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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심어린 로레인 Nov 01. 2023

결혼 10년 차에 접어드는 아내가 결혼기념일 쓴 편지

부부라는, 다름의 시너지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항상 아이들에게만 써주다가 무슨 마음에서인지 편지를 쓰고 싶었다. 하고 싶은 말을 정하고 쓰지 않았다. 그저 적다 보면 알아차릴 거라 직감했다. 나의 소울메이트이자 팀메이트인 그에게 쓰는 편지.




Dear. My hubby Zongi


사랑하는 여보야, 자기랑 결혼한 지 오늘로 만 9년 되는 날이네. 우리 결혼 당일 참 쌀쌀한 새벽공기 마시면서 청담동 샵에서 만났잖아. 그때 풋풋하고 뽀얀 피부에 분칠 하고, 머리에 힘주고 나서 예쁘게 단장하는 그 시간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설렘으로 다가오네. 순식간에 샵 안에 있던 예비부부들이 빠져나가고, 오후 예식인 우리만 덩그러니 남았을 때 전세 낸 것처럼 여유 부리면서 헤어스타일도 다시 만지고 했잖아.


기후위기가 심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단풍이 서서히 물들기 시작했던 그때를 떠올릴 수 있어서 참 좋다. 나는 코르셋이 단단히 조이는 미카도 실크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었었지. 자기는 자기 몸에 꼭 맞는 테일러 된 슈트를 입었고. 우리는 눈이 부신 조명과 귓가를 울리는 환호를 받으며 버진로드를 걸어 사람들 앞에서 부부가 됨을 선언했어.


하얀 천으로 드리운 천고를 배경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찍은 사진은 다시 봐도 참 예술작품 같아. 멈춰진 사진으로만 기록된 그 시간을 좀 더 생동감 있게 비디오로 남겼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에게도 엄마아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


반짝이는 결혼반지만큼, 우리 인생을 눈부시게 하는 두 아들이 결혼 10년 차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전리품이자 축복으로 여겨진다. 부부로서도 부모로서도 우린 참 달랐지만, 아이들의 존재는 우리 사이를 더 단단하고 굳건하게 연결해 주는 지지대가 되어주잖아.


우리는 그동안 뭐가 달라졌을까?


사회 초년생이었던 우리는 이제 거뜬히 10년 이상 경력자들이 되었고, 신생아를 어떻게 안을까 쩔쩔매던 우리는 제법 규율을 가지고 아이들과 소통하고 케어하는 학부모가 되었네.


반대로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서로의 표정이 말하려는 걸 단박에 알아차리고, 특정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할 줄 알고, 서로의 화를 풀어낼 유머를 구사할 줄 알고, 서로가 너무나도 다른 존재임을 이해할 줄 알고, 스스로에게 하는 소비는 짜도 서로에게는 더 사주고 싶은 챙기는 마음.


지난 시간 우리는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사이로 각자가 가진 좋은 것을 공유해 왔어. 글쓰기 습관이나 책 읽기, 러닝 같은 겉으로 보이는 것도 있지만 서로의 다른 가치관들을 조금씩 튜닝하며 부부로서 부모로서 공통된 가치로 맞춰가기도 했지.


그 시간을 우리 부부의 대서사 중 첫 챕터로 담아낸다면, 나는 이렇게 이름 짓고 싶어졌어. 혼돈의 시대에서 탈출구를 찾다. 왜냐고? 그만큼 새로운 아이덴티티,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로 살아내느라 애썼으니까. 그리고 그 치임과 견딤 끝에 우리는 같은 방향성을 찾아냈으니까.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무언가를 고집하며 살아내고 있으니까. 아몬드를 다이아몬드로 바꾸는 비밀, 기회의 파도에 기꺼이 몸을 던져보는 용기, 꾸준한 성실함으로 승부하는 자세 등등.   


그래서 다음 10년의 새로운 시즌이 펼쳐지는 것에 대해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으로 지금 여기 서있어, 나는. 늘 그래왔듯이 우리는 매 순간 서로를 든든하게 지원하는 한 팀이니까. 더 나은 부부로서, 더 나은 자리에서, 더 나은 시간을 기대하며 현실에 발을 붙이고 치열하게 살아보자고.

   

사랑하고 존경해.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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