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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Jun 07. 2024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하는데 무슨 비폭력대화인가요?

아이와의 비폭력대화, 태어나기 전부터 가능합니다.

2022년, 비폭력대화 경험을 담은 책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요>가 세상에 나왔어요. 코로나 시국이 나아지면서 감사하게도 북토크나 강연을 통해 독자들을 만났어요. 그 자리에선 어김없이 가족대화나 육아대화에 대한 질문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도 반복되는, 하지만 잊히지 않는 질문이 있어요. 바로 '아이가 아직 말을 못 하는데 무슨 대화를 나누나요?'였어요.


맞아요. 아이에 따라 다르지만 자기 의사를 말로 밝히기까지 짧게는 1년 반, 길게는(=제 경우) 거의 3년까지 그저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눈치껏 놀아줘야 합니다. (말문이 터진 뒤의 어려움은 잠시 치워두시죠. 하하하) 남편과도 이 시간에 대해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걸린다고 하소연을 나누곤 했어요. 


이 질문은 아마도 '대화=말'로 이해해 온 버릇 때문 같아요. 실제 아이와의 대화는 아이가 말하기 이전부터 가능하답니다. 아니, 사실은 뱃속에서부터 가능해요. 이 그래프를 보면 단번에 이해되실 거예요.

아이가 뱃속에서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우선 심장이 생겨납니다. 초음파 기계 앞에서 우리의 눈물콧물을 빼는 바로 그 심장소리 말입니다. 그리고 맨 아래, 16주에 발달을 마치는 기관이 있는데요. 바로 '귀'입니다.


새로운 사실은 아니죠. 다들 아니까 클래식 음악을 듣고, 태담을 하잖아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가 듣고 있다는 걸 잊기 쉽습니다. 자궁 안에서 벌어지던 모든 일(먹고, 싸고, 안심시켜 주고)을 양육자가 손수 해줘야 하니까요. 당장 우는 소리, 눈앞의 똥, 귀여운 눈망울이 우리의 주의를 빼앗죠. 


하지만 이 시기 아이의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면 조금 마음가짐이 달라질 거예요. 아래 그림처럼 뉴런과 뉴런을 연결해 주는 시냅스가 발달하거든요. 생후 3년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다 심지어 중요도에 따라 가지치기까지 진행됩니다. 

시냅스를 만들고 선별하는 자원과 기준은 뭘까요? 뱃속에서는 물론이고 태어나서도 한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움직일 수 없고, 글을 모르고, 심지어는 눈도 잘 안 보이는데 말입니다. 


바로 '양육자의 말'입니다. 요즘 교육업체들이 생애초기 언어자극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술적인 면에 치우쳐져 습니다. 언어치료사나 할 수 있을 법한 전문적인 기법도 많고요. 

저는 이 시기에 양육자가 할 수 있는 비폭력육아대화법을 제안합니다. 바로 '존재로 인정해 주기'인데요. 세상에 나온 이 친구가, 여러 모로 미성숙함에도 불구하고 거기 있다! 는 걸 알아주는 거예요.


미국의 언어인류학자 셜리 브라이스 히스(Shirley Brice Heath)는 부모들이 (아직 말을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을 잠재적인 대화 상대로 대하는지에 대해 가정마다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편의상 A부모와 B부모라고 할게요.

A부모의 가정에서는 어른들이 아이에 ‘대해서(about)’는 이야기하지만 아이’에게(to)’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이는 대화의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지 않고, 그저 다양한 의사소통환경에서 교훈을 받아들임으로써 정보를 아는 사람이 되리라 보는 거죠.

반면 B부모의 가정은 아이에게 질문하고, 상호작용하는 대화를 생애초기부터 나눕니다. 아이가 자신의 필요를 전달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아이가 의사소통 파트너가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세상에 대해 배우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육아 일상에 적용해 볼까요? B부모는 아이가 마치 대화에 참여하는 것처럼 아이와 대화합니다.

맛은 좀 어때?
이거 먹고 나면 낮잠 자자.

아이는 당장 답을 할 순 없지만 자신의 현재 상황과 가까운 미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눈을 마주치며 그 말을 하는 부모를 바라보며 생활합니다. 

아빠 맞아. 라면 먹고 자서 얼굴이 좀 부었어. 엉덩이 좀 들어줘. 얼른 갈고 다시 자자.

반면 A부모는 별말 없이 아이를 들어 옮기고, 바지를 벗기며, 사진을 찍고, 기저귀를 갑니다. 어른들끼리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얘, 이거 봐. 너무 귀엽지?", "하아, 얘는 날 얼마나 고생시키려고 이렇게 까탈스럽지?” 


아이들은 현시점에서는 대답할 수 없지만, 대답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어른들의 대화상대인지 아닌지 판이하게 다르게 인식합니다. 이미 수년간 일상생활에서 대화상대로 존중받은 아이와, 유효한 대화상대는 아니지만 그저 귀여운 투명인간 취급을 받은 아이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지할지는 예상하는 그대로입니다.


흔히 위스퍼링이라 불리는, 상황설명은 아이의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가 아이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면 간단해요. 기저귀를 갈기 전 '찝찝하지? 기저귀 갈아줄게. 이제 엄마가 바지를 벗길 거야’라고 말 걸고 바지를 벗기는 양육자(B부모 스타일)와, 놀고 있는데 덥석 나를 들어 올려 기저귀 갈이대에 눕히고 갑자기 바지를 확 잡아당기는 양육자(A부모 스타일) 중에 누가 더 함께 있기에 편안할까요.


미국의 사회학자 아네트 라루(Annette Larea)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B부모와 같은 스타일로 양육된 아이는 말을 하게 된 후에도, 언어표현 자체를 즐기며 본질적인 즐거움을 부여한다고 해요. 단어의 뜻과 유의어에 대해 토론하고, 부모는 훈육의 핵심 메커니즘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태도가 때로는 협상과 징징거림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이는 아이가 성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언어를 통해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또한 많은 어휘를 습득하고 대화에 능숙하게 이끌지요.


반면 A부모와 같은 스타일로 양육된 아이는 말을 하게 된 후에도 언어를 기능적으로 사용한다고 합니다. 훨씬 적은 수의 단어를 사용하고, 부모도 아이와의 협의나 수평적인 대화보다는 훈육이라는 미명아래 지시하고 명령하며, 그에 불복할 경우 언어적 신체적 처벌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말대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징징거림도 드물었다고요. 

언어적 상호작용은 말하기 뿐 아니라 읽기 기술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두 다른 스타일의 아이들은 교육기관에 간 후에 더욱 격차가 벌어집니다. 공부뿐 아니라 사회적 기술로서의 협상과 자존감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겠지요.


힘든 육아 중에 어떻게 하냐고요? 24시간 계속 대화하라는 건 아닙니다. 제 경우엔 아이들을 코로나 시기에 만났어요. 외출이 어렵고 식사를 지어먹기 힘들 때가 많아서 배달음식을 시키곤 했는데요. 그때 검색하고 메뉴를 상의할 때 아이들에게 한 마디씩 건넸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엄마아빠가 이제 점심 먹으려고 메뉴 상의 중이야.
휴대전화로 주문하면 배달하는 분들이 갖다 주실 거란다.
나중에 너희가 커서 같이 탕수육 사이즈를 상의하는 날이 오겠지?

아이의 존재를 인지하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그때부터 말을 걸어도 됩니다. 아니, 걸어야 합니다. 이건 다정하고 예쁘게 말하거나(ex : 어머나~ 우리 oo 일어났어어?), 언어발달을 위해 애쓰거나(ex :  이건 바나나고, 이건 사과야 사과!), 구연동화하듯이 외향적으로 말하는 것(ex : 아이코 우리 oo가 발로 뻥! 찼네?) 같은 말투나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프롤로그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비폭력'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비폭력육아는 양육자가 아이를 존재로 인정하고, 대화상대로 받아들여 말을 거는데서 시작됩니다. 비폭력대화를 배우며 '내가 당신을 봅니다(I SEE YOU)'라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상대가 내 앞에 있음을 의식하고 알아주는 과정이었어요. 양육자는 아이에게 그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최초이자, 최후의 1인입니다. 어쩌면 이게 우리가 해야 하는 전부 인 지도요.


*다음 글은 생애초기 3년 동안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육아대화법에 대해 다루려고해요. 그저 아이를 많은 말에 노출시키는 언어자극이 아니라, 양육자도 아이도 상호작용하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으로서의 육아대화법요. 기대해주세요~


*아래 글들을 참고했어요.

셜리 브라이스 히스(Shirley Brice Heath), <Ways with words: Language, life, and work in communities and classrooms/말로 가는 길: 언어, 삶, 그리고 공동체와 교실에서의 작업> p75, 86,119-129

아네트 라루(Annette Larea), <Unequal Childhoods: Class, Race, and Family Life./불평등한 어린 시절 : 부모의 사회적 지위와 불평등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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