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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린언니 Jul 05. 2024

정말 공격적인 아이인가요?

[관찰] 섣불리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기

말 오후, 둘이 잘 노는 것 같더니 한 아이가 달려옵니다.

엄마! 사랑이가 나 때렸어~ (엉엉엉)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어요?


이번 편부터는 비폭력대화의 4요소인 관찰-느낌-욕구-부탁을 육아와 접목시켜 봅니다.


첫 번째 요소 관찰(Observation). 낯설거나 어려운 단어가 아니죠? 맞아요. 있는 그대로를 지켜보라는 뜻입니다. 관찰의 내용은 당사자 혹은 제삼자도 동의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이 됩니다. 녹음기나 카메라를 떠올려보세요. 한 말을 녹음해서 그대로 다시 틀거나 녹화한 화면을 보듯이, 있는 그대로에 집중하는 것이 바로 관찰입니다.


근데 이게 대화랑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흔히 우리는 '관찰'이 아닌 평가와 판단으로 대화를 시작하는데 익숙합니다. 평가와 판단은 각자의 기준에 따른 해석이죠. 기준은 경험이나 기대, 신념, 어디에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좌지우지됩니다. 대화의 당사자 혹은 제삼자는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평가나 판단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이유는, 일종의 자동반응입니다. 상대가 적인지 내 편인지, 안전한지 위험한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죠. 뇌과학자들은 원시시대 인간이 생존을 위해 반응하던 방식이라고 설명합니다. 사회가 커지고, 빨라져서 요즘은 '빠른 판단'이 더욱 중요해진 것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대화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습니다. 평가와 판단으로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 납득하기 어려워 갈등을 빚기 마련이거든요. 회의 중에 '그건 부장님 생각이고요.' 생각하며 유체이탈해 본 적 있으시죠?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아이도 '그건 엄마아빠 생각이고요 (눼에~)' 하면서 딴짓을 하곤 합니다. 평가와 판단은 이렇게 대화 당사자들을 단절시키고 소외되게 만듭니다.


그럼 한 번 해볼까요? 보이는 대로 보고, 들리는 대로 듣는 게 뭐 그리 어렵단 말입니까. 땀 뻘뻘 흘려가며 거실 치워놓고 설거지 잠깐 하다 고개를 드니 이런 광경이 펼쳐집니다.

보이는 대로... 책이 여덟 권 펼쳐져 있고 (여기까진 선방) 나무블록은 왜 항상 엎어서 노는 거야? (안 놀 거면 다시 담아놓아야지!), 종이컵이랑 종이블록은 아까 내가 다 정리해 놨는데 언제 또? (부글부글) 이 녀석들아! 거실이 엉망진창이야! 우리 집에선 나만 맨날 치우는 사람이니? (분노와 원망, 비난)


엉망진창이라는 평가와 판단 끝에 남는 것은 '우리 애들은 정리정돈을 안 해'와 '육아는 지긋지긋해'라는 감정 소모뿐입니다. (이럴 때 필요한 ‘자기 공감’도 차차 다루겠습니다.)


첫 관찰에 머물러 볼게요. 놀게 좀 둔 뒤에 '다 읽었니? 책이 8권 펼쳐져있네. (관찰) 각자 두 권씩 접어서 책장에 꽂아 줘.(구체적 부탁)'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네 권은 제가 꽂고요. 장난감은 차차 생각해 봅시다.)


순수한 관찰은 상대에 대한 존중과 정성을 의미합니다. 서로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를 표현할 수 있게 만듭니다. 심리치료에서 활용되는 기법이기도 합니다. 관찰을 통해 상황을 왜곡 없이 인지할 수 있으니까요.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볼게요. 주말 오후, 둘이 잘 노는 것 같더니 한 아이가 달려옵니다.

엄마! 사랑이가 나 때렸어~ (엉엉엉)

여러분은 어떻게 반응하시겠어요?


'뭐라고?' 하면서 사랑이를 혼내주러 달려가시나요?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사랑이가 놀다가 다른 아이 어깨를 건드려서 다툼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셨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이가 공격적인 성향은 아닌가 불현듯 불안하고 걱정됩니다. 사랑이가 믿음이를 때린 게 기정사실이고, 어서 그걸 징벌하겠다 생각하면 몸도 반응합니다. '너 이 녀석, 오늘 딱 걸렸어.' 하면서 표정이 울그락불그락, 발걸음에 힘이 실리죠.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때리는 행위'는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아이의 말만 듣고 판단하고 불안에 휩싸여 앞서 나가지 말자는 겁니다. 이 상황을 '관찰'로 시작하면 사랑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아, 믿음이가 '사랑이가 나 때렸어요'라고 말하는 걸 엄마가 들었어. 어떻게 된 거니?


믿음이가 한 말을 들은 대로 옮깁니다. 말투는 단호하지만 표정은 편안합니다. 때렸다는 말을 듣고 염려되는 한편, 사랑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존중과 호기심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앞뒤 없이 혼났으면 억울하고 분했을 사랑이도 표현할 기회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사랑이=공격적인 아이'라고 섣불리 단정 짓지 않을 수 있지요. (양육자가 선입견을 가지면 아이는 다 느낀답니다.)


양육자가 '관찰'로 대화를 시작하면, 아이도 배웁니다. 학교나 기관에서의 불필요한 갈등도 줄어듭니다. 선생님에게 '쟤가 하루종일 나 괴롭혀요. 나쁜 애예요. 혼내 주세요.'라고 말하는 아이와 '선생님, 저 친구가 제 장난감을 가져갔어요. 속상해요. 도와주세요.'라고 표현하는 아이의 기관생활이 같을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양육자가 선생님과 의사소통을 할 때도 '관찰'이 빛을 발합니다.


마지막으로 '빈도부사'를 쓸 때, 한번 더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빈도부사는 우리가 자주 쓰지만 누가 봐도 관찰이 아니거든요. 어질러진 거실을 보며 제가 생각했던 '다', '맨날', '항상' 같은 말들이요. 억울하고, 슬프고, 힘들 때 많이 쓰게 되지요. 대화상대가 '매번', '하루종일', '언제나', '또', '늘' 같은 단어를 써서 날 비난한다고 상상하면 어떠신가요? 반발심이 들고, 내 입장을 항변하고 싶어 상대의 이야기가 들리지 않습니다. 티격태격 말싸움으로 직행합니다. 결코 효과적이지 않아요.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고 들리는 그대로 되뇌어보세요. 그럴 때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보세요.


다음 편은 '느낌'을 다룹니다.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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