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던스의 비밀
중학교 2학년, 나는 100m 16초대의 평균, 평균이하의 아이였다. 우연한 계기로 100m를 12초에 뛰던 친구와 친해졌다. 선생님이 육상 해보라고 권하던 친구였다.
하루는 그 친구와 지하철을 타고 놀러 갔는데 나에게 비밀을 하나 알려주겠다며,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너 이거 하나만 알면 나만큼 빠르게 뛸 수 있어.”
흥분됐다. 나도 빨리 달릴 수 있다니. 중2 때는 운동 잘하면 그걸로 장땡이었다. 축구를 잘하면 더 좋겠지만 그게 아니면 달리기라도 잘하면 된다.
“다른 거 없어. 팔 빨리 흔들 수 있지? 달릴 때 팔을 네가 할 수 있는 최고 속도로 흔든다고 생각해. 바로 출발한다. 출발”
그 말을 마치고 친구와 나는 길고 긴 지하철 갈아타는 곳을 트랙 삼아 달렸다. 끝까지 그 친구의 한 발짝 뒤에 바짝 붙어서 달려졌다. 팔만 빨리 흔들었을 뿐인데 내 속도가 감당이 안 되는 느낌. 도파민이 솟구쳤다. 그때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오늘 달리기를 할 때는 발구름 속도 ‘케이던스’를 좀 빨리 해보고 싶었다. 케이던스는 1분에 발을 몇 번 구르는지 숫자인데, 러닝 유튜브를 보면 180이면 적절하다고 하는데 나는 보통 160 전후가 나온다.
케이던스가 러닝에서 얼마나 중요한 건지 나는 잘 모른다. 어쨌든 오늘은 한 바퀴를 달릴 때마다 조금씩 팔을 빨리 흔들어서 케이던스를 올려보고 싶었다.
효과는 좋았다. 158-160-162. 발을 조금 빨리 구르면 체력을 많이 안 쓰면서 속도를 조금씩 올릴 수 있다.
좀 더 빨리 달려야지’ 하면 갑자기 체력이 깎이는 느낌인데, ‘발을 살짝 빨리 굴러야지 ‘ 하면 체력 손실 없이 속도가 올라간다.
하이브리드 차 운전해 본 사람은 안다. 엔진이 안 켜지게 살짝씩만 속도를 올려 연비운전 하는 재미. 기름은 안 쓰는데 속도는 올라가는 미묘한 발재간.
창업이 어차피 오래 달리기라면 이런 재간을 잘 부려야 한다. 연비운전 하는 방법. 내 연료인 체력과 시간과 돈을 덜 쓰면서 속도는 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회사는 고정비를 최소화해야 런웨이가 길어진다. 사무실 월세 올리고, 때가 안 됐는데 사람 더 뽑고 하다 보면 연비가 뚝뚝 떨어진다. 주유소 나오기 전에 기름 떨어지면 별 수 없다. 투자 못 받고 현금 바닥난 스타트업이 그 꼴이다.
기억하자. 케이던스. 기억하자. 연비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