의 나라, 조선 - 실록의 역사와 힘

와파서당 열린강좌

춘추, 사기에서 실록에 이르기까지


여러분은 어른의 나이를 물어볼 때에 어떤 표현을 사용하나요? 예컨대 할아버지의 나이를 묻는다고 칩시다. 어떻게 말하나요? "할아버지는 몇 살?" 이렇게 묻지는 않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이렇게 물어도 되지만 '나이'보다는 '연세'라는 표현이 더 적절합니다. 더 격식 있는 표현으로는 '춘추'라는 말이 있어요.


'춘추春秋'란 본디 봄[春]과 가을[秋]이라는 뜻이지만 한 해의 흐름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했어요. 나아가 역사책의 제목이 되기도 했습니다. 먼 옛날 공자는 자신의 나라, 노나라의 역사를 정리하고 <춘추春秋>라고 제목을 붙였다고 해요. <춘추>는 그저 과거의 사건을 기록해 둔 것에 그치지 않아요. 공자는 <춘추>를 쓰면서 훌륭한 사람을 높이고, 못난 사람을 낮추었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를 쓰면서 함께 그에 대한 평가를 한 것입니다.


공자의 <춘추>라는 책에서 '춘추시대'라는 말이 만들어졌어요. 먼 옛날 공자가 살았던, 여러 나라가 서로 다투던 시대입니다. 공자는 <춘추>야말로 자신을 평가할 책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무엇이 바른 것인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 기록한 것은 훗날 사람의 평가를 기대한 까닭입니다. 훗날 사람들이 역사를 읽고 어떻게 평가할까를 생각하며 책을 엮었습니다.


맹자는 <춘추>를 두고 이렇게 평가하기도 했어요. "공자가 <춘추>를 쓰자 난신적자가 두려워 떨게 되었다!" '난신적자'란 나라를 어지럽히는 못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제아무리 못된 사람도 훗날 사람들의 평가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는 뜻이에요. 비록 살아서는 마음대로 못된 행동을 저지르더라도 죽은 뒤 그 악행이 잊히지 않고 전해질 수 있습니다. 영원히 악인으로 기억된다면 어떨까요. 


공자가 <춘추>를 썼다면 몇 백 년이 흘러 사마천은 <사기>를 썼어요. 사마천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마천은 질문합니다. 왜 못된 사람은 떵떵거리며 잘 살까. 왜 착한 사람은 손해를 보고 억울한 삶을 살까. 사마천은 그 억울한 사람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역사에 기록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마천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어 '열전列傳'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마천 이후 사람의 이름 뒤에 '전傳'을 붙여 제목으로 삼는 글들이 여럿 나왔어요. '누구누구의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나라에서는 전문적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를 두었어요. 역사를 기록하는 관리를 사관史官이라고 해요. 이들은 공자와 사마천의 생각을 따라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러니 역사를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요. 제멋대로 나쁜짓을 저지르려는 사람은 사관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자신이 저지른 나쁜 짓을 기록하는 것을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사관을 죽이는 것이었어요.


<사기>에 기록된 일입니다. 제나라에 최저라는 귀족이 있었어요. 그가 제나라 임금 장공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임금을 죽일 정도였으니 최저의 권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로 최저의 위세가 대단했어요. 그런데 사관이 이렇게 썼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 시해란 신하가 임금을 죽였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안 최저는 사관을 죽였어요. 당연히 그 기록도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어요. 사관의 동생도 사관이었는데 똑같이 쓴 것입니다. '최저가 장공을 시해했다.' 게다가 여기에 하나의 기록도 덧붙였습니다. '이를 기록한 사관을 죽였다.' 이번에도 최저는 사관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사건이 영원히 지워졌느냐면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관, 막내 동생이 똑같이 적었습니다. 이번에도 최저는 칼을 빼들려 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다시 누군가가 나타나 기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더 많은 악행이 기록되겠지요. 결국 최저의 악행은 역사에 기록되어 지금까지 전해집니다. 임금을 죽였으며, 그 사실을 기록한 사관을 죽였고, 역사에서 그 사실을 지워버리려 했다는 것까지.


조선은 나라를 세우면서 사관을 두었어요.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국가의 중요한 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엮인 책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입니다. 그런데 본디 <조선왕조실록>은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행여 누군가 <실록>을 읽고 최저와 같은 짓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혹여 임금이 <실록>의 내용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고치도록 하거나, 그것을 기록한 사람을 해칠까 걱정해서 그 누구도 <실록>을 읽어볼 수 없게 했어요. 먼 훗날 조선이 망한 뒤 그 후손들이 읽고 평가할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임금도 열어볼 수 없었던 책 


조선은 임금 곁에 사관을 두었어요. 사관은 임금의 말과 행동을 모두 기록했답니다. 그러니 사관이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요. 태종 이방원은 엄청나게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쥔 임금이었어요. 자신의 형제를 죽였으며, 아버지 이성계를 임금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도 했답니다. 물론 이런 내용이 모두 <실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이런 기록까지 있어요.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하였다.


조금 우습지 않나요? 태종은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을 즐겨 했습니다. 신하들은 이런 임금의 모습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사냥을 나갔다가 말에서 떨어졌으니 신하들에게 잔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좀 창피한 일이기도 하지 않나요. 그래서 말합니다. '사관이 알게 하지 말라' 그런데 그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버렸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역사에 '박제'되고 말았네요. 떨어진 사실과 그것을 기록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까지. 


태종의 아들 세종은 역사에 남는 훌륭한 임금입니다. 그런 훌륭한 세종도 유혹을 이기지는 못했어요. 아버지 태종 시대를 기록한 <태종실록>을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신하들에게 명령하지만 거센 저항에 직면해요. 우리가 잘 아는 황희 정승이 앞장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 되옵니다. 만약 실록의 내용을 열어 본 일이 이후에 전해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훗날 임금도 열어보려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려운 마음에 어떻게 제대로 역사를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잘못된 일이 있어도 좋게 꾸밀 것입니다. 그렇게 꾸민 기록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세종도 <실록>을 읽어볼 수 없었어요. <실록>에 기록된 내용이 얼마나 궁금했을까. 그러니 어떻게 보면 세종보다 오늘날 우리가 더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의 꼼꼼한 기록을 잘 읽어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관은 임금 곁에서 꼼꼼하게 여러 일들을 기록했어요. 이것을 '사초史草'라고 해요.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이 사초를 모아 책으로 엮었습니다. 이렇게 엮인 책이 바로 <조선왕조실록>이에요. 지금처럼 기록이 편한 시대였다면 사초까지도 남겨두었겠지만 당시에는 사초까지 남겨 보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어요. 그래서 사초 가운데 중요한 내용을 정리해서 <실록>으로 엮고 사초는 없애버렸습니다. 어떻게 없앴느냐구요? 사초를 쓴 종이를 물에 씻어 글자를 지웠어요. 이를 세초洗草라고 해요. 


완성된 <실록>은 사고史庫에 보관되었어요. 본래는 주요 도시에 사고를 세우고 같은 책을 나누어 보관했답니다. 한양, 충주, 성주, 전주 네 도시에 사고를 두었어요. 한양에 둔 사고를 '춘추관'이라 이름 붙였어요. 왜 '춘추관'이라 했는지는 쉬이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사고에 보관한 <실록>이 통째로 사라질 뻔한 위기도 있었어요. 바로 임진왜란 때문입니다. 나라 곳곳이 전쟁으로 불타면서 실록도 큰 위기를 겪습니다. 다행히 전주 사고에 보관해둔 <실록>이 남았어요. 이 <실록>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이후 조선은 도시에 사고를 두지 않고 깊은 산속에 두었어요. 행여 다시 전쟁이 나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란 까닭입니다. 전주사고본은 강화도 마니산에 두고 새롭게 4개의 실록을 엮어 한양의 춘추관, 평양북도 묘향산, 강원도 오대산, 경상북도 태백산에 두었어요. 


오늘날에는 <실록>이 잘 정리되어 원본과 번역문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잘 정리되어 손쉽게 검색할 수도 있어요. 궁금한 내용을 자유롭게 한번 검색해 봅시다. 또 어떤 재미있는 기록이 있을 수 있을까요? 


https://sillok.history.go.kr/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이처럼 훌륭한 책이기 때문에 국보 15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오르기도 했어요. 나라의 보물인 동시에 세계적으로도 가치 있는 유물이라고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읽기에는 쉽지 않습니다. 잘 번역이 되어있는데 왜 어렵냐구요? 일단 분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조선이 5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니 <조선왕조실록> 역시 500년간의 분량입니다. 게다가 꼼꼼한 기록이니 얼마나 양이 많겠어요. 다 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형식도 술술 읽히는 글이 아니에요. 임금마다 책을 만들었는데, 몇 년 몇 월 몇 일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식으로 기록해 두었습니다. 이야기가 아니라 사건들이 그냥 나열되어 있어요. 딱딱하기도 하고 재미가 별로 없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기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내용도 많아요.


이런 까닭에 와파서당에서는 만화로 엮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습니다. 총 20권으로 엮인 이 책은 조선의 개국에서 시작해서 망국까지 500년간의 조선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만든 책이에요. 1대 태종에서 시작해서 27대 순종까지 총 27명의 임금을 모두 다루었습니다. 사실 실록은 25대 철종까지 쓰였어요. 철종 이후 고종과 순종의 경우에는 나라가 어지러워 제대로 실록을 엮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조선 역사를 다 다루기 위해 27명의 임금 이야기를 모두 엮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와파서당에서는 <조선왕조실록> 20권을 읽으며 전체적인 역사 흐름을 훑어볼 예정이에요. 꼼꼼하게 보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큰 흐름을 보며 전체적인 역사 흐름을 살펴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와 함께 한자 표현을 익힐 예정이에요. 역사를 공부하면 여러 한자 표현을 만납니다. 예컨대 조선을 세우며 태조는 천도遷都를 생각합니다. 천도란 수도를 옮겼다는 뜻이에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겼습니다. 


한편 조선을 어렵게 한 사화士禍는 어떤가요. 선비들이 피해를 입은 사건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외에도 여러 한자 표현들이 많아요. 역사를 공부하면서 만나는 한자 표현의 구체적인 뜻을 익히고, 그와 연관된 여러 한자 표현도 함께 다룰 예정입니다. 한자 표현을 익히는 것은 역사를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책을 읽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총 20권의 책을 넉달 동안 읽어요. 1기는 조선의 개국에서 시작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으로 손꼽히는 세종대왕 시대까지 읽습니다. <1권 개국>에서 <4권 세종•문종실록>까지입니다. 2기는 임금 자리를 빼앗은 세조의 찬탈에서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까지 살펴봅니다. <5권 단종•세조실록>에서 <8권 중종실록>까지입니다. 3기는 조선 중기를 뒤흔든 두 차례의 커다란 전쟁,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좌우의 역사를 알아봅니다. 선조와 인조 두 임금 시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9권 인종•명종실록>에서 <12권 인조실록>까지입니다. 마지막 4기는 좀 빠르게 이후 역사를 읽습니다. 이전까지 한 주에 한 권을 읽었다면 후반부에는 한 주에 두 권을 다룰 예정이에요. 북벌의 실패에서 조선의 망국까지, <13권 효종•현종실록>에서 <20권 망국>까지입니다. 


만화로 엮은 <조선왕조실록>을 읽지 않더라도 역사를 공부하는 방법은 여럿 있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공부할 수도 있고, 또 역사를 잘 정리한 책도 있어요. 그렇지만 <조선왕조실록>을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멋진 모험입니다. 역사는 변하지 않는 과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역사 이야기를 많이 접할 것입니다. 그 여러 경험 가운데 하나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읽는 것은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oI_QeG44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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