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촬영기사 혹은 열성팬
9월에 인생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아이유의 100번째 콘서트? 세계적인 협연자의 클래식 공연? 아뇨, 바로 어린이집 작은 음악회였어요. 만 4세 반 친구들의 무대가 뭐 그리 대단할까 싶지만 몇 달간 연습한 과정을 알기에 정말 기대되고 설렜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올망졸망 오르는 무대에서 잠시 시선을 돌려 관객을 살펴봤습니다. 객석은 부모와 조부모, 이모삼촌과 양육자의 친구들이 빼곡히 채우고 있었는데요. 아이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은 크게 세 종류로 갈렸습니다.
1. 심사위원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처럼 팔짱을 끼고 매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있더군요. 실제 마음이야 그렇지 않더라도 비언어적인 요소 때문에 저마저 긴장이 됐습니다. 내 아이가 틀리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티 나는 분도 있었고요. '똑바로 서야지! 선생님 보고! 허리 손!' 선생님 못지않게 지침을 주는 관객도 여기저기 보입니다. 아이가 실수 없이 무대를 마치게 돕고 싶은 거겠죠.
2. 촬영기사
시선이 휴대전화나 캠코더의 액정에 꽂혀 있는 관객도 적지 않았습니다. 잘 찍고 싶은 마음에 초점은 잘 맞는지, 흔들리진 않는지 아주 정성을 기울이더군요. 아이와 눈빛을 마주할 때는 '여기 좀 봐! 엄마/아빠 여기 있어!' 할 때 정도였어요. 이 순간을 잘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집니다.
3. 팬클럽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오는 팬클럽 모드의 관객입니다. 아이가 틀리든, 잘하든 상관없어요. 그저 무대에 올라있는 나의 스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직캠을 찍듯 한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으신가요? 어린 시절, 무대에 올랐을 때 어떤 시선을 주로 느끼셨나요? 나를 바라봐주는 관객이 어떠하냐에 따라 그 무대에 대한 기억이 달라지진 않았나요? 객석에서 무대 위를 바라볼 때 어떤 관객이 되어주고 있나요?
어른이 되어서도 우리는 무대에 오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위해 실제로 사람들 앞에 서기도 하고, 이렇게 글을 쓸 때도 저는 무대에 오른 것과 비슷한 기분이 들어요. 누군가는 평가하고 판단할 테고요. 누군가는 이 글을 하나의 피사체로 바라보며 필요한 정보를 얻어가겠지요. 그리고 누군가는 함께 머물며 응원과 지지를 보내줍니다.
무대에 선 사람이 '잘' 할 수 있게 지적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더 나아질 수 있는 원동력은 누군가와의 연결에서 비롯됩니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비난이나 판단 없이 당신과 그저 함께 머물러주는 장면을 상상해 보세요. 어떤 기분이 드나요? 'Connection before Correction.'이라는 표현도 떠오르네요.
오늘도 곁의 누군가가 무대에 오릅니다. 무언가를 제안하고,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도전하지요. 만약 그 사람에게 기운을 북돋워주고 싶다면 심사하거나, 증거를 남기는데 그치지 말고 그저 존재로 함께 해 주세요. 당신이 좀 더디고, 설사 실패한대도 여전히 곁에서 지지할 거라고...... 지금 바로 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