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말하기(Talk more) 이전에 주파수부터 맞춰주세요.
지난 글에서 비폭력대화는 태중에서부터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럼 아이가 태어난 뒤 어떻게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미국 시카고대학병원 소아외과 교수인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의 주장이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아이에게 언어자극을 주는 것뿐 아니라 아이를 존재로서 존중하고 양육자도 배려하는 방법이라서요.
그는 청각 장애 아동에게 듣는 능력을 돌려주는 인공와우 수술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물리적으로 청력이 돌아와도, 듣고 말하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르게 회복되는 현상을 보며 언어의 발달 환경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태어나서 3세까지 아이의 언어 발달에 주목했지요. 베티 하트와 토드 리즐리는 생애 초기 아이들에게 노출되는 단어의 수가 부모의 태도나 환경에 따라 많게는 3000만 개까지 차이 남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차이가 아이의 정서발달이나 인지능력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 지도요. 이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데이나 서스킨드 교수는 TMW(Thirty Million Words) 센터를 설립하여 아이들이 풍성한 언어 환경에서 자랄 수 있게 돕고 있으며, 이를 위해 '3T 대화 프로그램'을 제시합니다.
주파수 맞추기 (Tune-In)
더 말하기 (Talk more)
번갈아 하기 (Take turns)
세 개의 T로 이루어진 3T 대화법은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양육자가 애써 외향적이려고 노력하거나, 언어치료사나 할 수 있을 법한 기술을 익히고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씻기고, 먹이고, 재우고, 입히는 모든 일상 활동에서 할 수 있지요. 집, 마트, 식당, 공원, 서점. 모든 곳이 아이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흔히 언어자극이라고 하면 아이들에게 '이건 뭐야?', '사과, 말해 봐. 사! 과!' 같은 방식을 떠올리는데요. 3T 중에 주파수 맞추기(Tune-In)부터 시작하시길 권해요. 이는 비폭력대화에서 중요시하는 '현존'과 긴밀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언어자극을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수단과 방법으로 아이에게 말해주기 이전에 우선 아이와 지금 여기에 함께 머무는 거죠.
아이가 포인팅을 하기 전이라면 시선을 좇는 게 도움이 됩니다. 생애 초기 아이는 오직 지금, 여기에서 보이고 들리는 것에 머뭅니다. 양육자가 거기에 주파수를 맞추는 거죠. 마치 라디오 채널을 돌리듯이요. 같은 곳을 응시하며 관심을 기울여봅니다. 굳이 입 밖으로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히려 침묵이 도움이 되기도 해요. 주파수를 맞추는 상상 만으로도 몸이 따뜻해지네요.
다음 T는 더 말하기(Take more)입니다. 양육자의 말수가 아이의 발화량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아래 그래프를 보면 한눈에 보이지요. 진한 초록색은 무뚝뚝한 양육자, 연한 초록색은 수다스러운 양육자입니다.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요.
예상은 했지만 이 그래프를 보고 저는 다소 낙심했어요. 기본양육을 하는 와중에 두 아이에게 말까지 많이 건네야 한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지치던지요. 제겐 침묵이 휴식이라... 저를 돌보기 위해서 여유가 있을 때 말하기에 집중했습니다.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제 자신의 상태도 중요하니까요.
말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는 강박에 양육자가 읊조리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거나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과거나 미래 시제, 눈앞의 상황과 연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답니다. 시중에 더 말하기(Talk more)를 어떻게 하라는 정보는 많지요. 그중에서 제게 기억하기 쉽고 도움 됐던 팁이에요.
비폭력육아의 관점에서는 단순히 정보를 더 말하기보다 양육자의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해 주시길 권해요. 그러면서 양육자가 자기 연결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아이에게 모델링이 되니까요. 떼나 울음 대신 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걸 보고 배울 수 있도록요. 단, 주의해야 할 점(감정 떠넘기기)이 있는데, '느낌' 편에서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3T의 마지막 T는 번갈아 하기(Take turns)입니다. 아이가 활발하게 말하기 이전에도 옹알이를 반영한다던가 질문하고 조금 기다리는 식으로 턴을 만드는 것이 가능하답니다. 말문이 터진 이후에는 들은 내용에 살을 붙여 이야기해 주거나 적절한 질문(추궁하거나 '네/아니요'로 밖에 대답할 수 없는 닫힌 질문보다, 아이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열린 질문)을 해주어야 합니다.
턴의 현황과 중요성은 아래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생애초기 언어자극을 지원하는 LENA에서는 시간당 40 턴이 적절하다고 제안합니다. 막상 해보면 그렇게 어렵진 않지만 측정하긴 어렵죠. 특히나 저처럼 일하는 양육자들은 아이들이 기관에 가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고, 그나마도 등원준비나 씻고 먹는 필수 육아활동에 한정되기 쉬워요. 하루에 단 15분만 턴에 집중해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아이에겐 큰 기쁨이 되고 양육자 자신의 육아효능감도 높아집니다.
그림의 맨 왼쪽, 상호작용이 없는 상태를 '언어 고립'이라고 이름 붙였네요. 어떤 학자는 '완전한 침묵'이라고도 표현하는데요. 한 아이가 사람과, 세상의 여러 현상과, 언어에 연결되지 않았다고 상상해 볼까요? 두뇌발달이나 언어자극 이전에 얼마나 외롭고 답답할까요? 투명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도요.
3T에 하나를 더 해볼까요? 바로 Turn-Off입니다. 이 모든 상호작용을 가로막는 미디어의 영향으로부터 양육자가 의지적으로 벗어나는 것이죠. 이제 미디어를 우리 삶에서 빼놓고 생각할 수 없기에, 비폭력육아 브런치 북에도 한 꼭지 마련해 두었어요. 거기서 더 자세히 이야기 나눌게요.
단순히 더 말하기에만 집중하기보다 우선 주파수를 맞추고 주거니 받거니 하기. 이 방법으로 아이와 #연결되세요. 아이에게 이 세상을 #소개하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나갈 수 있게 #초대하세요.
*다음 주엔 '육아고민'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훈육'을 어떻게 비폭력적으로 할 수 있는지 다뤄보려고 해요. 벌써 귀가 쫑긋하시죠? 다음 주에 만나요~
*아래 자료를 참고하거나 언급했어요.
《The Early Catastrophe: The 30 Million Word Gap by Age 3》, Betty Hart and Todd R. Risley, 2003.
《Thirty Million Words: Building a Child's Brain)》, Dana Suskind, 2015
위 책은 '부모의 말, 아이의 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번역되며 육아대화의 부담이 오롯이 부모에게, 목적은 아이의 두뇌를 계발시켜 똑똑하게 키우는 것에 맞춰진 것 같아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