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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늘한여름밤 Dec 28. 2017

이제 혼자 잘하는 건 지긋지긋해

고백합니다. 의존적이에요. 이제는 부끄럼도 없습니다. 

나는 집안의 장녀다. 애석하게도 이 한 문장이 나를 너무 많이 설명해준 때가 있었다. 


 장녀란 무엇인가? 집안의 기둥이다. 부모의 총아이다. 동생의 작은 영웅이다. 세상의 온갖 바람직한 것, 꿋꿋한 것, 의젓한 것, 똑부러지게 혼자 잘하는 것들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릴 때부터 어른이었다. 다섯 살이 영 꼬맹이 같아보여도 신생아와 함께 있으면 믿음직해 보이기 마련이니까. 


"첫째니까", "맏이가 돼서", "그래도 네가 언니인데"라는 말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너는 어쩜 뭐든 그렇게 혼자서 잘하니'라는 말이 칭찬으로 쓰였고, 혼낼 때는 '너 몇 살인데 아직도 그래?'라는 말이 꼭 따라 붙었다. 어른 대접을 받던 나는 내 나이가 너무 어린 게 부끄러웠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연약함과 미성숙함, 의존적인 마음을 사춘기 여드름과 함께 짜버리고 싶었다.


  

나는 믿음직스러운 인간이었다. 누구든 나를 보면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신세지지 않았다. 무엇이든 얻어 먹으면 다시 그만큼 대접했다. 폐를 끼치거나 걱정시키는 일도 없었다. 혼자 여행을 가고, 외국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매 학기 꾸역꾸역 장학금을 탔다. 무엇이든 혼자 잘 해냈다. 잘 해내지 못하는 것들은 잘 숨겼다. 


그러니 나는 참 믿음직스러워 보였을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이 거짓이었던 건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실제로 능력이 있었고, 자신감이 있었으며, 혼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의 나를 죽이고 싶게 미워했을 뿐이었다. 혼자 있는 걸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데 나는 즐겁지 않았다. 다른 누구의 인정이 아닌 스스로의 인정을 추구해야 멋진 인간이라 하는데 그럼 나는 구린 인간이었다. 외로웠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지 말라고 해서 나는 누구도 만나지 못했던 걸까? 자꾸 누군가가 필요했다. 아, 나는 그런 내 모습을 진심으로 경멸했다.


연애에서도 나의 이런 모습은 이어졌다. 데이트 통장을 써서 모든 돈을 딱 반반씩 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내가 했고, 상대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일들을 해줬다. 상대에게 의지하려고 하는 욕망을 발견할 때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래서 연애는 늘 갈등이었다. 날 더 인정해주지 않고 예뻐해주지 않는 애인과의 갈등, 상대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한심한 나와의 갈등,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게 만드는 애인과의 갈등. 처음부터 그냥 톡 까놓고 


"야 이 새끼야. 연인이라면 날 더 사랑해주고 내가 의지할 수 있게 해달란 말이야."


라고 말할 있는 인간라면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담을 줄까봐, 그럼 날 싫어할까봐, 한 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을까봐, 거절 당하면 너무 상처받을까봐. 그리고 아마도 내가 알기로 세계장녀협회의 규정에 따르면 장녀들은 이런 말을 하는 게 금지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너에게 이렇게 의존적이 된 것은 너무 오래 참아왔기 때문이라 하겠다. 너 같은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너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해 해줬다.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으면서도 너는 자주 "내가 해줄까? 내가 해줄게."라고 물었다. 내가 "그래도 괜찮아? 해 줄 수 있어? 안 귀찮아?"라고 조심스레 물으면 너는 웃으며 말했다. "이게 뭐라고. 별 거 아니잖아"라고, 혹은 "그럼요. 내 사랑", 때로는"더 해줄 건 없어?", "얼마든지 해줄게". 너는 얼마든지 해줬다. 귀찮아하지도 않고 부담스러워 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았다. 나는 너의 사랑을 마구 집어가서 써도 괜찮았다. 다 나의 것이었다. 나는 금새 내 마음이 발 뻗을 수 있는 곳이 여기라는 걸 알았다. 


나는 너에게 기댄 게 아니라 엎어졌다. 너의 사랑 속에서 나는 허겁지겁 퇴행했다. 어딜 가든 네가 바래다 줄 때가 많았다. 무거운 게 있으면 늘 네가 들어줬다. 때로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거 해줘, 저거 해줘 하는 날도 있었다. 네가 밥을 챙겨주지 않으면 먹지 않고 기다릴 때도 있었다. 그냥 나도 한 번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식당에서 주문을 했다가 네가 시킨 게 더 맛있어 보이면 내 거랑 바꿔서 먹었다. 집주인에게 에어컨 설치해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도 너한테 해달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너랑 3년을 같이 살면서 이 건물 음식물 쓰레기통이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다. 내가 원하는 걸 해주지 않으면 왜 안 해주냐고 언제 해줄 거냐고 떼를 부린다. 혼자 할 수 있는 것들도 혼자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다. 누가 들으면 혀를 찰 노릇이다. 근데 웃음이 난다. 내가 이러고 있는 게 어딘가 즐겁다. 네가 없으면 못하는 것들이 생기는 게 이상하게 좋다.

  

나는 이 세상 대부분의 곳에서 믿음직한 사람이다. 프리랜서 작가고 개인사업을 운영하며 내 힘으로 많은 것들을 일구고 있다. 그러나 네 앞에서 "울애기"다. 웃기지. 네 앞에선 아무렇지 않게 "나는 이거 못해. 네가 해줘"라고 말할 수 있다. "나 잘하고 있는 거 같아?"라고 똑같은 질문을 백 번이고 반복해서 물어보고 인정 받을 수 있다. 지금 너무 외로우니까 이번 한 달 동안은 내 생각만 해달라고 엉엉 울며 안길 수 있다. 혼자 다 잘하지 않아도 된다. 너를 필요로 해도 된다. 네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는 내가 부끄럽지않다. 뭐 어때 너랑 나의 집에서는 내가 장녀도 아닌데.  


누가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러냐고 비아냥거린다면

왜? 뭐?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나는 이제 혼자서 잘하는 건 지긋지긋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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