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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픈옹달 Sep 22. 2024

사대부의 철학

책나눔 #1

* 이사를 앞두고 책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손때가 많이 묻은 책이라 버려질 운명일 테지만, 그래도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전하려 합니다. 한편으로는 정든 책들과의 이별에 대한 메모이기도 합니다.


성리학, 주자학, 송명도학... 중국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뛰어들었을 때 도무지 머리가 어지러워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여러 용어가 혼재되어 정리가 잘 안 되었던 까닭이다. 주자학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양명학을 공부해야 한단다. 누구는 그들이 다르다고 하고, 누구는 비슷하다고 하고...


아마도 가장 기념비적인 책은 시마다 겐지의 <주자학과 양명학>일 것이다. 옛날 까치에서 나온 구판을 읽었는데 A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신판이 나왔다. 그러나 신판도 별 인기가 없나 보다. 검색해 보니 절판되었네. 시마다겐지의 책 때문인지, 아니면 전통적 권위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는지 주자학 - 주희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보다는 사상사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책들을 많이 읽었다. 


아라키 겐코의 <불교와 유교>는 꽤 충격적인 책이었다. 간단히 요약하면 불교의 철학을 유학자들이 수용한 결과가 성리학이라는 것. 유학자의 옷을 입은 불학佛學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면 일본 학자들의 책을 많이 읽었다. 주자학의 고유성보다는, 사상사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관점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미우라 쿠니오의 <인간 주자>는 주희의 일대기를 공부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주희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열어볼 수 있는 책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젊은 주희의 사상적 방황을 이야기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쓰치다 겐지로의 <북송도학사>, 구스코토 마사쓰구의 <송명유학사상사> 이런 두꺼운 책을 끼고 살았다니 스스로가 대견하게 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그 내용이 일일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전목(첸무)의 <주자학의 세계>, 진래(천라이)의 <주희의 철학>, <송명성리학>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중국학자들의 관점이 보다 더 전통적이랄까. 즉 주희가 이야기하는 도통道統의 입장에 치우쳐 있다는 뜻이다. 공자 이래로, 혹은 그보다 더 먼 옛날부터 전해내려온 도의 계보가 주희에 이르러 꽃 피웠다는 것. 마치 구약의 예언이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듯. 그런 면에서 주희는 여느 철학자와 다른 지위와 권위를 갖는다.


고지마 쓰요시의 <송학의 형성과 전개>는 이런 관점에 대항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즉 송대에 이루어진--어느 학자는 당송시기라고 할 테지만--철학적 여정의 하나로 주희를 설명한다. 새로 출현한 사대부라는 계층의 철학, 다양한 철학적 개념이 완성되고 정리되는 과정으로 본다는 뜻이다. 그래서 주자학이니 성리학이니 하는 것보다 '사대부의 철학'이라는 말을 선호하고 있다. 한때 고지마 쓰요시의 관점에 무릎을 치며 그의 글을 더 읽고 싶다고 목말라하던 적이 있는데, 찾아보니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는 없다. 번역된 책이 별로 없구나.


이런 맥락에서 시드도어 드 베리의 <중국의 '자유' 전통>과 같은 조금은 덜 철학적인 책에 더 매력을 느꼈다. 전통 사상이 자유를 억압했다는 기존의 뻔한 관점에서 벗어나 중국적 자유, 더 넓게는 동아시아적 혹은 동양적 자유라고 할 만한 것에 대해 탐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전통'이라는 말을 참 좋아하고 있구나...


정리해 보니 스스로 왜 주자학을 더 이상 파고 있지 않은지 알겠다. 하나의 완성된 결과로써 철학, 혹은 특정한 철학자에 별 관심이 없어진 까닭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곁에 두었던 <근사록 집해>도 덜어낸다. 한때 근사록 강독에 열이 붙어서 끙끙대며 읽었던 적이 있으나 요즘은 철학적 글을 읽는 것보다는 더 다채롭고 풍성한 글을 좋아한다. 




손때가 묻고, 밑줄도 그어진 책입니다. 버릴 책이나 필요하신 분은 편하게 연락 주세요. 약 1주일 뒤에  처분할 예정입니다. https://open.kakao.com/me/ZZiRA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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