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협동조합 입문기 (5) - 집을 지은 2년 반 동안의 일
2016년 여름, '하우징쿱'을 알게 되었습니다. 벌써 2년 반이 지났네요. 협동조합이니, 하우징쿱이니 '사기 아닌가?' 알아보러 몇 번 모임에 갔다가 그해 말, 통근가능한 거리에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있다는 걸 알게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이었죠.
주소를 받아 수시로 찾아갔어요. 밤과 낮, 평일 아침-출근 시뮬레이션-과 주말, 비오는 날과 맑은 날. 틈만나면 들렀던 기억이 납니다. 경기도지만 서울과의 거리가 1km 남짓이고 지하철은 아니지만 철도로 도심과 연결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무엇보다 상암에서 차로 이동하는 몇 분 사이에 2-30년 전으로 타임워프하는 듯한 느낌이 좋았어요. 밤이면 어둡고 조용하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한편으론 걱정이 되었어요. 당시 겨울이었는데 얼마나 휑하고 추웠는지 몰라요. 주변에 창고나 컨테이너 건물이 많았고, 동네 어귀에 불법으로 밭을 경작하질 않나 쓰레기가 쌓여있질 않나 그닥 살고 싶은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사람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기 마련이죠. 그래서 현장 와보고 취소하신 분들도 계셨고요.
하지만 그런 요소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반영구적인 ‘입지’와 ‘지세(미신 같지만 제겐 중요)’는 나쁘지 않았어요.
물론! 이웃들과 느슨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모험을 해보고 싶었고요. 그래서 부지확인을 마친 후에 조합원 모임에 합류했어요. 하우징쿱의 이사장님과 서로의 생각을 확인하는 면담도 하고요. 한두번 본다고 사람을 알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유 없이 안심이 되었어요. 이제와 생각하니 꽤나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래, 하자!'
결정을 내리고나니, 빈 평면도가 메일함에 도착했어요. 처음해보는 설계라 어려웠지만 재밌었습니다. '일상을 돌아보며 공간에 구현하라'니! 퇴직하고 30년 뒤에나 가능하리라 여겼던 꿈인데......
공동주택 프로젝트의 최대 난관은 토지매입이라고합니다. 하지만 저는 토지매입이 완료되고 개별가구가 설계하는 단계에서 합류했기 때문에 '순식간에 집이 생기겠구나' 싶었습니다만, 제 팔자에 그런 행운은 없더군요.
문제는 설계가 아니었어요. 건축허가, 착공, 사용승인 등등 단계별로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어떤 분(!)이 멀쩡하던 진입로를 매수해서 일부러 훼손하고 도로사용허가서를 안 써준다던가... 어렵사리 그 문제를 해결하니 다시 한겨울이라 땅이 꽁꽁 얼어서 공사를 할 수 없다던가... 다 지어가는데 어떤 분이 땅은 팔아 놓고 이사를 가지 않으신다던가... 이만저만한 이유로 예상보다 1년 반 이상 지체되었으니까요.
이웃들과 모든 과정을 같이 겪었으니 망정이지 혼자서는 정말 울다 지쳐 쓰러졌을 겁니다. '이래서 집은 짓는 게 아니라고 하는구나' 하면서요,
시공사와 하우징쿱의 노하우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무엇보다 당사자인 이웃들 혹은 그 친척과 지인들이 애써주셨어요. 해당구청에 다같이 방문하고, 어려운 법조문은 법무사인 어느 이웃의 아드님이... 소방시설 관련된 문제는 시설관리공단 직원인 어떤 이웃이... 건축과 관련된 궁금증은 이 집을 짓는 시공사의 직원인 또다른 이웃(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걸 보고 스스로 조합원이 되어 들어오심)이...
저, 솔직히 문서에 꽝입니다. 공문서니 법조문이니 한글인데 도저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제게 하우징쿱을 권하신 지인도 이 사실을 알고 계셨어요. 그래서 '네가 개인적으로 집을 짓는 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으셨죠. 정말 현명한 조언이었다고 지난 2년 반 내내 감탄했습니다.
시간이 지체되는동안 나름의 배움도 있었어요. 다른 공동체주택 집들이에 가고, 해외 공동체 초청강연을 듣기도하고요. 이웃 중에서 재주꾼이 많아서 자체 인문학 강의를 하거나 역사탐방을 다녀오기도 했답니다.
다른 협동조합 조합원 분들과의 만남은 여러 모로 도움이 되었어요. 그 분들 댁이 쇼룸 역할을 해주었으니까요. 주방가구, 조명, 창호 등 하나하나 직접 살펴보고 여쭐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집'이라는 하드웨어 뿐 아니라 '협동조합과 삶'이라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눴어요. 들어오게 된 계기나 짓는 과정도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솔직하게 나눌 수 있었습니다. 다들 지으면서 각자의 어려움들을 조금씩 겪으셨더라고요. (*아래 푸른마을주택협동조합 공동체주택 답사기 : https://brunch.co.kr/@ioi/7)
집을 짓는 사이 일어난 사건사고들도 건축에 영향을 줬습니다. 우선 경주에서 지진이 나서 우리가 짓는 집의 내진설계에 대해 시공사에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필로티 구조가 겉보기엔 비슷해도 여러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고요. (필로티라고 무조건 위험한 게 아님) 의정부 오피스텔 등의 화재와 대진 매트리스 라돈 사태로 내외장재의 안전성에 대해 다시 짚고 넘어갔어요.
본격적으로 집짓기가 시작되자 이제 자재에 대한 무식함이 발목을 잡습니다. 저희 꽃보라마을은 설계는 물론 자재들도 다 제각각 결정할 수 있었거든요. 이 과정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어떤 것은 포기해야했고, 어떤 것은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죠.
벽지와 페인트의 장단점, 에덴 바이오 벽지가 뭔지... 합지와 실크벽지의 차이는 무엇인지... 타일은 또 어떻고요. 포세린 타일과 도기질 타일과 자기질 타일을 여러분은 구분할 수 있으신가요? 강마루와 강화마루와 원목마루의 차이는요? 소리잠이라는 장판이 있다는 걸 아셨어요? 미닫이와 여닫이와 미서기 문을 구분할 수 있는 분, 손!
이 역시 이웃들과 함께라서 수월했습니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업체를 방문해서 밴드에 올려주시고, 누군가는 하우징페어 등의 박람회에 다녀와서 정보를 공유했습니다. 이웃들 대부분이 저보다 살림과 인생 경험이 많은 분들이라서 모르는 건 물어가며 정했지요.
하우징쿱의 이사장님이 조명에 대해 강의해주신다거나 시공사 직원분이 밴드와 메일과 카톡과 전화로 계속 예상되는 문제점이나 추천대안을 알려주셨고요.
업체사장님들이 저희 모임에 직접 오시기도 했어요. 열여덟가구나 되니까요. 그만큼 직접 궁금한 걸 여쭤볼 기회가 많았어요. 일일이 제가 찾아다녀야 했다면 아마 진작에 나가 떨어졌을 겁니다.
저는 이래저래 할 줄 아는 게 없어 밥값을 못하는 기분이었어요. 공동체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뜻이 맞아보이는 이웃언니들에게 제안했습니다.
저... 혹시 이웃들을 인터뷰해보고 싶은데 같이 하지 않으실래요?
저희 가족과 이웃 자매님까지 4명이 한 팀이 되었습니다. 저는 전체회의 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이웃들이 흔쾌히 승낙해주셨죠. 그래서 올해 2월부터 모임 전후로 짬짬이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결과물은 조합원들만 가입한 밴드에 올려서 각자 편할 때 들으실 수 있게 했고요.
집이 얼추 다 지어지고 본격적으로 이사를 준비하면서도 서로 도울 일이 많았어요. 핫딜에 능한 이웃언니는 공용공간의 공기청정기를 직구하고, 커튼이며 인터넷은 단체로 계약하니 할인도 받구요. 제가 회사일로 못 가볼 땐 시간되는 이웃이 대신 일을 처리해주기도 하고요. 이사업체와 베이킹아웃 업체도 이웃분이 알아봐 준 곳으로 해결! 베이킹아웃 때문에 1박 2일 집을 비워야하는 한 이웃은 호텔 대신 옆집에서 하룻밤을 지냈다고 하네요.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를 같이 대처하니, 한결 손쉽고 안심이 됩니다. '이웃'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입주 준비단계에서부터 조금씩 실감하고 있어요.
물론 어려움도 있어요. 끊임없이 생기는 문제를 해결해야하고, 그러다보면 서로의 이익이 부딪히기도하니까요. 언성이 높아지기도하고, 때론 동별로, 때론 층별로, 때론 세대별로 의견이 분분합니다. 지난 2년 반동안 휴가철이나 연말을 제외하면 거의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했어요. 매번 모임에 나갈 순 없으니 밴드나 전화를 통해서도 수시로 협의하고요. 모임마다 다른 주제와 이야기거리가 있었으니 그만큼 갈등거리가 많았을 거라는 걸 상상하실 수 있겠죠?
요즘도 이 문제들에 대해 계속 이야기 중이에요
- 에어컨 실외기 이동
- 택배기사 님들에게 공통현관 비밀번호를 알려드리냐마냐
- 공용공간인 하니홀을 어떻게 사용할까
- 건물 주변의 무단주차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
- 마을에 인사드리는 잔치는 언제쯤 어떻게 할까
앞으로도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반대로 혼자이고 싶을 때는 존중해야겠지요. (나중에 인터뷰 편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지만 제가 이 협동조합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 이유는 ‘너무 끈끈하지 않은 공동체’를 지향하기 때문) 서로 적절히 거절하고, 잘 부탁하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할 거고요.
이미 너댓가구가 입주했습니다. 몇 집이 저녁 모임을 가지며 인증샷을 올립니다. 11살 소년과 환갑이 넘으신 아랫집 이웃과 옆동 누나들이 마주앉아 수다떠는 자리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흔치는 않죠.
늦은 귀갓길, 뒤에서 중년남성이 따라와도 이웃임을 확인하고 안심할 수 있다면. 또래들끼리 집을 오가며 맘 놓고 놀 수 있다면. 급한 일이 생기면 잠시 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예전 마을 공동체 같은 진짜 이웃이 있다면 삶은 어떻게 바뀔까요?
저도 얼른 합류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