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빡이 대머리 아저씨와 답답이 순딩이 아저씨의 이야기를 아는지. 어린 시절 개그 소재였던 그 두 사람이 사실은 전두환과 노태우였다는 것은 한참을 지나 알았다. 대부분 빡빡이 대머리 아저씨를 놀리는 이야기였는데. 코흘리개 아이가 그것 웃긴 이야기로 들었던 것은 그 옛날 엄혹한 시절의 그림자일 테다.
최루탄 냄새는 아련한 기억으로만 존재한다.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라는 그 말이 내가 기억하는 첫 선거이다.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전에는 군사정권 시절이었으니. 그렇게 자연스레 87체제 위에서 성장했다.
요즘은 가장 최악의 상황을 그려보고 있다. 최선과 차선, 차악과 최악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최악일까. 윤이 돌아오는 것? 냉소 어린 시선이나 그러지 못할 게 무어냐는 생각이다.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냥 헛된 망상은 아니다. 당위야 어쨌든 현실은 더 시궁창에 엉망인 경우가 많으므로.
5:3 기각설을 보는데, 이젠 지쳤는지 차라리 그게 낫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답을 내고, 거기서 시작할 것. 가장 최악은 이도저도 아니게 시간만 흘러가는 것이다. 윤을 탓하고 이를 탓하며 그냥 손가락질하는 것.
쓸어낼 것과 버려야 할 것. 썩어진 것과 문드러진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그냥 저냥 지쳐가는 것. 우리가 그려보아야 할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낡은 체제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 윤을 단죄하는 것이 우리의 미래일 수는 없다. 그것은 초석이며 출발이지.
하여 생각하는 건 우리의 미래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낡은 체제가 삐걱대는 것을 보면서 윤의 자기 파괴적 비상계엄은, 곧 87 체제의 몰락을 상징하는 사건이 아닌가 생각해 보는 것이다. 윤석렬도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 않았나. 비록 모의 법정이었지만.
서울대 법학과 혹은 사회 정의를 세운 그의 또래들이라고 그와 다를까? 더 청렴결백하고 깨끗하고, 정직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느냐 하는 질문이다.
미래를 그리지 않는다는 걸 탓하는 거다. 나도 이 사회의 기득권의 귀퉁이를 차지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는 맨 얼굴에 치를 떨고 있다.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며 자기 주관도 철학도 없는 것들. 자기 욕망에 충실한 괴물들의 맨 얼굴에 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그런 허약하고 나약한 엘리트들이 미래의 모습일 수는 없지 않을까. 무엇보다 다른 미래를 그려야 한다. 나는 우리의 미래가 윤의 제단 위에 서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를 척결한 제단을 미래의 초석으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 그냥 파묻어 흔적없이 덮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최후에 축배를 들되 그것이 기념비가 되어서는 안 될 것. 마찬가지로 그를 척결한 것을 훈장으로 삼아서도 안 될 것이다. 그의 최후는 출발점이 아니라 마침표여야 한다. 나는 사필귀정을 믿지 않는다. 역사는 종종 배신하며 잔혹하도록 잔인한 삶을 선물하곤 한다. 중요한 것은 미래를 꿈꾼 자가 미래를 열어젖힌다는 것 또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