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늘한여름밤 Dec 15. 2017

우리는 언제 불행해질까?

"너도 결혼 해 봐"라는 저주

  내가 결혼을 하다니 돌이켜 볼 때마다 새삼 신기하다. 나는 내가 결혼을 하게 될 줄 몰랐다. 불화한 부모 밑에서 큰 여느 아이들처럼 나는 결혼을 믿지 않았다. 해맑은 얼굴로 “나도 얼른 결혼하고 싶다!”라고 이야기 하는 친구들을 보면 늘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아, 너는 삶에서 좋은 결혼을 본 모양이구나.’ 내가 보고 자란 결혼은 습관적인 싸움, 밤 중의 괴성, 맞출 수 없는 것에 대한 끊임 없는 불평불만, 서로를 옭아매는 상호의존, 그 안에서 악취를 내며 썩어가는 사랑이었다. 그 모든 지리멸렬함을 내 삶에서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이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이 아닌 것이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혼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와 같이 살고 싶었다. 세상은 참으로 어려운 곳이고 홀로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누군가와 같이 기대어 살고 싶었다. 그게 부모님은 아니었다. 나는 새벽에 아파 잠에서 깨 응급실에 가야 할 때도 부모님 깨우기가 망설여져 애인에게 전화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었으니. 내가 힘들고 아플 때 옆에서 나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무너지는 날에도 나를 다독여줄 사람이 있다면, 혹시 내가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순간이 되었을 때 나를 지원해줄 사람이 있다면 사는 게 얼마나 안심이 될까. 그래서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한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너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하며 나는 마음 속 한 켠으로 늘 우리가 언제 불행해지기 시작할까 궁금했다. 다정한 말들이 뾰족하게 변하고, 함께 있을 때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늦게 들어온다고 화를 내고, 서로를 짜증 섞인 태도로 대하고, 지겨워지고, 헤어지지 못해 사는 관계가 되는 것은 언제가 될 것인가 궁금했다.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들도 다 그렇게 변한다고들 하니까. 같이 살면 그렇게 된다고 하니까. 나에게는 도대체 언제 그런 시점이 오는 걸까 숨죽이고 지켜봤다. 그런 시점이 오면 헤어지면 된다. 동거했다 헤어지는 게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결혼했다 이혼하는 거보다는 쉬운 일일테니. 2년 동안 매의 눈으로 관찰했지만 너는 매일 다정했다. 심지어 나도 널 계속 사랑했다. 같이 살아도 달라지는 건 같이 있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결혼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 같았다.   


  네가 차려준 저녁을 함께 먹는 게 좋았다. 전세자금대출을 함께 갚아나가면 갚아볼 만 한 거 같았다. 내가 너의 법적 보호자가 되고 싶었다. 너의 가족이 내가 되고 나의 가족이 네가 되고 싶었다. 평범하고 따뜻한 가정을 너와 함께 만들고 싶다. 그래, 남들이 다들 결혼에 대한 환성이라고 비웃는 그런 가정. “너도 결혼해 봐. 이렇게 돼”라고 체념하는 사람들이 사는 그런 가정 말고. 사랑하는 사람 둘이서 삶을 공유하고 서로를 다독이는 그런 가정. 나는 그런 가정을 잘 보지 못했지만 보지 못했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니까. 부모의 결혼생활이 엉망이었다고 해서 내가 도전도 못 해 볼 이유는 없지 않는가? 부모가 심어놓은 결혼이라는 두려움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너와 함께. 

   

  언젠가 우리가 불행해지리라는 두려움은 늘 곁에 있다.  나는 결혼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오늘 쓴 이 글이 무색하게 우리는 서로에게 고통을 주며 이별할 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도 씁쓸한 얼굴로 "너도 결혼해 봐"라고 저주를 내뱉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종종 나는 너에게 묻는다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사랑할까?" 그럴 때마다 너는 이렇게 대답한다. “오늘 날 사랑해?(응) 내일도 날 사랑할 거 같아?(응) 그럼 된 거야.”

 

 우리는 언제 불행해질까?

 일단 오늘은 아니다. 그럼 된 것이다. 

 나는 여전히 결혼을 믿지 않는다. 다만 너와 사랑하는 오늘 하루를 믿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