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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퇴턍규 May 08. 2024

이수만 SM엔터 전 회장 석사 학위 논문

ROBOTIC ARM WITH COMPUTER VISION


https://scholarworks.calstate.edu/concern/theses/9k41zj11p




https://www.csun.edu/advancement/news/k-pop%E2%80%99s-success-traces-back-csun-alumnus


https://www.forbes.com/sites/forbesasia/2013/07/31/koreas-s-m-entertainment-the-company-that-created-k-pop/


1952년 6월18일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경복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농업기계과를 나왔다.

1971년 ‘4월과 5월’이라는 남성 2인조로 연예계에 데뷔한 뒤 톱스타의 인기를 누렸다. 1970년대에 가수와 라디오 진행자 등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1974년 이수만은 방송국으로 진출한다. 개그맨 박성원이 진행하던 ‘비바팝스’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후속 진행자가 된 것이다. DJ로서의 이수만의 재질이 빛나던 시절이다. 이수만의 입담과 프로그램 진행 능력은 TV로 이어졌다. 1977년 제 1회 대학가요제의 사회를 맡아 이수만은 재치 있는 진행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1980년 11월 30일, 이수만에게는 친정이나 다름없던 TBC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문을 닫는다. 

1980년 방송국 TBC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조치로 문을 닫자 1981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당시 UCLA에서 컴퓨터그래픽과 비디오를 전공하던 아홉살 연하의 미국 시민권자인 부인 김지혜(김은진으로 후에 개명)를 만나 결혼했다. 1985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PC를 이용한 ‘로봇 눈’ 실험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사별한 부인 김지혜와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김씨는 소장암으로 투병하다가 2014년 사망했다. 김씨는 이수만에게 한국인 학생회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면서 처음 만났다. 이수만은 김씨에게 집을 합쳐 유학 생활비를 줄여보자며 프러포즈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1984년 1월 결혼했고, 신혼여행지는 카탈리나 섬이었다. 장남 이현규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작사가로 활동하며 소녀시대와 엑소의 노래를 작사했다.

귀국 뒤 컴퓨터로 음반을 만들기 시작했다. 인천 월미도에서 카페를 운영해 마련한 자금으로 음반제작사업을 시작했다. 결국 SM 기획을 세워 운영하다 연예기획과 곡 제작, 음반 제작 및 홍보 기능을 모두 모아 SM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공학도로 인생의 방향을 설정하긴 했었지만 한번 빠졌던 음악적 자장에서 이수만은 쉽게 탈출하지 못했다. 특히 1981년 8월 1일 뉴욕에 본부를 둔 케이블 TV의 형태로 개국한 MTV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대중음악의 얼굴이 바뀌고 있었다. MTV의 문화적 세례를 받은 이수만은 뮤직 비디오 제작이라는 영역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연예계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인터뷰까지 하고 온 그에게 심정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수만은 다시 작곡에 손을 댔다. 24시간 음악의 물결이 출렁이는 MTV는 한 청년의 삶을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이수만은 MTV를 즐긴 것이 아니라 ‘공부’했다. 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시청자들이 MTV를 보는 가장 큰 이유가 스타의 패션을 보기 위해서라는 설문 조사 결과는 이수만에게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어주었다. 패션에 이어 가수의 율동을 보기 위해서가 두 번째였고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세 번째였다. 그는 컴퓨터공학 석사 학위로 받을 수 있는 초임 연봉 3만 달러를 포기했고 국내 대학에서의 강의를 거절했다. 음악으로 발길을 돌린 그는 학교에서 배운 컴퓨터 공학을 음악과 융합한다면 아날로그 방식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믿었다. 이수만은 1985년 6월 귀국한다. 그는 귀국 인터뷰에서 “볼 것이 있고 들을 것도 있는 가수로 팬들에게 선 보이겠다”는 매우 상징적인 워딩으로 연예계 은퇴를 번복한다.



https://www.businesspost.co.kr/BP?command=article_view&num=294374


https://www.cfe.org/20141120_10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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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mk.co.kr/news/economy/690039


‘고국에오니 마음 안정…컴퓨터회사 설립이 소망’


70년대 젊은층으로부터폭넓은 인기를 누렸던 포크송 가수 이수만씨. 81년 도미했던 그는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컴퓨터엔지니어링 석사학위를 받고 5년만에 귀국, 가요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지난 12일 귀국, 아직 시차적응이 안돼 정신이 맑지못하다는 이수만씨는『고국에 오니까 마음이 안정 됩니다. 미국에서는 공부와 생활, 보이지 않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의식 때문에 항상 긴장 연속의 생활』이었다며졸업하자마자 짐도 싸지않고 바로 귀국했다고.


유학중 UCLA에서 컴퓨터그래픽과 비디오를 전공하는 김지혜씨를 만나 지난해 1월 결혼했고 부인이 된 김지혜씨는 내주 졸업식이 끝나면 이달말께 귀국할 예정.


유학중 틈틈이 노래를 작곡하기도 했던 이수만씨는「돌아와」「기다리는마음」등 6개의 음악 비디오 작품을 제작, 7월 중 국내에 공개할 계획이다. 이들 노래는 이미 방송을 타고 젊은층에 파고들고 있으며 리듬이 강해진 것이 변화.


『제작 여건만 마련되면 음악 비디오도 계속 제작하고싶고 전공인 컴퓨터 분야도 살리고 싶습니다. 컴퓨터 보급이나 소규모의 컴퓨터 회사를갖는 것이 꿈입니다』서울농대 재학시절부터 가수로 활동한 이수만씨는 듀엣「4월과5월」에서 솔로로 전향「모든것 끝난뒤」「행복」「파도」「한송이꿈」등의 노래를 히트시켰다. 


토크쇼「이수만과함께」를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났던 그는『볼 것이 있고 들을 것도 있는 가수로 팬들에게 선보이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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