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체구 안에 숨겨진 세상을 품는 넓은 그릇
매일 부랴부랴 퇴근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저녁 시간은 정신이 없다. 그중 가장 먼저 할 일은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늦은 저녁을 차리는 거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홀로 분주하게 조리대와 냉장고를 왔다 갔다 하며 요리하기 바빴다. 그래서 손쉽게 먹고 치우기 좋은 원플레이트 메뉴를 선호했다. 양배추가 많이 들어간 새우 볶음밥이나, 두부면을 넣은 떡볶이, 간장김치 찜닭 등. 물론, 시간이 걸리는 요리도 있었지만,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간편 레시피를 많이 배우고 익혔다. 그런 시간들이 지나자, 어느새 아이들이 크면서 주방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상 차리고 치우는 과정에 아이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열 살 큰아이는 계란 프라이, 계란찜 등 간편 요리까지 해낸다. 이러한 성장은 워킹맘인 나에게 이제 더 이상 요리는 태스크가 아닌 함께 하는 즐거운 가족 문화라는 생각을 곤고히 해준다.
오늘 저녁은 시부모님이 정성껏 길러 (게다가 씻어서) 가져다 주신 상추쌈과 어제 시장에서 사 온 임연수 구이, 계란 스크램블, 후식으로 먹을 과일 한 접시로 차렸다. 간단하지만, 아이들의 입맛을 제대로 저격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임연수는 서로의 밥을 더 달라고 동냥할 정도로 밥도둑이었다. 짭조름한 생선 한 조각을 상추에 싸서 입에 넣으면 아삭하고 담백한 별미였다. 서로 한입 가득 채워 물고 아이들은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큰 아이는 요즘 테슬라 관련 책을 읽고는 여러 생각에 꽂혀있는데, 갑자기 기억나는 한 가지 질문을 동생에게 던졌다.
"너는 50만 달러(한화 7억 정도)가 있으면 뭘 하고 싶어?"
"음, 나는 사람들에게 다 나눠 줄 거야"
작은 아이의 답변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다 나눠주겠다고?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
"사람들이 부족하면 안 되잖아요, 다 같이 잘 살아야 하니까?"
엄마의 어색한 리액션과 질문에 아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담담한 자신의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래도 너도 필요한 게 있을 수 있잖아?
"나는 부족하지 않아요. 다 가지고 있으니까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 거지?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런 답에 이른 것이 기특하면서 이게 좋은 건가? 알 수 없었다. 그렇다면 형아의 답은 어떨까? 동생의 답변을 가만히 듣던 형아는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는 반은 나눠주고, 반은 내가 갖고 싶은 차나 집을 살 거야!"
현실적인 첫째의 답변에 나는 내심 안도감이 들었다. 먼저 스스로의 살 길을 잘 챙기는 것이 맞으니까. 그럼에도 아이에게 절반이나 나눌 과감한 마음이 있다는 게 놀라웠다. 무엇이 아이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한 걸까?
넉넉하지 않고, 늘 풍족하게 아이들의 주머니를 채워주지 않았다. 궁색한 엄마가 되는 것이 싫으면서도 어렸을 때부터 살아온 환경에서 길들여진 자린고비 못지않은 짠순이 기질이 강하다. 신앙심에 기부와 선한 뜻을 좇고 있지만, 항상 그 반대의 재정적으로 쫓기는 마음이 아슬아슬 줄타기하고 있다. 더 모아서 얼른 집을 장만해야지, 더 윤택한 삶을 살기 위해 한도는 없으니까. 정말 이건 솔직한 고백이다.
오히려 아이들의 순수한 대답에 알 수 없는 뭉클함이 올라왔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 않지만 계속 변화하는 물질 같다. 어느 날은 단칸방 같은 속 좁은 생각만 하고 있고, 어느 날은 망망대해처럼 모든 걸 품어낼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생각들이 결국 사람의 마음에 국한되어있겠구나, 싶었다. 나는 단칸방 엄마인가, 대저택 엄마인가... 보이는 것도 중요한 시대지만, 일희일비하는데 급급하지 않고 넓은 아량과 깊은 혜안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