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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영재원 시험을 보기까지

요즘 시대의 한석봉은 어떤 모습일까?

by 진심어린 로레인



올해 10살이 된 아이에게 체계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워킹맘인 엄마의 코가 석자이므로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친언니의 도움을 받아 적절한 문제집을 구비해 아이의 영어, 수학 정도 꾸준히 자기 주도로 해낼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에서도 충분히 아이가 배우고 있고, 방과 후(늘봄)에서도 체스, 바둑, 한자, 드론, 큐브, 코딩 등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에 나의 어린 시절에 비하면 다양한 감각을 키우며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있는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다소 방목하는 스타일을 가진 건 두 가지 굵직한 계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한 상황이다. 먼저는 4살, 동생이 태어나고 그 당시 내 눈에는 제법 형아처럼 보이는 아이에게 서둘러 한글을 떼야겠다는 욕심이 들었다. 애플비 한글책을 두어 권 주문해서 아이와 그날부터 글자 공부를 시작했다. 작은 아이 책상에 나란히 앉아 매일 두어 장을 채워나갔는데, 아이의 태도가 쉬이 집중하지 못했고.. 나는 그 과정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결국 한 달도 못 가서 아이는 눈물을 터뜨렸고, 나도 두 손을 들었다. 그래 우리에게 지금은 시기가 맞지 않나 보다. 때 되면 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더 이상 없는 에너지를 쥐어짜 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다음은 아이의 초등학교 첫 참관수업 때였다. 부모님들이 대부분 참여했기 때문에 수업은 아이들의 발표로 이루어진다. 한 명씩 차례를 이어가며 발표를 하는데, 7번인 우리 아이는 극구 발표를 거부했다. 작은 목소리로 발표하는 아이,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발표하는 아이는 있었지만, 발표를 하지 않는 아이는 없었다. 그걸 우리 아이가 해내는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며... 아이에게 더 기대하면 안 되는구나 싶었다.


내가 자주 읽는 자기 계발 소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남들보다 뒤 쳐 저 보이는 모습을 자주 보이곤 한다. 결국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스스로 깨고 나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어쩌면 현실에서는 조바심에 그런 인내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국, 나는 아이에게 더 이상 큰 바람을 내려놓았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


아이가 3학년이 되고 첫 진단평가를 본 날이었다. 국어, 수학 2과목에 대해 디지털방식으로 태블릿을 이용해 시험을 본다고 했다. 평소에 유튜브 보는 용 아니고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아서 낯선 기기로 문제까지 푸는 게 아이에게도 큰 챌린지라고 생각했다. 시험 결과는 몇 주 뒤 아이의 손에 들려있었다. 두 과목 모두 만점. 얼마나 아이에게 큰 기대를 안 하고 있었으면 나는 대부분 친구들도 만점이겠거니 생각했다. "오 시험이 쉬웠어?" 아이에게 잘했다는 칭찬 대신 무심한 말이 나갔다. 서운한 아이를 보고서야, 네가 최선을 다해 얻을 결과구나.. 다시 말을 희석하기 위해 대견하다는 메시지를 더했다.


그리고 학기 초에 선생님 면담을 하게 되었다. 시간차를 써서 정신없이 학교를 방문했다. 아이에게는 괜히 선생님을 만났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엄마가 자기의 고유한 공간에 찾아갔다는 걸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과 아이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아이의 새로운 면을 접했다.


학교에서 지내는 6~7시간, 아이는 제법 의젓하고 사이좋게 지내는 태도로 매사에 적극적이라고 했다. 특히 학업에서 호기심이 많고 이해력이 높다는 칭찬을 듣고서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푸념하듯, "학원을 안 다녀봐서 제가 이 정도까지 해내는 줄 몰랐어요, 그냥 집에서 꾸준히 수학과 영어 정도 문제집 풀면서 하고 있는데요" 그 말에 선생님은 깜짝 놀라셨다. 학원을 안 다니면서 이렇게 한다고요? 그리고는 아이의 학업에 좋은 기회들이 앞으로 많이 있을 테니, 아이를 위해서 도전해 보라고 말씀 주셨다.


그 말에 나는 적당한 거리감이 만든 내가 몰랐던 아이를 마주했다. 엄마의 의도가 아니라, 아이 주도적으로 자기 생각을 확장해 나가는 학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감사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 해를 마무리할 무렵, 나는 아이에게 교육청 영재원에 도전해 보길 권했다. 시험을 한 달 남겨놓고 기출문제와 과학문제집을 찾아 집중적으로 풀었다. 아이도 나도 그동안 풀어보지 못했던 유형이라 이걸 풀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했다. 점점 시간이 흘렀고 다행히 이런 유형에 아이도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럼에도 서술형이 많은 문제와 모르는 개념을 활용해 푸는 문제를 접할 때면 아이는 번번이 어렵다고 엄마를 찾았다. "우리 그냥 포기하는 게 좋을까?"


그렇게 시험날이 밝았다. 전날까지 아이는 모의고사에서 3문제밖에 풀어내지 못했다. 나는 아이에게 매일 시간을 써서 문제를 같이 풀어왔는데, 그럼에도 아이에게 여전히 벅찬 시험이라는 생각이 들어 더 이상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그렇게 아이는 세 번째로 엄마의 기대를 다시 내려놓게 했다. 시험장에 안 가는 것도 고려해 보았지만, 남편이 오히려 단호했다. "노쇼는 아니지~"라는 유쾌한 한 마디에 나는 아이에게 끝까지 완주해야 후회가 없다고 타이르며 아침 일찍 시험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렀고, 흐린 주말 아침의 찬 공기를 뚫고 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소감은 "후련해요 엄마~, 연습해 봐서 당황하지 않고 다 풀 수 있어요." 그것이 맞는 정답이든, 틀린 오답이든 나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를 떠나 아이와 나는 한 단계 성장했다. 엄마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뛸 테니, 너도 너의 플레이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렴! 우리에게 어떤 성장과 확장의 기회가 찾아올지 모르니까. 수고했어 나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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