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방에 살던 프루스트와의 대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by 무쌍

겨울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줄만 알았다.

비염이란 걸 알게 된 후 요령이 생기긴 했지만, 겨울이란 계절은 다른 계절로 도망가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다. 릴 땐 천식처럼 기침도 심했지만 이젠 콧물만 주룩 흐르기만 한다. 울이면 나는 방한용품처럼 휴지나 손수건 늘 들고 다녀야 했다.

코가 막혀 답답한데, 멈추지 않고 쏟아지는 콧물을 닦느라, 뭐든 집중할 수 없으니 더 답답다. 책상에 휴지와 손수건이 수북하게 쌓이는 걸 보면 대단한 중병에 걸린 듯 불쌍해졌다. 하루 휴지 한 통을 다 쓰면서 학창 시절을 보낼 땐 신세가 처량하기도 했다. 양쪽 코가 꽉 막 버릴 땐, 머리가 띵해지고장이 터질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계절에만 찾아오는 편함은 편히 숨 쉬는 일이 얼마나 건강하고 행복한 일인지 깨닫게 한다. 추위도 힘들지만 밀폐된 실내의 미세먼지는 나를 더 괴롭혔다. 여전히 나의 겨울은 체력적으로 한계를 체험하듯 고개를 넘는 날 대부분이다.


평생을 만성 천식으로 고생한 마르셀 프루스트는 연의 향기, 인공적인 향수, 종 먼지를 차단하며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극한 엄마의 사랑으로 보호되긴 했지만, 작품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는 더 예민하고 치열한 문학의 세계에서도 살아야 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엔 그의 예리한 후각과 세밀한 기억력으로 시골의 풍경과 대 저택의 정원에 가꿔진 꽃과 나무들까지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천식이 심한 그에겐 치명적이라 철저하게 차단시켜야 하지만, 작품에선 자연의 향기와 모습을 어떻게 써 내려갔는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꽃가루만 맡아도 발작을 일으키는 그가 그나마 덜 아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통해 모든 것을 예전으로 돌려놓려는 듯, 그의 잃어버린 시간은 충분히 구구절절했다.


그의 책은 참 묵직하기도 하다. 문장의 끝을 알 수 없으니 읽기 시작하면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특히 두 번째 스완의 사랑 편엔 굉장히 탄탄하게 묘사된 인물의 세밀한 글들이 많다. 인물마다 성격, 외모, 마음이나 속사정까지 들여다 보이는 안경을 쓴 듯, 그의 독특하고 미끄러지듯 부드러운 문장들로 쓰여 있다.


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리즈 중 2권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2권만 여러 번 읽었다. 사랑하는 여인 스완과 꽃에 대한 이야기가 많기도 하지만, 예술가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꽃과 인물 묘사만 골라 읽거나, 내면의 독백을 끝도 없이 써 내려간 부분만을 찾아 읽었다. 끊어질 듯 연결된 거미줄처럼 문장은 한 페이지를 읽는데 마침표가 하나도 없거나, 한두 개 정도 있을 정도로 길다.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회상하며 써 내려간 글이라 마침표도 필요 없었는지 모르겠다. 만날 수 없지만 에게 묻고 싶었다.


"저도 내 어린 시절을 쓰고 싶어요. 저에겐 무서운 기억과 지금은 볼 수 없는 풍경이 혼돈되어 있거든요. 잃어버린 유년시절과의 재회가 그립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해요. 만약 내가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다면 무엇을 얻게 될까요?"

백 년 전 세상을 떠난 프루스트를 데려올 수는 없지만, 그의 책에서 힌트를 찾았다.

우리가 알았던 장소들은 단지 우리가 편의상 배치한 공간의 세계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 장소들은 당시 우리 삶을 이루었던 여러 인접한 인상들 가운데 가느다란 한 편린에 지나지 않았다. 어떤 이미지에 대한 추억은 어느 한순간에 대한 그리움일 뿐이다. 아! 집도 도로도 거리도 세월만큼이나 덧없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도 '그 한순간에 대한 그리움'이 있던 장소가 과거에 있기 때문이었나 보다. 어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하던 어린아이였지만, 귤나무 아래 각자 생긴 대로 알록달록 핀 야생화 틈을 맘껏 뛰어놀았던 시간이 그리웠다. 덧없지만 그 순간이 내 기억 밖으로 나와 글로 완성된다면 그것 만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묻고 싶었다.


"내면의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그 아이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라고 다시 물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기를 꿈꾸었지만, 나중에는 여인의 마음을 가진다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사랑한다고 여기기에 충분해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의 집 쪽으로

그와 스완의 사랑은 현실에선 덧없이 끝나 버렸지만, 작품 안 그의 내면에서 표현되고 또 변해갔다. 완성된 작품에서 충분히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책에 나온 어린 프루스트를 상상해 봤다. 사교파티가 일상인 엄마를 기다리던 어린아이 말이다. 어린 프루스트가 잠들기 전까지 곁에서 엄마가 사랑해 주길 기다렸던 것처럼, 어린 시절 나도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동안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일지도 모르겠다. 과거에 살던 그 아이는 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엄마가 없는 두려움을 견뎌야 했지만, 곁에서 안아주던 머니를 기억하고 있었다.


무서워서 꺼내보기 싫었지만 가장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어린 시절에 나를 안아주던 사람들을 모두 기억해 낼 수 있다면, 외롭지만은 않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늘진 어린 시절을 감출 필요가 없다면 내면의 공허함을 없애고 새롭게 성장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귀엽고 밝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육아는 오히려 어린 시절의 외로움이 더 생생하게 떠오르게 했다. 그래서일까?

오직 그 아이를 위해서 그때의 기억 중에 어둡고 차가운 것이 아닌, 따뜻하고 포근한 존재들을 찾아내고 싶다.

신의 재를 자책하며 숨기만 했던 그 아이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글을 읽다 보니 가련한 그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졌다. 세상에 막 태어난 아이의 머리 위로 별들이 축복하며 반짝거렸다고 시작하는 이야기는 이제 막 첫 문장을 찾게 되었다.




1. 문학에서 나를 묻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르셀 프루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