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캐한 화약 냄새가 도시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친구 말로는 정월 보름이라 폭죽을 터뜨리는 거라 했다. 밤이 되었는데도 총소리나 대포소리만큼 커다란 폭발음이 곳곳에서 들렸다. 도시에서 전쟁이 나면 이런 모습일까? 션양沈阳 밤거리를 거닐며 생각했더랬다.
2002년 겨울, 중국 란저우兰州로 가기로 했다. 정말 무턱대고 마음먹은 길이었다. 솔직히 란저우가 정확히 어디 있는 도시인지도 몰랐다. 서북쪽 어딘가에 있는 도시라는 것만을 알뿐. 앞으로 그곳에서의 삶이 어떨지도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공항에 내리면 맞을 사람이 있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란저우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다. 오래도록 기차를 타거나 아니면 중국 내 항공편을 이용해야 한다. 션양을 경유해 가기로 했다. 한 친구가 션양에 있었기 때문이다. 화약 냄새에 절어 고작 하룻밤을 보내고 란저우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할 줄 아는 말이라곤 인사 한마디에 이름 소개가 전부였지만 눈치껏 비행기에 잘 올라탔다.
란저우의 첫인상은 황량했다.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길에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흙산들 뿐이었다. 광야라는 게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시내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온통 회색이었다. 협곡에 위치한 공업도시. 해발 약 1,500미터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이 도시의 공기는 탁하고 건조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황허강도 뿌옇기는 마찬가지.
첫날을 얼렁뚱땅 지내고 이튿날 첫끼니로 란저우 니우로우미엔牛肉面, 우육면을 먹었다. 입구에서 돈을 내면 작은 종이 표를 찢어주는 데 이것을 가지고 주방 앞에 가져다주면 즉석에서 면을 뽑아 삶아서는 국수 한 그릇을 뚝딱 만들어준다. 뿌연 국물에 무 몇 조각, 흰 면발에 파와 고수, 그리고 고추기름.
입맛이 까다롭지 않았기 때문일까? 첫끼니부터 잘 먹었다. 값도 싸서 당시 넉넉지 않은 호주머니 사정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그릇에 2元, 당시 환율로 국수 한 그릇이 채 400원이 안 되는 가격이었다. 가끔은 돈을 더해 고기 몇 조각을 얹어 먹거나 계란을 더하기도 했다. 加肉, 고기를 더 해 달라면, 작은 손저울에 얇게 썬 고기 몇 조각을 얹어 더해주곤 했다.
흰 모자를 쓴 회족回族들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흰 모자에 궂은 노동으로 검게 탄 피부가 인상적이었다. 퍽퍽 소리를 내며 금세 면을 뽑는 솜씨도 좋은 볼거리였다. 주방에는 커다란 밀가루 덩어리가 있는데, 어찌나 반죽을 잘하는지 몇 번 손이 좌우로 스치듯 지나고 나면 긴 국수 다발이 만들어지곤 했다.
조금 지나자 요령이 생겼다. 예를 들어 고추기름을 덜 넣어 달라던가. 고수를 적게 넣어 달라던가 등등. 한편 면 굵기나 모양을 골라 주문하는 요령도 배웠다. 가만히 있으면 보통 굵기로 뽑아주지만 이야기를 하면 다르게 뽑아 주기도 했다. 크게 나누면 가는 것, 굵은 것, 넓은 것. 나는 특히 넓은 것을 좋아했다. 밀가루 면 씹는 맛이 있다고 할까?
우육면도 맛있었지만 볶음면(炒面), 비빔면(拌面)도 맛있었다. 가끔은 시장에 나가 양꼬치를 한참 베어 먹고는 비빔면으로 나머지 배를 채우곤 했다. 컴컴한 시장 골목 중간에서 희미한 전등 아래 먹는 맛이 기가 막혔다. 그렇게 배를 채워도 우리나라 돈으로 채 몇 천원이 안되곤 했다.
이듬해 란저우에서 돌아와서는 우육면을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다. 홍콩식 우육면도 먹어보고, 대만식 우육면도 먹어보았다. 한참 시간이 지나니 우육면 라면도 나오더라.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 중국에 갈 때마다 청진清真, 회족 음식점을 들리곤 한다. 우육면을 시켜보는 건데, 먹을 때마다 불만이 많다. 란저우에서 매 끼니마다 먹던 그 맛이 아닌 까닭이다. 어디는 국물이 너무 달았고, 고기가 많기도 했고, 면이 너무 고르기도 했고, 여러 재료를 더하기도 했다.
사실 란저우 우육면은 별로 화려한 맛이 없다. 투박하다. 황량한 도시에서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니 어떻겠는가. 재료도 간단하고 맛도 단순하다. 다른 데서 먹은 우육면은 뭔가 더 있다는 게 문제였다. 별것 아닌 음식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란저우 우육면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그 시절 막무가내로 먹던 추억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 생각해보면 투박한 면이 갖는 매력이 있다. 고향에서 어릴 적 먹던 칼국수도 비슷하다. 그저 뚝뚝 썰어낸 칼국수 면에, 파, 호박, 쑥갓 정도가 전부였다. 해산물이 없어 감칠맛이라고는 없는 뻑뻑한 맛. 겨우 면에 간을 한 정도라고 할까. 가끔 그런 밋밋한 칼국수가 그리운데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온통 감칠맛이 넘치는 것들 뿐이다.
란저우에 가서 먹어야지. 2020년 겨울 중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란저우에 꼭 가고 싶었다. 가끔 ‘우리 동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짧지만 그곳에서의 추억이 깊은 까닭이다. 언젠가 멀리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이었을 게다. 란저우 시내에 들어서자 몸이 늘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먼 이국땅에서도 고향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그러나 코로나 사태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꾸역꾸역 일상을 사는 수밖에. 어느 날 20여 년 전, 란저우에서 동고동락하던 이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대림동에서 중국인이 운영하는 훠궈집에서 만났다. 옛날 추억을 훑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다 종로에 우육면 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란저우의 맛이었다는 평.
멀지 않으니 언젠가 꼭 가야지. 벼르면서 인터넷 리뷰도 찾아보았다. 누구는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다. 기대하지 말라는 리뷰가 눈에 띈다. 뭐, 그래도 어떤가. 고향의 맛(!)을 맛보러 가야지.
가게에 들어서니 반가운 식기가 반긴다. 란저우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족들이 사용하는 문양의 식기가 딱 마음에 든다. 면 종류를 고를 수 있다니, 나는 8번을 시켰다. 지갑에 여유도 있으니 고기도 추가!
반갑게도 옛 모습 그대로 나왔다. 국물을 맛보며 헛웃음을 쳤다. 오랜만에 반가운 향을 만났기 때문이다. 국수 한 그릇을 먹으며 여러 생각을 했다. 20여 년이 지나 2元에 먹었던 국수를 거의 20배나 되는 가격에 서울 한복판에서 먹다니. 뭔가 기묘한 반가움이 들었다. 한편 다시 마음을 먹었다. 꼭 란저우에 가야지. 란저우도 많이 변했다는데, 그곳의 낡고 오래된 가게의 맛도 이와 비슷할까.
문득 특별히 잘하는 우육면 집을 찾아서 대접해주었지만 국수를 반도 먹지 못했던 한국 친구들의 얼굴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 입맛에는 딱인데, 낯선 맛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이들. 아마 누구를 데리고 와도 비슷하지 않을지. 결국은 나 혼자 다시 와야겠다 생각했다. 다른 면으로 먹어봐야지.
란저우를 떠나는 기차 속이었다. 란저우에서 상하이로 가는 기차였는데, 20시간 넘는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차에서 무료하니 앞에 있는 사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낯선 외국 친구에게 란저우 우육면을 먹어보았느냐며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란저우 우육면에는 다섯 가지 뭐가 있다고 했었는데. 무엇은 붉고, 무엇은 푸르고 등등. 그때 그 말을 잘 듣고 외워둘 것을 하는 후회도 들었다.
헌데 웬걸. 국수를 해치우고 자리에 일어나니 바로 뒤에 란저우 우육면을 소개하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거기에 쓰여있구나. 일청, 이백, 삼홍, 사록, 오황. 국물은 맑고, 하얀 무가 있어야 하며, 붉은 고추기름에, 푸른 파, 그리고 누런 국수까지.
몇 번은 다시 가야지. 그리울 때마다, 기운 떨어질 때마다. 국수 먹고 힘내야지. 물론 란저우도 언젠가는 꼭 다시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