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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Apr 06. 2016

혈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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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기억은 드문드문 내 안에 남아 있다. 1년 치가 통째로 사라져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기억들은 돋보기로 확대된 것처럼 유난스럽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엄마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집 안에서 일어난 일을 절대 집 밖으로 내놓지 마라.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말하지 마. 그 어조가 너무 단호해서 내 말 한 마디로 온 세상이 뒤집히기라도 할 것 같아 두려웠다. 지금은 엄마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의 솔직한 말은 때때로 폭탄 같은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니까.


어린 시절을 말하자면 할머니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대대로 이어온 종가였기에 첫 손주가 남자이길 모두가 기대했지만, 나는 여자로 태어나 버렸다. 할머니는 나를 낳은 엄마와 갓 태어난 나를 무척 욕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그리고 여자이기에 열등했다. 적어도 박씨 집안에선 말이다. 곰 같은 것, 둔한 것, 굼뜬 것, 얼치기 같은 것. 끽해야 마주 보는 것은 명절뿐인데, 할머니는 내게 많은 수식어를 붙여 줬다. 할머니는 내게 직접 욕을 하는 것으로 모자라 전화통을 붙들고 엄마에게도 내 욕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남자였던 동생은 비난을 피해 갔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동생은 남자인데도 마음이 여리고 눈물이 많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그리고 엄마는 같은 일이 반복되자 우리 남매를 쥐 잡듯 들볶기 시작했다.


제일 참기 힘들었던 건 별다른 이유 없이 맞아야 할 때였다. 잘못을 저질렀을 때 맞는 것은 합당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컵  따위를 깨트리는 사소한 실수에도 망설임 없이 날아오는 매서운 손은 몸과 마음 둘 다를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우린 찢어지게 가난했으니 내가 깨트린 컵 하나는 분명 엄청난 집안의 손실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내 타고난 부주의함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맞으면 맞을수록 더 내 안으로 틀어박혔고 그럴수록 주변을 살피지 못해 점점 더 많은 물건들을 망가트렸다. 손찌검은 내가 성인이 되고 집이 유복해지면서 멈췄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엄마의 사랑스러운 자식이 아니라, 구질구질하면서도 떨쳐버릴 수 없는 현실 중 하나였을 것이다. 나는 불안정했던 그때의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고 세상에 더없이 다정한 지금의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금도 엄마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면 자연스레 오한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할머니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작아져서 마지막으로 봤을 땐 당장이라도 땅 속으로 꺼져버릴 것 같았다. 평생을 이어온 밭일로 허리까지 무참히 굽어버렸다. 분명 걷고 있는데, 기어가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작아진 할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 피아노를 사주지 못한 일이 줄곧 마음에 걸렸다고 말했다. 마주친 눈 속에는 당연히 독기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 말과 눈빛 속에는 뭐라 말하기 힘든 회한과 다정함이 깃들어 있었다. 할 수 있다면 평생 동안 할머니를 미워하고 그것을 내 힘으로 삼고 싶었는데 더 이상 그럴 수가 없었다. 평생을 쌓아온 증오심과 자라나기 시작한 애정이 풀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뒤엉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가 말하는 소위 곰 같은 여자로 태어난 자신을 수없이 원망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박씨 집안으로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만약 남자로 태어났다면, 내가 치러야 할 첫번째 제사가 돌아오는 날 제사상을 뒤엎고 제사 병풍을 불태워 버렸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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