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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Jun 28. 2024

그런 훈육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보상들통을 '관계'로 듬뿍듬뿍 채워주세요.

지난 글을 읽은 독자가 메일을 보내셨어요. 요약하면,

그게 무슨 훈육인가요? 그렇게 하면 훈육할 일이 없게요.

맞습니다. 우는 아이를 들어 옮기거나 다리에 끼고 눈을 부릅떠야 하는 훈육을, 애초에 할 일이 없으면 좋겠어요. 아이와 이야기해서 규칙을 정하고, 아이는 그 규칙을 지키며 크고 작은 성공을 경험하고, 그래서 아이가 스스로 결정하고 조절하는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는 것. 그게 육아의 목표 아닐까요?


저희는 흔히 생각하는 훈육이 '정말 훈육'인지 되묻습니다. 우선 아래 그림을 볼까요?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 스티븐 포지스(Stephen Porges)가 다중미주신경이론(Polyvagal Theory)에서 제시한 3단계 안전감각을 정리한 그래프인데요.

초록색 구간은 우리가 스스로를 잘 조절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기쁨을 느끼고, 현존하고, 호기심과 열린 태도과 연민을 품은 채로 마음 챙김을 합니다. 안전과 연결이 충족될 때 이런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자극 앞에 우리는 3F(얼어붙거나, 싸우거나, 그 자리를 피하는)로 반응합니다.

얼어붙기 Freeze : 무력하고 수치심을 느껴서 단절하고 희망을 잃어버리며 발목 잡히는 상태

싸우기 Fight : 분노하고 화내고 좌절한 상태

자리 피하기 Flight :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고, 걱정하며 불안한 상태


무력해지고, 분노하고, 불안하고... 우리가 육아 중에 겪는 감정 아닌가요? 저희는 수시로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조절되지 않은 파랑과 빨강 상태에서 '훈육'이라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죠.


하지만 아이나 양육자인 우리가 조절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말이나 행동은 약보다는 독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폭력적인 형태의 말이나 행동이기 쉬우니까요. 우리는 두고두고 후회되고, 아이에겐 상처로 남기 일쑤입니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아동의 트라우마만 30년 넘게 연구한 브루스 페리(Bruce D. Perry)는 인간 뇌의 계층 구조로 이 과정을 설명합니다.

우리 뇌는 4개 정도의 계층을 이루는데요. 뇌간은 생존에 필요한 체온과 호흡, 심장박동 등을 관장합니다. 간뇌는 안전을 위한 수면과 식욕, 위협에 대한 반응 등을 다루고요. 변연계에 이르러야 유대, 감정, 기억, 보상 등의 기능을 할 수 있는데요. 포유류에서 가장 잘 발달했기 때문에 흔히 포유류의 뇌라고 불립니다.


그럼 '피질'은 뭘까요? 말하기와 추상적 인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구상할 수 있는 능력 같은 '인간' 특유한 기능들을 매개합니다. 생존과 안전, 유대(관계)가 채워져야 우리는 비로소 창의성을 발휘하고 사고와 언어를 통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훈육이나 학습이 여기 해당됩니다.


같은 이가 제안한 보상들통을 볼까요? 우리가 하나의 컵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뭐로든 채워야 살 수 있습니다. 만약 '관계'로 기본을 충분히 채우고 거기에 리듬-규칙적이고 예측가능한-을 더하면 소위 말하는 자극적인 것을 조금 보태어 신념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반면 애초에 관계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자극적인 것(위 그림의 달고 짜고 기름지진 음식 외에 게임, 숏츠, 쇼핑, 무분별한 SNS 탐닉 등이 떠오르네요.) 외에 해로운 것(술, 마약)도 서슴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래야 사니까요.


양육자가 할 일은 생애초기 들통에 관계를 충분히 채워주고, 또 스스로 채우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아닐까요?

관계가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훈육과 교육은 당장에도 효과적이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아이의 보상들통을 장기적으로 바닥나게 하는 행위 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더해서 저희는 '상과 벌'에 대해 묻고 싶어요. 훈육에 흔히 따라오는 상과 벌, 여러분은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가요?

무언가를 하는 대가로 상을 주느냐, 하지 않는 대가로 벌을 주느냐에 하나의 축을 더해볼게요. 물질과 관계라는 소재입니다. 괜히 복잡해 보이는데요, 각각 짝지어 일상대화로 풀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익숙하시죠? 여러분은 어떤 말을 많이 듣고 자랐나요? 아이에겐 어떤 말을 자주 하고 계신가요?


흔히 처벌보다는 보상을 활용하라고 합니다. 나의 체력과 정서노동을 더하는 '관계'보다는 결제하면 바로 배송해 주는 '물질'이 더 쉽고 빠릅니다. 그래서 많은 양육자들이 물질-보상을 선택하죠.


그런데 물질-보상은 당장은 통하는 것 같지만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물질-처벌은 떼로 이어지고요.

반대로 관계-처벌은 아이와의 관계를 망가뜨립니다. 양육자는 관리하느라 지치고, 끝없는 감시와 협상이 시작됩니다. 시간으로 벌을 준 경우 벌이 점점 불어나 수행불능 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어요. 결국 벌잔치(없던 일로 하고 새로 시작)를 했는데요, 그 이후 처벌의 효용성은 급격히 떨어집니다. (어차피 쌓이면 탕감되는데 뭐) 아이도 부모도 우울하고 무기력해지고요.

’관계-보상‘은 돈도 안 들면서 아이를 성장시키고 양육자와 아이 관계를 풍성하게 해주는 만능키입니다.


보상들통을 '관계'로 듬뿍듬뿍 채워주세요


이것을 하면 무엇이 충족될지 알려 주세요. 성취의 측면뿐 아니라 도전, 변화, 기여, 연결, 배려, 즐거움, 재미, 풍요로움 같은 욕구 에너지와 연결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가족의 여정 자체가 풍요롭고 아름다워집니다. 

이 책은 저희가 아이들과 재밌게 읽은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입니다. 주인공은 미래에 무시무시한 일만 생길 거란 소문을 듣고 잔뜩 움츠러듭니다. 할머니에게 달려가 이 걱정을 털어놓자 할머니는 미래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알려주시죠. 사람들은 불확실함을 두려워하며 익숙하게 정해진 선택지만 고르지만, 주인공은 불확실함이 가능성의 또 다른 이름임을 깨닫고 미래를 즐겁고 신나는 상상으로 채워나갑니다.


훈육도 마찬가지 같아요. 아이는 떼를 쓰고, 양육자는 화를 참고 아이를 다리 사이에 끼고 버티는 훈육만 있을 리가 없잖아요. 발달에 대해 이해하고, 훈육기준과 약속을 공유한 뒤에, 아이를 상과 벌로 조정하지 않고, 관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훈육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훈육은 어렵고 힘든 게 아닙니다. 아이에게 이 세상을 알려주는 신나고 즐거운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두려움은 어느새 설렘으로 바뀝니다. 훈육이 쉬워지면 육아가 얼마나 멋진 여정인지 비로소 보이지요.

 

이 이야기가 ‘무조건 아이에게 맞추라’거나, ‘부모가 모든 걸 포기하고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메시지로 읽히진 않을까 염려됩니다. 아이와 긴밀히 연결되면서도 부모의 삶을 잘 돌보는 '현실적인 방법'을 다음 시간부터 나눌게요. 역시나 비폭력대화에 기반해서요.


*아래 자료를 참고했어요.

Autonomic Nervous System by Stephen W Porges / 2009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 내면의 상처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는 열 번의 대화> /  브루스 D. 페리, 오프라 윈프리 저 / 정지인 역 / 2022 / 부키

<그것만 있을 리가 없잖아> / 요시타케 신스케 저 / 고향옥 역 / 2019 / 주니어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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