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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hid Apr 04. 2020

회고


소중히 여긴다는 것은 어쩌면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불안을 극복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작가가 좋다고 말하기보다 작품의 어떤 부분에서 마음이 떨렸었던가를 오롯이 기억하고 싶다.




8년 동안 갖고 있던 기타를 팔았다. 처음 서울에 와서 월세를 내려던 돈으로 마련한 기타였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고 노래하지도 말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하나 새로운 것이 없고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다 일컫는 것마저 과거의 변주일 뿐이라 느끼고 있을 때는 변화를 찾는 일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세상의 그 어떤 아름다운 풍경과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보고 싶었다.




가해자의 편에 서면 더 강해지는 듯한 착각 때문에 피해자를 비난하게 되는 것 같다. 가해자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훨씬 간편하기도 하고.




지난번 합주 이후로 계속 화가 난다. 어쩌면 내 생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합주가 말 그대로 개판이었으니까. 홧병이 나도 이상하지 않지. 그런데 이상하게 그 뒤로도 연습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 그 꼴을 보고도. 합주를 하고 싶다. 조급하게 굴수록 더 멀어지고 괴로워질 뿐인데,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글쓰기는 내 안에서 썩은 부분을 훌훌 털어내버리는 거라면 공연은 내 안에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드러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를 상상하면 나쁜 말을 들려줄 수 없을 거라고 하지만 어쩌면 나는 살아도 괴로운 일로 넘치니 죽을 수 있을 때 죽어보라고 열 살의 나에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건 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열 살의 나도 갓 태어난 나도 결국 지금의 내가 될 것이기에.




절수가 안되는 찻주전자엔 정이 안 가는데 되려 사람은 넘치는 감정을 조금씩 새어 내보내는 부류가 좋다.




연습 시간을 두 배로 늘렸는데 기타도 두 배로 못쳐서 열받는 하루였다. 이번주에 세 배로 늘려서 연습해 보고 또 세 배로 못치면 그냥 하던 대로 해야겠다.




서울에 오기까지의 일들을 떠올려 봤다. 연초에 오랜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게 됐었다.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책장에 내가 갖고 있던 책들이 가득했고 비슷한 음악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어리석은 난 마음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던 거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라도 좋았다. 나와 비슷한 음을 낸다고 느껴지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친밀감은 쉬이 떨쳐낼 수 없는 것 같다. 술에 취해 졸고 있는 내 볼을 오래도록 쓰다듬어 주었을 땐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아이라도 된 마냥 너무 따뜻했다. 그 사람을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애인을 소개받았다. 애인이라니. 나 자신이 부조리의 상징처럼 느껴져 죽고 싶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죽으려 했다. 맨 정신으로 깨어 있는 것은 악몽 같아 술자리가 있는 날마다 엉망으로 취했고, 어김없이 그 사람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찾아왔다. 엄마에게 애인이 있어, 라는 말을 할 수 없어서.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오점이었어, 라고 할 수 없어서. 결국 헤어지자고 말했고 그 사람도 순순히 받아들였다.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괜찮아.' 라는 대답이 마지막이었다. 그러고도 나는 끝끝내 죽지 못했고 친한 친구를 쫓아 도망치듯 이곳으로 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연인은 두 번이나 바람을 피웠다. 그 중 두 번째는 최근의 일이었다. 그리고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아무리 굳게 지키고자 해도 혼자 지키는 사랑은 너무나 쓸쓸한 것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말했는데,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면 주저없이 말해 달라고. 나를 속이지 말고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가라고 그토록 당부했는데. 나를 다시 속였다는 사실만이 씁쓸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옛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역시 예전처럼 도망이라도 쳐야 하는 것일까. 묻고 싶다. 엄마는 행복한지.




요즘만큼 혼이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 절실한 때가 있었을까. 비가 오니 바닥에 늘어져서 음악만 듣고 싶다. 우울해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마냥 좋아서.



아침부터 울고 싶다. 마음을 갉아먹히는 것 같다. 날 속이고 다른 여자를 두 번이나 만나고서 예전처럼 사랑받길 원하는 건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그런 마음 같은 건 진작 끝났다고 생각하는 쪽이 편하다.



요즘 엄마랑 전화를 할 때마다 눈물이 나와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려고 일부러 한 톤 높여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제 세 번째는 어떻게 될까 궁금할 정도다. 처음엔 상처받았지만, 두 번째부터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예고된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난 누군가를 속이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데, 그런 나를 속이는 상대방의 기분은 대체 어떨까 궁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있으면 시커먼 소용돌이 같은 생각에 자꾸 빠지게 된다.



밤이 새도록 소원을 빌고 또 빌고 그렇게  몇 해가 지나도 변치 않고 포기할 수 없는 소원이야말로 지켜야 하고 이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며칠 전에 술을 잔뜩 마시고 죽으러 나가다가 토할 것 같아 다시 들어왔지 뭐야. 중이 제 머릴 깎듯 스스로를 구원해야 하는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니까. 연습하면 점점 더 쉽게 연주할 수 있게 되듯이, 마음도 연습해서 능숙하게 표현하거나 반대로 손쉽게 숨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서 한 잔 더 마신다고 행복해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행복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게 될 수는 있을 것 같다. 왜 적당한 곳에서 멈출 수 없을까. 어째서 매번 과하다 싶을 만큼 넘쳐흐르고 마는 걸까. 역시 내 그릇의 크기 때문인걸까. 물 들어올때 노 젓는다는데 왜 내가 노를 젓기만 하면 어김없이 물이 빠질까.



내일 대구에 간다. 1년을 훌쩍 넘기고도 미루다가. 슬픈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토록 걷고 싶던 강가를 걸어볼까. 좋아하던 장소가 사라지거나 변하는 걸 보면 근간이 흔들리는 듯 슬픈데, 어차피 나도 변했으니 마음을 앓을 것도 없는 것 같다. '행복이 강물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사금'이라면, 정작 내가 행복을 쥐려 하면 물살에 휩쓸리고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려서 강 밖으로 나왔을 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헛손질을 반복하게 되겠지.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괴로울만치 심장이 저려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죽은 여자아이 때문이려니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 뿐이었다. 스스로를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으니까. 자칫하면 이번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자라나 버릴 것 같아 두렵다. 어떻게 이것을 묻어둬야 할까 골몰하면서도, 자꾸만 꺼내서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은 뭘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결코 제자리일 수 없을 것 같다. 귀를 막으면 들리는 소리, 눈을 감으면 보이는 풍경, 입을 닫으면 쌓여가는 말들.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 되었을 때부터 고뇌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행복해야 할 순간에도 머리채를 휘어잡히고 넌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속삭여지는 듯했다.



오빠 무슨 향 좋아하시나요. 오빠가 좋아하는 향으로 뿌리고 가고 싶은데. 는 레몬향이라고 대답했다. 때때로 생각했다. 그가 내 가슴에 박은 것이 못이라면 나는 언젠가 그의 가슴에 말뚝을 박아버리고 싶다고. 이젠 그럴 생각조차 없어졌다. 그런 복수는 그나마 사랑이 남아있을 때 생각하게 되는 종류니까.



내 혼에 다른 사람의 생이 새겨지기라도 한 것 같다.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듣거나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중간을 잘 지키는 어른스러운 관계 같은 건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도저히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자신을 읽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건 불가항력적인 일인 것 같다. 이해받기 힘들었던 생이었다면 오죽할까. 상대를 오독하고 싶지 않아 지나간 대화들을 몇 번이고 되짚게 된다. 읽히는 쪽이 아니라 읽는 쪽이 되길 바라면서.



뭔가 만들어 내고 그 속에서 불멸할 수 있다면 그 땐 죽어도 괜찮겠지만, 여지껏 내가 만들어 온 것들이 너무나 형편없다. 사는 일도 죽는 일도 그토록 부끄럽다면 결국 꾸준히 만들어 오던 것 속으로 도망쳐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정말 좋아하게 되는 일은 커다란 종을 울리는 것과 비슷하다. 처음엔 아플 만큼 무겁고 큰 소리로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잦아들며 눈물이 날 만큼 포근한 여운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단순히 심장이 두근댄다기보다, 커다란 당목으로 몇 번이나 맞은 듯 해서 터무니없이 오래 아프다고 할까. 얼른 여운이 다시 찾아오고 그 작은 흔적마저 사라지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게 된다. 지금 당장 괜찮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그저 다른 때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리는 것 뿐. 괜찮아, 사라질거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아갈거야,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하게 된다. 운명이라고 여기게 될 만큼 큰 파도가 덮쳐왔을 때 그 흐름을 받아들인다는 건 무슨 느낌일까. 어떤 의미에선 부럽기까지 하다.




죽은 여자아이는 그와 내가 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한테도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며. 그냥 만나 보라고 조금만 더 등을 떠밀어 줄 걸 그랬다. 그럼 죽을 일은 없었을텐데.



얼굴을 맞대고 숨을 나눠도 어색하지 않은 동물이 좋다.



죽은 여자아이가 꿈에 나왔다. 사실 화를 내야 하는 건 내 쪽인 것 같은데,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섭도록 소리를 질러댔다. 전부 엉망진창으로 만든 것으로 모자라 나까지 길동무로 데려가고 싶었던 걸까. 정말 그런 의도였다면 피 칠갑을 하고 오지나 말 것이지. 손바닥 뒤집듯 죽어버린 일 때문에 내게서 그토록 가져가고 싶어 했던 건 이제 손에 넣지도 못할 텐데. 내 마음이 그 옆에서 진작 돌덩이가 되어 있던 것도 모르고 왜 그토록 부러워했던 걸까. 애써 빼앗아 갔어도 그리 재미있는 놀잇감도 아니었을텐데. 어차피 결국 두 번째, 세 번째로 밀려나 나와 같아졌을 것을.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릿속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제일 편한 끝이라며 홀려도 안 따라갈 거야. 아직 할 일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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