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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와파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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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09. 2024

두껍 선생의 이야기보따리

와파서당 고전논술 초급반

동물들은 이제 여우 따위는 거들떠도 안 봐. 여우는 호랑이나 등에 업고 위세를 떨었지, 두꺼비한테는 코가 납작 뭉개져 버렸잖아. 참다못한 여우가 발끈했어. 벌떡 일어나 두꺼비 앞으로 달려가 소리를 지르는 거야.

"매번 남의 말꼬리 붙잡아 요망하게 뒤흔들지 말고, 이번은 두꺼비 네놈이 먼저 말해 보라고!" 


누가 상석에 앉아야 할까. 나이가 많은 동물이 상석에 앉아야지. 그렇게 시작된 나이 자랑의 승자는 두꺼비였어요. 오룡산 동물들은 하나같이 두꺼비를 어르신으로 치켜세웁니다. 그러나 딱 하나, 여우는 불만이 많았어요. 두꺼비의 말재주에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으니까요. 코가 삐쭉 나온 여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습니다.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어요.


사실 두꺼비가 여우의 말을 되받아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여우보다 뒤에 말했기 때문입니다. 여우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랑하면, 두꺼비는 그 이야기에 덧붙여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꾸며낼 수 있으니까요. 꾀 많은 여우는 두꺼비의 이런 점을 알아채고는 두꺼비에게 먼저 말해보라고 따집니다. 이번엔 여우가 두꺼비의 말꼬리를 붙잡아볼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여우는 두꺼비의 상대가 되지 못했어요. 능청맞게 둘러대는 두꺼비에게 되려 당합니다. 두꺼비는 한 사냥꾼이 나타나 여우를 혼내주었다고 말합니다. 그 사냥꾼의 이름이 바로 맹상군이라네요. "맹상군을 만나고 아무렇지 도 않았다고? 맹상군은 요사스럽고 간사한 짐승은 눈뜨고 보지 못하는 성미지. 특히 여우 겨드랑이 털로 옷을 짓기로 유명하단 말이야." 


여우는 맹상군을 모른다고 잡아뗍니다. 사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으니까요. 여러분도 맹상군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보지 않나요? 사실 맹상군은 <사기>라는 책에 실린 인물 가운데 하나인데, 진나라에 잡혔다가 도망친 이야기가 유명하답니다. 그가 진나라를 탈출할 때 여우 겨드랑이 털로 지은 옷을 선물로 사용했어요. 지금 두꺼비는 그 이야기를 제 입맛에 맞게 꾸며 들려주고 있습니다. 한편 달기 이야기를 뒤섞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어요. 달기는 맹상군보다 훨씬 먼 옛날 인물이에요. 구미호가 변신해 달기가 되어 임금을 유혹했다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오룡산의 동물들은 입을 쩍 벌리고 두꺼비의 말을 들을 수밖에요.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어찌나 재미있는지. 모두들 두꺼비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 구미호가 달기와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을 했단다. 그러니 으스스한 아홉 개의 꼬리가 보일 턱이 없었단다. 젊은 왕은 달기로 둔갑한 구미호를 왕비로 맞을 수밖에. 그뿐 만이 아니야. 왕비가 어찌나 요망을 떨던지 젊은 왕은 점점 총명함을 잃어 갔어. 그때부터 왕비는 간사한 혀를 놀려 왕을 꾀기 시작했단다. 원래 여우 족속은 간사한 피를 타고났다더구나."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달린 여우를 말해요. 구미호에게는 사람으로 변하는 재주가 있었답니다. 두꺼비의 말에 따르면, 구미호가 달기를 죽이고 달기로 변해 임금을 어리석게 만들었다고 해요. 게다가 밤마다 궁궐 밖에 나가 죽은 사람의 머리뼈를 갉아먹고. 그래도 다행히 임금은 총명함을 되찾아 망나니를 불러 달기의 목을 베었다고 해요. 그 이후 용맹한 재상 맹상군을 불러 여우를 잡으라 명령했답니다. "간악하고 요망한 요괴 족속인 여우의 씨를 말려 버리라고 명령을 내렸어. 맹상군은 그때부터 여우를 잡아 겨드랑이 털을 뽑아 옷을 짓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래도 맹상군을 모른다고 잡아뗄 테냐?" 


여우는 두꺼비를 상대로 속수무책 당하기만 합니다. 이제는 요괴의 족속이라는 꼬리표까지 달고 말았어요. 여우는 이번엔 외모를 가지고 두꺼비를 놀려보고자 합니다. 우둘투둘한 두꺼비의 피부, 툭 튀어나온 눈 따위를 가지고 두꺼비를 놀리려 해요. 잠자코 여우의 놀림거리가 될 두꺼비가 아닙니다. 여우의 이야기에 한마디도 지지 않고 받아칩니다. 말씨름은 실제 싸움으로 번지고 마네요.


여우와 두꺼비가 한바탕 싸움을 벌이려는 데 동물들이 함께 나섭니다. 두꺼비 편이 되어 함께 여우를 상대하기로 한 것이에요. 제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여우라 하더라도 산골 동물들을 한꺼번에 상대할 수는 없습니다. 등 뒤에 식은땀이 나는 그때, 원숭이가 소리칩니다. "크, 큰일 났다. 이럴 줄 알았다, 알았어! 살쾡이를 앞세운 호랑이가 달려온다, 달려와!" 


까마귀를 길잡이 삼아 먼저 살쾡이가 앞장서 나타났어요. 살쾡이는 산골 동물 가운데 제법 사나운 동물로 고양이를 닮았습니다. "이런 인정머리 없는 놈들!" 살쾡이는 흉악스런 입을 벌리며 호통칩니다. 헌데 토끼가 당당하게 살쾡이에게 맞서는 게 아니겠어요. 두꺼비를 믿고 배짱이 생긴 것입니다. 역시나 살쾡이도 두꺼비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들에서는 도둑고양이 행세하며 병아리를 잡아먹고, 산에 가서는 호랑이인 체하며 다람쥐들을 잡아먹고 다닌다니?" 박쥐 같은 놈이라며 동물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 살쾡이야 이렇게 상대하면 되지만 호랑이에게도 그럴 수 있을까요. 호랑이가 커다란 입을 쩍 벌리며 동물들 앞에 나타납니다. 


동물 모두가 호랑이의 기세에 눌려 뒤로 물러나려는 그때! 두꺼비가 앞으로 나서는 게 아니겠어요. 두꺼비는 독을 내뿜으며 호랑이를 상대합니다. 호랑이가 솥뚜껑만 한 앞발을 들어 두꺼비를 치려하는데, 토끼가 깡충 뛰어올라 호랑이 뺨을 후려칩니다. 그다음엔 원숭이, 그다음엔 너구리, 산골 동물들이 모두 달려드니 호랑이도 달아나는 수밖에요. 호랑이도 살쾡이도, 그리고 여우도 꼬리를 빼고 달아납니다. 


산 좋고 물 좋은 오룡산 노루 선생 회갑 잔치 열리네. 오늘 하루 일손 놓고 얼씨구절씨구 놀아 보세. 호랑이 믿고 까불대는 여우 두껍 선생 긴 혀가 주둥이 묶어 버렸네. 호랑이인 척 뻐겨 대던 살쾡이 떡메 치듯 찰싹 뺨따귀 얻어맞았네 얼씨구절씨구 놀아 보세. 호랑이 이빨 무섭다 말게. 두껍 선생 매서운 독이면 이빨 쏙쏙 빠져 합죽이 된다네. 호랑이 없는 오룡산에서 얼씨구절씨구 놀아 보세. 


동물들은 어떻게 호랑이에게 당당하게 맞설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야기에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매력적인 이야기는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것은 물론, 듣는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읍니다. 두꺼비 이야기에 동물들은 하나가 되었어요. 하나씩 따로였다면 호랑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지만 다들 힘을 합치니 호랑이를 거뜬히 물리칩니다. 이야기꾼 두꺼비가 산골에 평화를 가져왔네요. 혀는 발톱보다 부드럽지만 이빨보다 날카로울 수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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