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번 글쓰기
Santiago de compostela v2
'24년도 첫 글이자, 6개월 만의 다시 쓰게 되는 글
6개월 전 마지막 글은 빌바오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무려" 15시간 걸려 도착한 일이었다. 국제면허증 발급 받은 줄 착각했던 것에 대한 혹독한 대가였다. 다행히 와이프가 격노치 않았기에 아직 살아 있다. 감사하다.
산티아고는 2016년 이후 두 번째다. 그 때는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에 '경험'을 빙자한 '도피'였다. 당장의 취업준비를 위해서 스펙을 쌓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나름의 계산은 '산티아고 순계길을 완주한 경험을 잘 포장하면 그럴듯한 자기소개서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그게 전부였지만 다행히 그해 졸업과 동시에 작은 광고대행사에 취직하면서 광고업자가 되었다.
아무튼 이런 추억이 있는 곳에 와이프와 신혼여행을 오게 되어 나름 감개가 무량했다. 7년 전에는 와이프랑 연애를 할 때 였는데, 이렇게 부부가 되어 같이 오게 될 거라는 상상도 못했는데 현실이 되니 뿌듯하기도 했다.
육체적인 순례길은 산티아고라는 종착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종료 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이 때가 내 나름의 순례길이 시작된 지점이자 시점이었다. 뭔가 서른즈음까지의 목표도 구체화 시켰고,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잡게 되었던 지점이자 시점이었다.
순례길에 도착했던 6년 전에도 함께 도착한 스페인친구들과 3일 정도 밤새 놀았던 기억이 난다. 고된 순례길로 잔뜩 힘들었던 육체와 정신이 이완 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 도시를 오직 '여행'이라는 목적만 가지고 오니 먹을 것, 볼 것 천지였다.
사실 서양 건축물과 서양 사람들이 즐비해서 그렇지 산티아고는 사실상 우리나라의 경주와도 같은 곳이다. 천년이 넘는 역사가 온 도시에 깊숙이 인이 박힌 도시이다. 처음 온 사람들에게는 신기한 것 투성이인 생경한 도시이고, 나처럼 1회 이상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변함 없는 액자에 그려진 그림 같은 도시이다.
그럼에도 와이프와 함께 오니 7년 전에 보지 못했던 골목, 봤어도 기억에 없는 건물, 먹어 봤지만 다시 먹어 보니 미각이 살아나는 음식들이 경험을 새롭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골목에 북적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대낮에 캐노피 밑에서 마시는 차가운 스페인 맥주와 화이트 와인도, 땀을 뻘뻘 흘리며 대광장으로 입성하는 이제 막 도착한 순례자들도, 몇일 동안이나 산티아고를 즐긴 순례자들도, 차를 타고 왔지만 순례자 행세를 하는 관광객들도 마치 세상 처음 보는 광경인냥 마음을 들뜨게 만들었다.
P.S. 7년 전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외관 보수공사로 가림막이 쳐저 있어 전경을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내외 전체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