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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Feb 05. 2023

김윤식과 김현 이야기

찬란한 문학의 세계

  누구에게나 아이돌은 있다. 혹은 Role-model이라고 해도 좋고, 스승(혹은 師表)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내 삶의 아이돌, 김윤식과 김현.



김윤식 (1936~2001)


  경남 김해군 진영읍 사산리에서 태어났다. 마산상고,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한국 나이로 27세인 1962년에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석사(1962, 「시의 구조적 특성」)와 박사(1976, 「한국 근대 문예 비평사 연구」)를 받았다. 석사와 박사 학위의 Term이 긴 이유는, 석사 취득 후 1968년에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임용되어 강사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975년에 교양과정부에서 국문학과로 소속을 옮기고 1976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을 1973년에 677면으로 정리해 내놓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한국 근대문학의 바이블이다.






  누구에게나 라이벌은 있다. 혹은 자극의 원천이라고 해도 좋고, 동반자(혹은 文友)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김현 (1942~1990)


  전남 진도군에서 태어났다. 목포중학교, 경복고,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투고한 평론(「나르시스의 시론」)이 당선되어 일찍부터 문단에 데뷔했다.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석사를 취득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1971년부터 1990년 사망 시까지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0년 가을에는 김병익, 김주연, 김치수와 함께(김현까지 해서 이른바 4K) 계간 문예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하고, 1975년에는 문학과 지성 출판사를 차렸다. 1973년에는 김윤식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집필했다.


  김윤식은 그의 독보적인 책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총 3권)』의 첫 째권 4장,  〈‘실증주의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어떤 궤적〉에서 김윤식 본인을 3인칭으로 상정하고 김현과의 평생에 걸친 라이벌 의식을 다룬다. 물론 싸움(?)은 김현이 먼저 걸었다. 예를 들면,



김현, 『행복한 책 읽기』
 
  p. 41   김윤식의 『우리 소설과의 만남 (민음사, 1986)을 공들여 읽다. 그의 가장 빛나는 대목은 자기 직관에 그가 유보 없이 매달릴 때이며, 그가 가장 어설픈 대목은 원론에 집착할 때이다. 원론을 지탱하고 있는 원칙들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실증적인 사실들만을 나열할 때, 원론은 그 관여성을 잃기 쉬운데, 그의 경우가 때로 그러하다. 남의 이론을 공들여 읽지 않고 몇 개의 이론적 개념들만을 감각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 이론은 휘청댄다.  

  김윤식 비평의 본질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킵니다. 열정 없는 재능이란 없지요? 〔201〕”라는 말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 말이 되돌아가야 하는 것은 그 자신에게로 이다.


김현, 『행복한 책 읽기』
 
  pp. 55~56 김윤식의 『한국 근대 소설사 연구』 (을유문화사, 1986)를 대충 읽다. 몇 편은 이미 읽은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갑작스레 소설의 육체, 문학적 풍경이라는 물질적 감각적 용어를 ‘표 나게’ 쓰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문학 사상이라는 추상적 세계에 들어서자마자, 본능적으로 문학 작품이 증발되는 것을 막아야 하겠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구체성의 세계는 육체 풍경 등의 용어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느낌의 세계로 전위되어야 얻어지는 세계이다. 그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속이고 있다. 그의 육체·풍경이라는 말들이 그토록 자주 되풀이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울림을 울리지 않는 이유이다.





이에 대한 김윤식의 점잖은(?) 반박은,


김윤식, 『문학사의 라이벌 의식』 pp. 159~160

  두 가지 점이 쉽사리 지적된다. 첫째, 김현이 얼마나 남의 글을 열정적으로 읽었는가 하는 점.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고 대하소설인 박경리의 「토지」는 물론, 신인, 중견, 대가를 막론하고 월평류에까지 육박했음이 드러나 있어, 비록 그때만 해도 두 계간지, 월간지 셋 및 『신동아』 , 『사상계』  종합지 등등 통틀어 빈약한 저널리즘의 발표지가 대상이긴 했다손 치더라도 누가 보아도 그 열정적 독서력에 탄복하지 않을 재간이 없을 정도이다. 그야말로 작품 발표 직후 따끈따끈할 때의, 작품 고유의 ‘아우라’가 이렇게 포착되기는 이 나라 문학사 이래 처음이라 할 만하다. 가히 문학대통령인 셈. 그 이후 아무도 이런 일을 해내지 못한 것은 출판계의 다른 사정이 없지도 않았지만 김현의 민첩함에 미칠 수 없다는 점에서 가히 독보적이라 함에 그 누가 감히 인색하랴. 아니 일종의 문학사적 ‘기적’이라 할 것이다. 특히, 이 해석학은 하버드 대학 안마당에서 서구 문학의 정통성을 공부한 백낙청이 수준 높은 세계문학들을 이 향토에 소개한 또 하나의 ‘기적’과 맞먹는 것이기도 했음에 그 누가 감히 인색하랴.
 
  둘째, 김윤식의 글에 대한 저러한 비판이란, 또는 16사단 육군중위인 형과 함께 지낸 염상섭의 중학시절 하숙집을 찾아 두 번씩이나 교토를 방문하고 쓰여진 『염상섭 연구』에 대한 비판이란, 역설적으로 말해 김현 자신에 대한 애증의 표시가 아니었을까. 만년에 이르기까지 김현의 한국 문학사의 총체적 파악에 대한 욕망은 얼마나 강하고 집요했던가. 혹 그것에 대한, 욕망의 좌절에 대한 회한과 원망의 표출을 김윤식을 통해 분출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는 ‘실증주의적 정신’과 ‘실존적 정신분석’의 행복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공저 『한국문학사』, 이래 어긋나기 시작하여 그 후 계속 서로 멀어져 잤음에 대한 자책감이랄까 모종의 윤리적 감각이 드리워졌던 결과였을 터이다. 김윤식이 지라르의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의 제8장을 『소설의 이론』  (1977)이라 하여 영역판을 대본으로 번역했을 때 그 오류를 지적한 바 있는데, 이것에도 엿보이듯 국문학도이자 한국 실증주의자인 김윤식의 무모한 것에 대한 전문가의 경고문의 성격을 띤  것이 아니었던가(김현, 『르네 지라르 혹은 폭력의 구조』 , 나남, 1987, 22~23쪽).

  김윤식의 글쓰기가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는 것, 또 “원칙들의 의미는 설명하지 않고 실증적인 사실들만을 나열” 한다든가, “열정이란 재능을 가리킴”이라는 말에 주목, 그 '열정= 재능'이 김윤식에겐 없다는 것, “그의 내면의 무의식은 작가와 세계가 부딪치는 자리에 있어 그 앞이나 뒤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그의 문체를 이상하게 과잉―서정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며 그의 실증주의는 그것을 숨기기 위한 가면”이라 했고, “그의 늘리기는 수수께끼의 놀라움이 없기 때문에 진부하고 지겹다”라고 매몰차게 몰아붙였다. “진부하고 지겹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윤식이 진부하고 지겨운 것은 곧, 한국문학사가 진부하고 지겹다는 것. 그동안 진짜 문학인 듯 가면을 써온 한국문학사에 대한 가면을 이제 벗겠다는 것.

  이에 대해 김윤식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죽은 자에 대한 도리로 침묵했을까. 요컨대 김윤식은 침묵으로 일관했는데 이는 사자에 대한 예의는 갖추긴 했지만 그보다 앞서는 것이 따로 있었기 때문인데 곧, 그러한 비판이 바로 김윤식 자신의 글쓰기의 참모습이었던 것. 변명의 여지없는 그러한 것이었던 것.



  2박 3일을 이야기해도 손에 땀이 마르지 않는 문학 이야기. 그리고 김윤식과 김현.



  오늘은 최훈(김훈), 최윤(윤동주)에 이어, 또 다른 문학가 “김현”에 대한 오마주가 섞인 내 조카 최현 군의 네 번째 생일이다.





※ 김윤식 교수 퇴임 인터뷰 (2001)


  “나는 마르크스주의자도, 그 어떤 이념의 경도자도 아닙니다. 내 이념은 이성의 힘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인간은 나아질 수 있다는 오직 그것 뿐이었소. 인류에게 이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소.”


- 지금도 그 이념이 실현되리라고 믿습니까.


  “아니, 그럴 수야 없게 됐지요. 하지만 이 환장할 희망을 버리고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겠소.”


https://www.donga.com/news/amp/all/20010906/77348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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