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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Jan 24. 2018

그래 상처주려고 그랬어

나는 상처 받은 네 얼굴을 사랑해 

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점심을 먹고 있다. 나는 굳은 표정으로 핸드폰만 바라본다. 우리는 방금 싸웠다. 기분이 나쁘다는 걸 얘기하기 위해 침묵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정적을 깨며 차갑게 말한다. "너는 일이 더 중요하잖아. 일과 나 중에 나를 선택한적 있어?". 그리고 다시 침묵. 식당을 나가면서내 것만 따로 계산하고 나간다. 네 가방에 같이 챙겨왔던 내 짐을 꺼내며 나는 이제 내 갈 길 갈 테니너도 알아서 하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네가 내 팔을 잡는다. 잠깐 얘기 좀 하자는 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다. 너무한 거 아니냐며따지는 너의 눈가가 붉어진다. 너는 상처 받았다고 말한다. 그말을 들으니 이상하지만 기분이 좋다. 그래 상처 주려고 그랬어.



미안, 네가 상처 받을 줄 몰랐어, 이런 치사한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때로 너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 침묵하기, 방문 닫고 나가기, 네 진심을 모른 척 빈정거리기, 핸드폰 꺼놓기. 너를 울리고 싶다.네가 상처 받았다는 걸 알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네가 반응하지 않고 오래 버틸수록 나는점점 더 강하게 공격한다. 평정심을 잃은 너를 만나고 싶다. 나는너의 상처 받은 얼굴을 좋아한다. 어쩔 줄 몰라 꼭 다문 입, 긴장해서꼼지락거리는 손가락, 축 처진 채 내 안색을 살피는 눈, 목이메이는 소리. 내가 여전히 너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걸 이보다 더 끈적하게 확인할 수 있을까?


특히 네가 나를 거절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나는 너에게 꼭 상처를 내야 한다. "이사끝내고 그 다음 날 연차쓰고 나랑 쉬면 어때?". 점심 먹으러 가는 길 내가 가볍게 던진 제안을너는 바쁘다며 딱 잘라 거절했다. 거절이 어려운 너는 거절할 때 늘 필요 이상으로 정색한다. 아니면 꼭 내가 널 곤란하게 만들 것처럼. 아니 이미 곤란하게 만들었다는듯. 그 순간 나는 널 피곤하게 만든 사람이 된다. 바쁜너에게 눈치 없이 놀자고 조르는 철없는 연인이 된다. 내가 미워진다.네가 정색하면 나는 필요 이상으로 절박해진다. 갑자기 너와 나 사이에 두꺼운 장막이 드리워지는느낌이 든다. 내가 아무리 두드려도 너에게 닿지 않을 거 같다. 내가얼마나 너를 필요로 하는지 네가 볼 수 없을 것이고 애타게 불러도 너에게 들리지 않을 것이다. 부디장막을 걷어달라고 너에게 간청하는 대신, 나는 장막을 북북 찢어버리기로 한다. 


나의 침묵이 너의 위장을 콱콱 조이길 바란다. 차가운 목소리가 가슴을 찌르고, 신경질적인 손짓에 목이 막히길 바라고 또 바란다. 나는 확인해야한다. 두꺼운 장막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아주 얇은 습자지였다는 걸. 내가 너에게 들리고 보이는 사람이라는 걸. 내가 너에게 상처 줄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라는 걸. 마침내 네가 끄윽 끄윽 비명을 토하고 상처 받았다고 화를 낸다. 나는 그제야 안도한다. 웃음이 터질 거 같다. 너는 나와 함께 있다.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이건 사랑을 확인하는 최악의 방법이다. 우리는 서로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자신의 감정을상대에게 잘 설명해주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늘 차분하고 이성적일 수 있을까. 너의 사소한 퉁명스러움에 내 마음이 비참해진다고 인정하는 건 너무 어렵다. 내마음의 가장 무른 부분을 맞대고 있는 사람에게 그럴 수 없다. 너의 작은 날카로움에도 나는 자지러진다. 나만 너에게 이렇게 의존하고 있는 게 아님을 확인하고 싶다. 아주나쁜 방법이지만 가끔은 더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연인이 등을 돌리려고 하면 갈고리로 등껍질을꿰어서라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겠는가? 


연인은 서로 상처를 주고 받기로 약속한 사이다. 서로에게 생채기를 낼 정도로 가까이 있다는걸 확인한 후에야 안심하며 사랑할 수 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을 내고 아문 자리가 엉겨 붙으며 가까워지는지도모른다. 나로 인해 상처 받는 너를 사랑한다. 눈물을 글썽이는너를 보니 웃음이 날 거 같다. 내가 눈물을 닦아주면 너는 또 나에게 안길 것이다. 너의 상처는 다시 나의 사랑으로 치유될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이고 나 때문에 울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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