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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Mar 25. 2018

이기적인 딸기 바나나 요거트

사랑하면 갑자기 이타적이 되는걸까? 그럼 난 왜 아닐까?

 우연히 냉장고에 요거트와 딸기, 바나나가 있었다. 저녁을 일찍 먹은 참이라 조금 출출해 딸기와 바나나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요거트에 넣고 꿀을 섞었다. 너와 함께 나눠먹을 생각에 조금 넉넉하게 만들었다. 바나나와 딸기를 한 조각씩 올려 한 입 먹었는데, 세상에나, 너무 맛있었다. 잘 익은 향긋한 바나나와 새콤한 과즙의 딸기, 달콤한 요거트. 정말 완벽하게 행복한 맛이었다. 다시 그릇을 봤다. 넉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나눠먹기에는 좀 적은 거 같다. 네가 숟가락을 들고 와 한 입 푹 떠서 먹었다. 남은 양을 봤다. 역시 적다. '이 맛있는 걸 나 혼자 다 먹고 싶다.'라는 본능적인 욕구가 피어 올랐다. 동시에 마음 속에서 준엄한 꾸짖음 소리도 들렸다. "사랑은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것이라 하거늘, 어찌 너는 이리 이기적인 것이냐?!". 다시 요거트를 본다. 콩은 맛 없지만, 이 딸기 바나나 요거트는 정말 환상적인걸. 결국 참지 못하고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나 혼자 먹으면 안돼? 



  나는 자기중심적이다. 스스로의 욕구에 솔직하고 내 이익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나를 좋아한다. 내 욕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큼 타인의 욕구와 이익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각자가 원하는 걸 솔직하게 밝히고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가는 걸 선호한다. 너와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만약 너도 딸기 바나나 요거트를 원했다면 나는 눈물을 머금고 함께 나눠먹거나, 귀찮지만 한 그릇을 더 만들어 먹었을 것이다. 나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방식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너는 이 관계에서 전혀 합리적으로 굴지 않았다. 그렇게 맛있는 딸기 바나나 요거트를 나 다 먹으라고 웃으며 넘겨줬다. 드디어 요거트 그릇을 나 혼자 차지했는데 어쩐지 마냥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나는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너도 좋아한다. 거기서부터 나의 갈등이 시작된다. 사랑하면 상대에게 모든 걸 다 줘도 아깝지 않아야 할 거 같은데 나는 고작 딸기 바나나 요거트도 나 혼자 먹고 싶다. 나의 욕구를 우선시 하면 혼자 즐겁게 먹으면 될 텐데 막상 혼자 먹으려고 하니 죄를 짓고 있는 기분이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자연스럽게 상대를 위해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걸까? 나에게 소중한 걸 상대를 위해 내어주며 어떻게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걸까? 물론 나도 머리로는 너에게 잘해주고 싶다. 생선을 발라 먹을 때 가장 맛있는 부위는 네 수저 위에 먼저 올려주고 싶고, 네가 피곤할 거 같은 날이면 집 청소 다 해놓고 널 기다리고 싶다. 미팅보다 너와의 데이트를 우선해서 스케줄링 하고 싶고, 가장 좋은 게 있을 때 내가 아닌 너를 먼저 떠올리고 싶다. 그러나 내 마음은 늘 내가 우선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그릇을 바라보다 너에게 물었다.   

 "너는 이거 맛 없어? 왜 나 다 먹으라고 해?"  

 "네가 먹고 싶어하니까"  

 "너는 왜 그렇게 나한테 양보를 잘해?"  

 "넌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니까" 

 

 너의 대답은 단순했다. 합리적이지 않았다. 맹목적이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로 나는 너의 세상에서 예외가 될 수 있었다. 다른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물론 서로의 욕망을 밝히고 더 먹고 싶은 사람이 더 먹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똑같이 나눠먹는 게 "합리적"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랑은 합리적이거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사랑은 특별하다. 그 특별함을 위해 우리는 공고했던 자신의 규칙을 부수고, 예외를 만들어주고, 비합리적인 일들을 하며, 자신의 욕구에 반하는 길을 간다. 오랫동안 철저하게 쌓아 올렸던 나의 자기중심성도 너의 특별함에 자리를 내어주기 위해 흔들리며 파열음을 내고 있었다  

 숟가락을 놓고 떠나려는 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다시 앉혔다. 미안한 표정으로 너에게 가장 맛있어 보이는 딸기와 바나나를 한 숟가락에 떠서 줬다. 나는 자기중심적이고 때로 이기적이다. 그러나 너에게 만큼은 예외이고 싶다.  너에게 만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걸 네 입에 넣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와 딸기 바나나 요거트를 나눠 먹으며 생각했다. 

'다음에는 두 그릇을 만들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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