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늘한여름밤 Feb 15. 2018

결혼해도 어디 가지 않아

시월드도, 유부월드도 가지 않습니다.  

 "가지마~ㅠㅠ" 


내가 너와 결혼한다 했을 때 친구는 내 팔을 흔들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왜 이리 이상하게 느껴졌을까? '시집간다'는 말이 처음 생겼을 때 결혼은 실제로 물리적 이동을 뜻했을 것이다. 특히 여자는 결혼하면 시댁으로 이사해 살게 되었으니 여자 쪽 친구들이 가지 말라고 서운했다는 것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나는 결혼해도 달라지는 게 전혀 없었다. 집도 원래 동거 중이었던 집에서 계속 지낼 예정이라 결혼으로 인한 정말 어떤 물리적 변화도 없을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 전까지 가지 말라는 인사치레를 여러 번 들어야 했다. 


도대체 결혼하면 어디로 간다는 걸까?


 결혼하고 내가 가장 먼저 받은 환영의 인사는 "웰컴 투 시월드"였다. 결혼한 여자라면 누구든 피해갈 수 없다는 바로 그 곳. 처음 그 인사를 만났을 때의 모멸감이란. "그래 너도 어쩔수 없이 이 곳에 오게 되었구나."라는 자조 섞인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나는 결혼해 며느리는 되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말하는 그 "며느리". 이 단어 안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 우리 모두가 안다. 나는 결혼 전에는 추석 지나고 결혼하라고, 그래야 한 번이라도 명절에 덜 갈 수 있다고, 그런 얘기를 팁이라고 들었다. 너도 이런 팁을 들었을지 궁금하다. 결혼 첫 해 너희 어머니가 생일날 "내 친구는 며느리한테 생일상 받았다더라."는 카톡을 나에게 보내신 적 있다. 우리 부모님은 당신들 생일날 너에게 이런 카톡을 보내는걸 상상이나 하실까? 내가 머리 한 쪽을 탈색해 초록색으로 브릿지를 넣으려 하자 내가 기혼인 걸 아는 미용사는 나에게 물었다. "머리 이렇게 하면 시부모님이 혼내지 않아?" 


  "남편 아침은 차려줘?" "남편이 이런 거 하는 거 허락해줘? 뭐라고 안 해?"라는 질문은 또 몇 번이나 받았는지. 사람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도 전에 나를 유부월드의 "결혼한 여자"로 봤다. 남편 아침을 차려주고, 집안일과 바깥일 사이에서 줄타기 하며 허덕이고, 명절에는 시댁에가서 고생하고, 시부모님께 도리를 하고, 가정을 책임지는 그런 여자. 그런 여자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나는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다. 시부모님을 싫어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잘 보이려 억지 노력을 하지도 않는다. 우리 집은 아침을 먹지 않는다(그러니 그 빌어먹을 남편 아침 차려주냐는 질문 그만 받고 싶다). 너는 살림하는 걸 좋아하고 나는 돈 버는 걸 좋아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가정을 책임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결혼해도 나는 나이다. 독립된 성인이고, 가부장제에 동의하지않으며, 비합리적인 일들을 하거나 당하지 않으려 애쓴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변하지 않은 것에 놀란다. 명절에 시댁에 가지 않는 것에 놀라고, 시부모님이 날 좋아하시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에 놀라고, 집안일을 내가 도맡아 하지 않는 것에 놀란다. 어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아휴 시부모님/남편 잘 만났네~ 행운이다~”라고 축하한다. 이 모든 것이 그저 운이 좋아서, 인성 좋은 시부모님의 아량과 좋은 남편을 어쩌다가 만나서 일어난 행운이라는 듯이. 나는 처음부터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사실 내 결혼반지에 특별한 마법이 걸려 있어서, 사람들이 이 반지만 보면 내가 주체적 선택을 할 수 있는 성인이라는 걸 잊어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때로 궁금해진다. 


 나는 결혼하고 어디로 갔어야 하는 걸까? 나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나를 이기적이라고 욕하며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했냐며 빈정거린다. 그러나 나는 며느리나 아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결혼한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랑하는 관계를 통해 더 진실한 내가 되고 싶어서 결혼했다. 결혼이라는 길에 가부장제라는 똥이 널려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 똥을 더러워서 피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똥을 피하기 위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더럽고 짜증나더라도 너와 함께 이 똥을 치우면서 갈 것이다. 


 결혼해서 시월드도 유부월드도 가지 않는다. 그곳에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결혼했다고 내가 아닌 무언가가 되려 노력하고 싶지 않다. 결혼에서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나와 너의 가장 깊은 마음, 사랑이라는 미지의 세계, 진실한 마음의 영역이다. 나는 그곳에 내 모습 있는 그대로 갈 것이다. 그러니 결혼해도 나는 어디 가지 않아. 



* 무례하거나 모욕적인 댓글은  경고없이 삭제되며, 변호사와 상의 후 일괄 고소합니다.댓글 쓴 것도 잊고 있다 2-3개월 후에 경찰에게 연락 받고 싶지 않으시면 댓글 쓰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주세요. 

작가의 이전글 그래 상처주려고 그랬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