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의 빈도를 낮추고 양육자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훈육, 많은 양육자의 관심사죠. 저희는 훈육 전 준비과정을 제안합니다. 훈육의 빈도를 낮추고, 하게 되더라도 훨씬 순조로울 수 있는 밑작업입니다.
1. 발달에 대한 이해
제가 만난, 훈육을 언급한 양육자 중 아이가 가장 어린 경우는 생후 7개월이었습니다. '애가 손으로 그릇을 밀치기 시작해요. 훈육해야 할까요?'라고 물으시더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7개월 아이가 손으로 그릇을 밀치는 것은 훈육의 대상일까요? 제가 보기엔 아이가 손과 발을 써보고, 몸으로 자기 의지를 표현하는 것 같았어요.
발달을 이해하면 훈육의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집니다. 아이가 어떤 것을 할 수 없어 못하는 건데 그걸 반항이나 교정의 대상이라고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세 돌 이후에 많은 양육자들이 이 부분을 간과합니다. 그전까지는 대부분의 양육자가 'oo개월 발달'을 주기적으로 검색합니다. 체크도 쉽습니다. 언어나 신체 발달처럼 눈에 보이니까요. 그런데 세 돌이 넘으면 몸이 꽤 자라고, 말도 곧잘 알아듣는 것 같으니 '학습'이나 '훈육'으로 검색 키워드가 넘어갑니다.
하지만 세 돌 이후에도 발달상황을 잘 이해하고, 양육자가 도울 것은 무엇인지 아이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는 게 우선입니다. 주의력, 사회성, 만족지연 능력, 회복탄력성 등 단번에 포착하기 어렵지만 살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것들이 이 시기에 발달하니까요. 아이의 기질이나 공격성으로 쉽게 단정 짓기보다 세밀하게 이해하고 기다려주어야 합니다.
2. 훈육 기준 정하기
두 번째 준비, 훈육 기준 정하기입니다. 훈육 기준은 일관성 있는 육아의 시작입니다. 기준이 잡히면 아이는 물론이고 양육자 자신도 안정되고 편안해집니다. 여러 상황이 수시로 벌어지는 와중에,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매번 판단하느라 소모하는 에너지를 아낍니다.
여러분은 어떨 때 훈육을 하세요? 여기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쓰기도 했는데요.
https://brunch.co.kr/@giraffesister/206
저희는 딱 두 개, '아이 자신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기'를 훈육의 기둥으로 삼습니다. (이 둘만 가르치기도 너무 어려워요.)
밥상머리 교육, 인사, 바른 자세 등등 가정마다 중시하는 바가 다를 수 있겠지만 훈육의 기준이 정말 아이를 위한 것인지 냉정하게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육아교육가인 셰팔리 차바리의 말을 빌립니다.
"다 아이 잘되라고 그러는 거죠."
부모들은 매우 기괴한 형태의 훈육에 대해서도 이렇게 정당화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는 아이에게 남는 건 억울함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이 억울함은 쓰라린 자기혐오로 악화될 수 있다. 그리하여 자존감이 먹구름처럼 내려앉고, 못난 자기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는 사람들과 상황을 자꾸만 끌어들여 삶을 엉망으로 만들 수 있다.
- 셰팔리 차바리 / <깨어있는 양육> 3장 중
주 양육자(엄마, 아빠 등)와 부 양육자(조부모, 다른 가족, 시터 등)들이 훈육 기준을 통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나중에 양육태도 유형에 대해 언급하겠지만 '너는 엄하게 해, 나는 관대하게 할게' 식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양육자 간의 감정의 골도 깊어지고요.
3. 약속
세 번째 준비, 약속 알려주기와 약속 만들기는 손쉬운데 의외로 많은 가정이 건너뜁니다. 같이 약속을 만들고 지켜가면 아이의 수행능력을 높여줍니다. 작은 성공경험이 쌓여 자존감의 기반을 닦아주죠. 어딜 가거나 어떤 경험을 하기 앞서 서로의 기대와 염려를 나누고, 기대는 채우면서 염려는 잦아들게 만드는 약속을 같이 만들어 보세요.
저희는 얼마 전 갯벌체험을 다녀왔는데요. 가는 길에 이야기 나누다 보니 각자 기대하고 염려하는 게 이렇게나 달랐습니다.
어른1 : (기대) 바지락 칼국수를 끓여 먹을 수 있을까? (염려) 너무 재밌어서 다들 무리하면 어쩌지?
어른2 : (기대) 여러 바다 생물을 볼 수 있겠지? (염려) 물때 맞춰서 잘 들어갔다 나올 수 있을까?
어린이1 : (기대) 갯벌이 궁금해. (염려) 게를 잡았다가 물리면 어떡하지?
어린이2 : (기대) 맘껏 놀고 싶어. (염려) 많이 못 잡으면 어떡하지?
그래서 이런 약속을 정했어요.
1) 무리하지 않고 물때를 지킬 수 있게 알람을 맞춘다.
2) 게는 도구로 잡는다.
3) 잘 잡는 사람을 발견하면 물어본다.
덕분에 안심하고 재밌게 갯벌체험을 했습니다. 누구 하나 떼 부리거나 토라지지 않고요. 약속을 만드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많이 못 잡을까 봐 걱정이라니...) 물때나 바다생물 같은 지식도 자연스럽게 나눴어요.
아이가 자신의 기대와 염려, 약속을 술술 이야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양육자가 아이를 대화에 참여시키고 물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관심과 돌봄을 경험합니다. 양육자만 규칙을 만드는 게 아니라 아이가 함께 어른의 염려를 돌본다는 점에서 매우 뿌듯해합니다. 이렇게 만든 약속은 어른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보다 당연히 더 잘 지키고요.
아이가 아직 어리다면, 양육자가 이 대화를 아이 앞에서 나눠보세요. 어른들끼리 카톡으로 하지 마시고요. 약속을 아이와 공유하고 확인해 보세요. '이러저러하니까 이러저러해보자! 어때?'라고 말입니다. (어려도 YES/NO 대답은 할 수 있으니까요.) 이 과정이 모델링의 대상이며, 아이에 대한 존중입니다.
한 부모교육 강의 때 들은 이야기가 떠올라요. 26개월이 지나도록 말이 유창하지 않았던 한 아이가 어느
날 이런 문장을 외쳤다고요.
도대체 지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Where the hell are we going?)
아이는 2년이 넘도록 부모가 자신을 어디로 데려가는지, 무슨 일이 앞으로 펼쳐질지 안내받지 못했던 겁니다. 말문이 트이지 않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그래서 결국 포효하듯 말한 거죠.
육아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정보를 찾고, 애쓰는 동안 혹시 곁에 있는 아이와 단절되고 있진 않나요? 우선 아이에게 알려주고, 물어봐 주세요.
흔히 훈육하면 왼쪽 장면이 떠오르시죠. 국민 육아멘토 오은영 선생님이 알려주신 궁극의 훈육법, 아이를 다리 사이에 끼고 눈 마주치고 단호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하기. 우리가 자라면서 종아리나 손바닥을 맞았던 것에 비하면 그나마 비폭력적으로 바뀌었달까요.
하지만 저 방법은 이슈가 있어서 다루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을 때 효과를 발휘합니다.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에너지 소모가 엄청납니다. (애나 나나 땀범벅) 애초에 저런 형태의 훈육을 할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요.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오은영 선생님을 존경하고 많이 도움 받고 있습니다.)
훈육 장면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아이를 혼내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이야기하고 갈등 상황을 다루는 것으로요. 일종의 의사소통 과정이지요. 일이 터진 후에 야단치고 체벌하는 게 아니라 오른쪽 사진처럼 양육자가 아이에게 지켜야 하는 것을 알려주고, 같이 약속하고, 잘 지킬 수 있게 돕는다면요?
아이 입장에서 상상해 봅니다. 양육자가 나에 대한 이해 없이, 기준도 없으면서, 사전안내 없이 나를 상황에 던져놓고 제대로(!) 못한다고 꾸짖으면 얼마나 억울할까요! 답답하고 분할 겁니다. 아이가 통제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게 과연 아이만의 문제일까요?
오늘 드린 세 개의 제안은 아이를 잘 이해하고(=발달), 기준(=훈육관)을 세운 후에, 사전에 협의(=약속)하는 과정입니다. 이것들을 습관화하면 애초에 훈육을 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줄어듦을 느끼실 겁니다.
떼쓰는 아이를 어떻게 잘 어르고 달랠까 기대하셨다면 조금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사후대처보다는 예방에 가까우니까요.
비폭력육아로 훈육에 쏟던 에너지를 아이와의 연결로 옮겨보세요. 아주 구체적이면서 근거 있는 팁을 나눌게요. 다음 여정도 함께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