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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예인 Jul 26. 2023

30대 희망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결정하다

<권예인 사무실> 출근 이틀째

<권예인 사무실>로 출근한 지 이틀째.

아직 간판도 명함도 없는 사무실이지만 엄연히 나는 출근 이틀차를 맞았다.


'음.... 무슨 간판이 좋을까? 어떤 명함이 좋을까? 문구는... '  

5평 남짓한 이곳에서 나는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오늘 출근 후에 한 일은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제1의 인생 찌꺼기를 정리하는 것과 새로운 사무실에 어떤 간판을 걸지 찾아보다가 결국 간판에 쓸 문구가 마땅치 않다는 걸 깨닫고선 탕짬면을 시켜 먹은 것이다.


5일 뒤면 제1의 인생이 완전히 마무리된다. 5일 뒤가 바로 나의 사직일이기 때문이다.

2달 전, 7년간 일해온 회사의 미팅에서 우리 부서가 폐지된다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그와 함께 우리 부서원들에게만 희망퇴직신청을 받는다는 공고를 발표했다. 100명의 부서원들은 회사 측이 불법적인 정리해고를 하면서 희망퇴직이라는 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한다며 격분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1차 신청마감일에 맞춰 희망퇴직서를 제출했다. 내게도 회사의 결정은 가히 충격적이었으나, 올해 초부터 풀타임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며 이 회사를 어떻게 퇴직해야 할까 고민하던 나로서는 이번 희망퇴직소식은 놀라운 타이밍이었다.


분명 오래간 일해온 회사에게 버림받는 느낌은 더러웠다.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던 회사와 직무인데, 눈물을 짜내고 우울함도 온몸으로 겪어야 했다. 이별 후 상태변화처럼 '부정 - 설득과 사과 - 분노 - 우울 및 절망감 -수용' 상태를 겪었다. 그 와중에도 퇴직금을 계산하며 내 발로 '셀프 퇴직'하는 것보다 '희망퇴직'을 하면 7배나 더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희망퇴직서를 제출했다. 희망퇴직신청 시 사직일을 계산해 보니 한 달도 더하거나 부족함 없이 나의 근무일이 딱 7년이 되는 시기였다.


'노예 7년'이 생각났다. 성경 속 구약시대에는 채무관계로 노예가 된 사람은 7년 만에 해방될 수 있도록(안식년) 법이 제정되어 있었다. 나 또한 노예 7년 만에 7배의 보상을 받고 회사에서 풀려나게 됐다. 내게는 이 희망퇴직의 기회가 수고했으니 제2의 인생을 살라는 신의 선물과 위로, 그리고 계시처럼 들리기도 했다.  

 

1차 마감일에 희망퇴직서를 제출한 후, 1달이 더 남은 근무일 동안

제주여행, 해외여행, 타지의 부모님 집과 언니네집을 방문하며 한 달간을 돌아다녔다. 그 시간들 동안 '제2의 인생'이라는 키워드가 뇌리와 심장에 깊게 꽂혔다. '아직 30대인데 매 년 체력이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시간이 빠르고 인생이 짧다는 말이 절감된다. 제2의 인생, 제2의 인생, 이 인생이 내 평생의 마지막 도약이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떻게 살다 죽고 싶을까? 내 인생에서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일까?' 집요하게 내 안의 내가 나에게 되물었다.


회사생활을 하는 동안 직무와 적성에 대해 많은 내적갈등을 겪고 치열한 고민들을 해왔기에 사실 답은 정해져 있었을 것이다. 다만 돈을 포기할 용기와 스스로를 지지해 줄 용기가 필요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돈과 워라밸이 내게 행복과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뼛속까지 깨달아 왔다. 항상 알 수 없는 갈증에 목이 말랐다. '작은 일을 하더라도 가슴이 가득 차고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는 일. 하루 일을 끝마쳤을 때 진심으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 내 적성에 맞는 일. 나에게만큼은 진짜 가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습니다.' 최근 5년간 신께 구하고 구하고 또 구했다. 이제야, 신은 내게 제2의 인생을 주셨다.


한 달간의 여행을 하며 나의 집요한 질문에 용기 내어 답했다. <제2의 인생은 '작가'로 산다.> 묘비명에 '작가 writer'가 새겨진다면 그 어떤 묘사보다 흡족할 것 같았다. 준비하던 대학원 공부를 멈췄다. 나의 정체성과 직업은 '작가'니까. 전업을 위해 준비하던 풀타임 대학원 진학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작가'로 이미 전업했으니까. 대신 글을 쓰면서 순수하게 공부할 수 있는 파트타임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감정변화와 지난한 내적 갈등의 시간을 겪은 후에서야 제2의 인생을 결정할 수 있었다. 이제는 그 결정을 현실로 살아내고 있다.


<권예인 사무실>은 내 작가 사무실이다. 출근 이틀 째, 간판을 어떻게 제작할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막상 디자인을 고르고 보니 문구를 입력하라는데 '창작실, 창작소, 작업실, 집필실, 스튜디오, 창작공간?' 중에 뭐가 더 맞는 표현일지 생각하다 난감해졌다. '실'을 붙이면 너무 폐쇄적이고 작은 규모인 것 같고 또 '소'를 붙이자니 뭔가 올드한 것 같고, '창작'이라 하면 인스타나 유튜브 업로드도 창작범위 안에 들어가니까 글쓰기를 소홀히 하진 않을까 싶고, '집필'이라 하면 창작의 가능성을 닫아놓는 것 같기도 하고, 'studio' 뜻을 찾아보니 글쓰기보다는 사진이나 영상 예술인들에게 붙이는 작업공간이라는 얘기도 있어 글작가의 내 정체성이 모호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언어는 한글, 한자, 영어 중에 어떤 걸로 믹스매치 해야 할지 생각이 빙빙 돌다가


일단, 탕짬면을 시켜 먹었다.


2023-07-26-수

-GWON YEIN


#제2의인생 #퇴직후 #희망퇴직 #글작가 #30대희망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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