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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Apr 10. 2024

리뷰 : 이서정, 『인과추론』

경제학의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엄밀함과 실용성

휴일 아침, 아이들의 아침을 간단히 챙겨주고 나서 그동안 밀린 숙제를 두 가지 했다.


첫 번째는, 유튜브를 통해 가끔 관찰해 왔던 총선 분석을 신문으로 읽는 것. 내일 이후, “거 봐. 내가 한 말이 맞았잖아.” 하는 후견지명(선견지명이 아닌)이 판을 칠 테니, 마지막 순간의 분석을 확인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구독하고 있으나 한 달에 두어 번 펼쳐보는 신문을 넘길 때 손맛은 여전히 좋았다.


1면 커버 스토리, 장진덕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가 던진 화두가 흥미롭다.


“지금의 인구 위기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미 십여 년 전부터 예측하고 있었고, 수많은 전문가가 경고하고 대책을 촉구해 왔다. 하지만 법을 만들고 정부를 책임졌던 사람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만들지 못하다가 지금의 상황을 맞았다. 그사이에 정권 교체도 몇 번이나 있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본인들이 겪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기야 예상했던 대로 1~2년 전부터 급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고령화는 향후 젊은 세대에게 엄청난 세금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앞으로 4년 동안 국회에서 만들어질 법들이 바로 이런 내용을 담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는 젊은이의 미래를 규정할 법을 만들어 놓고 사라질 것이다. 스스로가 결정한 미래이기를 바라는 이유다. 지금과 같은 혐오의 선거에서, 투표하지 않으면 혐오하는 사람들의 결정권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41459



두 번째 과제는, 지난 2월에 저자에게 선물 받았지만 읽지 못하고 있던 『인과추론』이라는 책이다. 학부 시절노랑, 주황 머리로 염색하고 다니던 발랄함(?)은 어디에다 두었는지 진지하고 어려운 연구를 하는 이서정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가 썼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2170401


8년 전에 예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안식 휴가를 받아 잠시 놀러간 호주에서 함께 라멘을 먹으며 “너는 그런 데 무슨 연구를 하냐?”라는 나의 엉뚱하고 무례한 질문에, 이서정 교수가 “짜증을 내며 친절히” 설명해 주었던 것이 바로 이 내용 같다. (농담도 잘 하시는 파인만도 양자전기역학(QED)이 왜 노벨상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이런 답변을 하기도 했다. “Hell, if I could explain it to the average person, it wouldn’t have been worth the Nobel prize.”)




                                                                                                                                https://goo.gl/Qk0Zwn


『인과추론』은 EBS와 네이버, 서울대학교가 함께 만든 ‘생각의 열쇠, 천 개의 키워드’ 강연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한국 사회의 대표적 사회 문제인 저출산을 주요 예시로, 202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의 논문(Imbens and Angrist, 1994)을 포함한 최신 계량경제이론을 현실에 접목하여 설명한다.


특히 이서정 교수가 본인의 주요 연구 주제라고 밝힌 도구변수(instrumental variables)를 사용한 통계적 추론을 상세히 설명한다. (잠재적 결과 모형 → 선택편향과 통제변수 → 도구변수 → 도구변수를 통한 인과효과 식별)


나와 우리 가정, 그리고 나의 아내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던 인생 질문이자 또 사회 후배에게 가장 많이 받는 바로 그 질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룬다. 아이는 언제 낳아서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누가 봐주는가? 대안이 없다면 어찌 대응해야 하는가. 즉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의 아이 출산 여부. (보다 구체적으로 둘째 아이 출산 여부 혹은 일과 육아의 양립 문제)



https://www.ebs.co.kr/tv/show?prodId=441203&lectId=60408366



“2023년 2분기 합계출산율이 0.7대로 떨어졌다. 이러한 합계출산율은 사상 최저라고 한다. 여러 전문가들은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사회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일할 사람이 줄어들고, 인구 구조가 고령화되면서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이 되고 기업들도 구인난에 시달릴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을까? 출산율이 높아지려면 당연하게도 여성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야 한다.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육아로 인해 아이가 없을 때보다 덜 일하게 될 것이다. 즉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은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직장에서의 성 격차를 줄이면 해당 기업의 생산성 향상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으므로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여러 정책을 사용하기도 한다. (pp. 4~5)”


“정책을 만들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실제 데이터 분석에 도구변수를 사용함으로써 선택편향의 문제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 따라서 인과효과에 대해 좀 더 자신있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도구변수를 사용할 때 순응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정책의 효과가 미치는 대상에 대해 기존보다 더 정교한 분석을 할 수 있다. (p. 98)”


인구 문제, 출산율, 여성의 사회 진출과 직업 안정성 유지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지만, 가장 소홀히 혹은 엉성하게 다루어지는 문제라 생각한다. 내일 이후의 신문과 언론에서 또 학계와 전문가 집단에서 4월 10일 이후, 정치적 이념을 뛰어 넘어 우리 사회의 인구 구조 관련 본질적 이슈에 관해 더 엄밀하고 치열하게 다루어지길 소망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이서정 교수의 아래 언급은 큰 의미가 있다. 또 내가 학부 다닐 때 이런 내용과 방식으로 설명해 주시는 교수님의 수업과 책을 접했다면, 경제학의 즐거움과 낭만 그리고 또 그것이 바닥에 깔고 있는 실용성과 엄밀함을 보다 더 쉽게 깨달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을 느낀다.


이 책은 미국 등 다른 나라의 예시가 아닌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 저출산 문제를 주요 예시로 사용하여 이론적인 내용을 하나의 예시 안에서 구체적인 수치를 사용하여 다룸으로써 추상적인 이론에 실질적 의미를 담으려 하였다.








[참고. cool heads but warm hearts]

“(…) 케임브리지 대학이 세계로 배출하고자 하는 인재는 「냉철한 두뇌와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서, 자기 주변의 사회적 고통과 싸우기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려는 사람이다. 또한 사람들의 고귀한 삶을 위해 필요한 물질적 수단의 배분 방법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스스로가 가진 모든 능력을 다하는 사람이다.

나는 케임브리지 대학이 이러한 인재를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내가 가진 모자란 재능과 한정된 힘을 다하려 한다. 이것이 내 가슴속 깊이 숨겨진 염원이며, 또 최고의 노력이다. (…)”


                                         ― 알프레드 마셜(1885),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부장 취임 강연 中



“(…) It will be my most cherished ambition, my highest endeavour, to do what with my poor ability and my limited strength I may, to increase the numbers of those whom Cambridge, the great mother of strong men, sends out into the world with cool heads but warm hearts, willing to give some at least of their best powers to grappling with the social suffering around them; resolved not to rest content till they have done what in them lies to discover how far it is possible to open up to all the material means of a refined and noble life. (…)”

                                      ― Alfred Mars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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