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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Jul 12. 2023

우리 OO형이야!

몸과 마음으로 서로를 지켜내는 힘

얘들아, 지난 주말 우리는 여행을 다녀왔어. 다른 한 가족과 함께였는데 그 가족은 엄마의 지인인 언니와 그 남편인 형부 그리고 너희보다 1살 정도 많은 OO, 이렇게 세 명이었어. 우리는 오래된 한옥을 빌렸어. 너희와 그 형은 툇마루에서 맘껏 뛰고, 마당에서 물총싸움을 했지.

 

한낮에 어딘가 가기엔 덥고 숙소에 있기엔 너무 심심해서 어린이 박물관 놀이터를 예약했어. 멀지 않아서 예상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어. 같은 시간에 예약한 다른 사람들도 줄지어 서 있었는데, 초등학생 정도 돼 보이는 형누나들이 수군거리는 거야. 우리 일행인 OO를 쳐다보면서 말이야.

 

맞아, OO는 우리와 약간 다른 외모를 가졌어. 엄마는 한국인이고 아빠가 미국인이거든. 눈이 크고, 피부도 하얗고, 머리는 아주 밝은 갈색이지. 태어나서 줄곧 한국에서 살아서 우리말을 아주 잘했어. 그래서 너희와 '툇마루 툇마루 신나는 툇마루~' 노래도 부르고, 얼굴에는 물총 쏘지 말라고 티격태격하며 놀았잖아.

 

다른 사람들 눈엔 조금 달라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너희 바로 앞에서,

"쟨 한국인이야, 외국인이야?"

"어머, 한국말만 해. 영어 못 하나 봐."

이런 말을 수군대서 엄마는 약간 당황됐어. 하필 형의 엄마는 자리에 없고, 한국말을 잘 모르는 형의 아빠인 형부는 멀찍이 서 있었어. 너희 셋을 엄마가 데리고 있었으니, 보호자로서 뭐라고 말하거나 반응해야 하는 상황이었지. 아니나 다를까 OO가 엄마를 쳐다보는데, 엄만 순간 황당해서 얼어붙었던 것 같아.

OO는 평소 그런 경험이 많았는지 이내 말수가 적어지면서 옆으로 주춤주춤 물러서더라. 너희도 재잘재잘 떠들며 놀다가 약간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조용해졌지.

 

그때, OO는 기분이 어땠을까?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을 수도 있겠다. 자기가 원치 않았는데 주목받고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거침없이 이야기하니 정말 불편했을 것 같아. 존중받고 싶고, 배려받고 싶었을 거야.

엄마는 아이들이 함부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놀라웠고, 그 형누나들의 부모님이 그걸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게 너무 짜증 났어. 심지어 어떤 어른이 '혼혈인가 보지~ 너 학원에 누구도 아빠가 영국사람이잖아. 그런 거야‘라고 말하는 걸 들으니 화가 나더라. 이 아이들과 보호자들에게 내가 어떻게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반응해야 하지, 머리가 복잡하던 와중에 너희가 외쳤어.

 

"우리 OO형이야!"

 

옆으로 물러난 OO 앞에 너희 둘이 나란히 서서 말했어. 이어서 1호는 '우리 OO형은 광주에서 왔어.'라고 말하고, 2호는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가슴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있더라. 너희는 OO의 불편한 감정을 같이 느끼고, 서로 돌보려 했던 것 같아. 한국인, 미국인, 검은 눈, 파란 눈, 영어를 잘하는 사람,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 이런 구분 없이 그저 존재로서 말이야.

 

마침 입장시간이 되어 문이 열렸어. 너희는 실내놀이터로 제일 먼저 뛰어갔지. 놀면서 티격태격하다가도 도움이 필요하면 지체 없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그러면 얼른 달려가더라. 머리를 감은 듯 땀범벅이 되어 노는 너희를 보며 많이 미안했어. 여러 자극과 도전 앞에 든든한 양육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또 하나 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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