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우리는 미디어에서 강아지 물림 사고를 자주 접한다. 물림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은 목줄 등 통제 도구를 갖추지 않았거나 주인이 강아지를 완력으로 컨트롤하지 못하는 데 있다. 물림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사회 전반으로 퍼지며 견주들은 이전보다 더 꼼꼼히 준비를 한 뒤 산책에 나서는 듯하다. 하지만 어제 나는 중형견을 목줄 없이 풀어 앞세우고 산책하는 중년 부부를 보았다.
덩치가 큰 검은색 강아지. 못해도 25kg은 나가 보이는 녀석이었다. 나는 우리 강아지와 산책 중이었는데 혹여나 마주치면 큰 사고라도 날세라 수풀 뒤에 숨어 그 녀석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온라인엔 이런 글이 올라오곤 한다. 목줄 없이 다니는 견주에게 목줄 해주길 부탁한다고 말했다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들은 체도 안 한다는, 그래서 답답하다는 글.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에게 '이렇게 행동하라'라고 말한다는 건 나에겐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목줄을 채우지 않는 견주가 개념 없다고 생각하지만 구태여 그 사람 귀에다 대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이, 개인주의 성향이 많은 나에겐 조금 꺼려지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다음날인 오늘, 또 산책을 나섰다. 구름 끼고 바람 부는 초여름날이라 시원한 바람이 즐거웠다. 멀리 경치를 보다 뒤를 돌아본 순간, 우리 강아지는 화들짝 놀라 허둥대고 있었고 멀리선 검은 물체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혼비백산한 우리 강아지는 애처롭게 울부짖으며 그 녀석을 피해 움직였고 빠르게 움직이는 리드줄에 내 손은 데었다. 강아지를 들어 안아 올려볼까 했지만 움직임이 너무 심해 불가능해 보였다. 견주로 보이는 사람은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지난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애견용품점 사장이 키우는 불독이 갑자기 달려들었는데 불독 견주가 곁에 있던 터라 그 녀석을 터치하진 못하고 우리 강아지만 겨우 잡아 올려 구해냈다. 먼저 달려든 건 그 녀석인데 우리 강아지만 놀라고 당한 것 같아 억울했다. 난리 치는 강아지를 잡아 안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다짐했다. 다음엔 주인이 있건 말건 달려드는 녀석을 발로 차서 우리 강아지를 보호해야지.
25kg짜리는 계속해서 달려들었고 나는 망설이지 않고 그 녀석을 발로 찼다. 포기하지 않기에 두 번 세 번 계속 찼다. 그 사이 견주가 달려와 녀석을 제지했고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강아지를 달랬다. 많이 놀랐는지 계속 낑낑대던 우리 강아지.
어제 목줄 없이 다니던 그 강아지였고 그쪽 견주는 미안하다고 이야기한 뒤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도망간 건 아닌 것 같았고 우리 강아지가 무섭지 않도록 녀석을 끌고 갔구나라고 생각했다. 울부짖는 우리 강아지를 겨우겨우 달랜 후 천천히 집으로 돌아왔다.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를 물린 듯 연신 그곳을 핥아대기에 살펴보려 했지만 손이 살짝만 닿아도 깨갱거리며 도망갔기 때문이었다. 일단 안정을 취하게 한 뒤 천천히 살펴보기로 했다.
나도 가만히 앉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생각해 보았다. 그제야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왼 손은 리드줄에 쓸려 기포가 올라왔고 왼쪽 정강이엔 긁힌 상처가 생겼다. 그리고 그 견주에 대한 분노가 치밀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목줄을 안 하고 다니다니. 그렇게 큰 개를. 어떻게 그렇게 생각 없이 살지?
안정을 취하게 해 주고 몇 시간이 지나자 옆구리를 만져도 거부하진 않았다. 찢기거나 큰 상처는 없는 듯했다. 다행이었지만 많이 놀랐는지 물린 부분에 손이 살짝만 닿아도 깜짝깜짝 놀랐고 곁으로 오지 않으려 했다. 틈만 나면 와서 만져달라고 하던 녀석이 나를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견주는 미안하다는 와중에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목줄을 하지 않았다'라며 변명을 섞었다. 그래. 시골 동네인 데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다가도 '여기 다니는 할머니들이 강아지를 얼마나 무서워하는데' '사람 없으면 목줄 안 해도 되나?'라고 혼자 화를 냈다.
한 사람의 부주의 때문에 우리 강아지는 강한 충격을 받았고 나는 부상을 입었고, 혹시나 트라우마가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섬세하게 보살피는 중이다. '어제 목줄을 하고 다니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나?', '다음에 그 견주를 만나면 욕을 한 바가지 퍼부어야지', '그 강아지 놈 한 대 더 쥐어박고 싶다.' 별 생각을 다 하며 깊어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