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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Apr 25. 2024

황하에서 중국을 읽다

중국인문여행 답사 이야기

2002년 전국이 월드컵으로 들썩이던 그 해, 저는 중국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란저우兰州라는 아주 외진 도시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2002년 대한민국의 함성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대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경험을 얻었습니다. 그 해 중국에서 보낸 시간이 지금까지도 중국을 오가는 밑거름이 되었으니까요.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란저우를 갔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몇 해를 미루고 이제야 란저우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란저우만 가기에는 영 심심합니다. 크게 볼 것이 없는 도시인 까닭입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머리를 굴리며 궁리하다 실크로드를 여행해 보기로 합니다. '우루무치 - 가욕관 - 둔황 - 란저우'를 둘러보기로 마음먹고 과감하게 항공권을 예약했습니다.




새벽에 모든 것이 바뀌다


일상이 바쁜 데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니 떠나는 항공권만 예약해 두고 아무런 계획을 세우지 않았습니다. 막상 짐을 싸고 준비하니 머릿속이 복잡합니다. 대략적으로 일주일 일정을 계획했는데, 아무래도 네 곳을 다 보고 오기에는 시간이 빠듯합니다. 기차에서 보내는 시간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되라지 걱정을 덮어두고 잠을 청합니다.


얼마나 잤을까. 새벽에 갑작스레 전화가 울립니다. 이 시간에 전화가 올 곳도 없는데... 받아보니 항공권을 예약한 회사인데, 항공편 시간이 변경되었답니다. 한 시간 정도 미뤄졌다나. 갑작스레 잠은 달아나고, 머릿속은 복잡하고. 과감하게 모든 일정을 변경했습니다. 먼저 란저우로 가자! 그리고 소문으로만 듣던 황하석림을 봐야지. 사마천의 고향으로 가서 후커우폭포도 보자. 그러고 보니 황하가 란저우를 가로지릅니다. 이번 여행은 우연히 황하를 키워드로 삼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서둘러 정보를 수집하고 동선을 짭니다. 항공편은 톈진에서 갈아타 란저우 중촨공항으로 갑니다. 황하석림을 보려면 란저우로 가는 것보다는 바이인白银으로 바로 가는 게 낫습니다. 한편 란저우에서 사마천의 고향 한청汉城으로 바로 가는 방법은 없네요. 시안을 거쳐 가야 합니다. 이렇게 대략적인 일정을 수정했습니다. 


란저우 중촨공항 --> 바이인 황하석림 -(기차)-> 란저우 -(침대기차 환승)-> 한청 -(기차)-> 시안 --> 귀국



바이인 - 란저우 - 한청



 

하늘은 파랗게 대지는 누렇게 강물은 더 누렇게 


먼 옛날 천지는 평평했다고 합니다. 헌데 공공共工이라는 자가 나타나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인 부주산을 부쉈다나요. 그래서 땅이 동남쪽으로 기울게 되었다는 이야기. 신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서북쪽의 황토 고원을 보면 이곳의 모래와 흙이 황하를 따라 멀고 먼바다까지 흘러간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서해를 황해黃海라고도 부릅니다.


란저우 중촨 공항에 내리니 황량한 산들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바이인시 북쪽에 위치한 황하석림은 황토 고원의 기이한 지형을 잘 보여줍니다. 황하석림까지 가는 차 안에서 기사는 수천만 년 간 바람과 빗물에 씻겨 그 기이한 모습이 만들어졌다고 이야기하네요. 과연 언제부터 이렇게 기이한 모습이 만들어졌을까. 공공이 부주산을 부수기 전에는 평평했던 땅이었을까.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황하석림에 이르니 장관이 펼쳐집니다.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느낌입니다. 실제로 이곳에서 찍은 영화도 많다고 하네요. 운이 좋은 것일까. 이 넓은 곳에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저벅저벅 모래길을 걷는 것은 꽤 인상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돌이 아닌 황토로 이루어진 계곡을 걸으며 이게 무너지는 일은 없을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비가 내려도 물이 다 지하로 흘러내려 풀도 제대로 자라지 못해 이런 황량한 풍경이 만들어졌답니다. 


그래도 황하를 옆에 낀 작은 농촌 마을에서는 사과를 재배하고 있습니다. 황량한 황토 고원을 배경으로 핀 흰 사과꽃이 인상적입니다. 도무지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은 이 땅에도 오래전부터 강물을 젖줄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황량한 땅을 가로지르는 이 강물을 보며 옛사람들은 역사를 이야기하곤 했답니다. 





흐르는 것이 어찌 강물뿐이랴


20년 만에 란저우를 찾았습니다. 란저우는 서북지역의 중요한 교통의 요지입니다. 북쪽으로는 칭하이와 신장 위구르 쪽으로 가는 길이, 남쪽으로는 티베트로 가는 길이 펼쳐집니다. 갈림길에 위치한 도시여서 그런지 위구르족, 티베트족, 몽골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을 만날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중원 문화의 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도시에서 중국을 만나, 중국을 좀 다르게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기억 속에 담긴 란저우의 모습은 꽤 황량한 모습이었습니다. 숲에 나무도 없는, 회색빛의 도시. 20년 간의 녹화 사업 덕분일까. 아니면 그 간 중국의 성장과 함께 도시도 발전했기 때문일까. 예전의 황량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바이인에서 옛 그 모습을 읽었을 뿐입니다. 왠지 아쉽기도 하고 서운했습니다.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까닭에. 그러나 또 옛 모습 그대로 멈춰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동서로 가로지르는 황하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산이 있고, 그 사이에 들어선 도시가 란저우입니다. 란저우의 명물 가운데 하나가 황하제일교, 중산교中山桥입니다. 황하에 처음으로 건설된 이 철교는 1906년 독일인에 의해 만들어졌답니다. 20년 전에는 차들이 오가는 다리였는데 지금은 차는 다니지 않고 사람만 다닙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20년 만이니 영 낯선 도시가 된 것도 당연합니다. 공자는 일찍이 강가에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逝者如斯夫). 그는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일까요. 고래로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이야기하는 말이라고 여겼습니다. 강물이 끝없이 흐르는 것처럼 역사는 끝없는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아쉬워한들 그 필연의 변화를 막을 수는 없는 일입니다.




흐름을 따르면 용이 되지 못한다


등용문登龙门 고사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거센 물의 흐름을 거슬러 오른 물고기가 용이 되었다는 이야기. 헌데 실제로 용문龙门이라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덜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한청汉城 부근입니다. 한청에서 만난 한 청년이 말하더군요. 사마천 덕분에 지금껏 먹고사는 도시라고. 네, 등용문 고사의 도시이자 사마천의 고향인 한청을 찾았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따로 긴 이야기를 해야 할 정도로 많은 이야기가 필요한 책입니다. 다만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자의 건 타의 건 그는 흐름에 편승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예상치 못한 화를 입고 자신의 불우한 삶을 <사기>를 쓰는 데 투사했습니다. 흔히 역사를 거센 황하의 흐름에 비유합니다. 거침없이 흘러가는 거대한 흐름. 그러나 사마천은 <사기>에 흐름을 거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한청 남쪽에는 310년 서진시기에 세웠다는 사마천의 묘와 그 사당이 있습니다. 과연 사마천의 무덤이 맞을까. <사기>라는 방대한 저작을 남겼지만 사마천의 행적은 많은 부분 비밀로 남겨져 있습니다. 수백 년 뒤 세워진 묘라니 좀 의심쩍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의 거대한 동상을 보며 마냥 신났습니다. 그의 삶을 동경했던 까닭이고, 그의 글을 사랑했던 까닭입니다.



순수하게 글을 읽는 것으로만 만족했다면 여기서 이렇게 들뜨기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마천 동상과 함께, <사기>의 12 본기를 만든 석상을 보며 마냥 좋았습니다. 훌륭한 글은 살아서 스스로의 힘을 갖기 때문은 아닐지요. 실제로 유방과 항우의 싸움이 어땠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기의 유려한 글에 그려진 이 둘의 치열한 싸움은 지금도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먼 옛날에는 강이 번번이 범람하여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 없었다고 해요. 우 임금이 물길을 내어 비로소 백성들이 농사를 짓고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 임금의 치수治水 이야기에서, 정치(治)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노력도 있습니다.  그 이야기 때문인지 한청에는 먼 옛날 우 임금을 모시는 사당도 있습니다.


우 임금의 치수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황하는 그토록 거센 강이었을까. 실제로 역사에서 황하는 수 차례 범람했고, 그때마다 물줄기를 바꾸었답니다. 그러나 도도히 흐르는 황하를 보며 그런 옛이야기를 실감 나게 받아들이기는 힘든 일입니다. 강은 강일뿐, 그것이 어떤 힘과 역동성을 지닌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막상 후커우 폭포에 이르니 생각이 다릅니다. 커다란 강이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고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옛사람의 말이 마냥 멋대로 지어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지금도 강 건너편이 아득한데 옛날은 어땠을까요. 이 거센 강을 손에 틀어쥐고 잔잔히 흐르게 한 우 임금은 분명 훌륭한 임금일 것입니다. 그러나 등용문 고사와 이곳에서 난 사마천이라는 인물은 더 짜릿합니다. 도도히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용이 된 사마천, 그의 글을 동경하는 것은 마냥 흐름에 맡겨 흘러가는 삶을 바라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인문 중국, 어디까지 가봤니?


이웃나라 중국은 늘 시끄러운 대상입니다. 자잘한 사건사고들로 어찌나 소란스러운지요. 그러나 인문 중국은 여전히 탐구할 대상입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 곳입니다. 책 속의 이야기를 책에서 만족한다면 모르겠지만, 책 밖에서 읽고 체험하기를 바란다면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국가의 경계를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는 오늘날 글에서 길을 읽고, 길 위에서 글을 읽기 가장 좋은 시절이 아닐지요.


무작정 떠난 여정이었지만 좋은 답사였습니다. 또 다른 중국인문여행을 위해 여러 자료를 조사하고, 현지의 상황을 알아보고 돌아왔습니다. 짧은 스케치에 담지 못한 여행의 세세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 담아보겠습니다. 아울러 고전을 읽고 중국을 여행하는 중국인문여행 팀을 다시 꾸려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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