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테뉴 성에 살던 성주와의 대화

수상록

by 무쌍

난 겁이 많다.

용기가 생겨야 글을 쓸 수 있는 줄 알았다. 시작 버튼이 어디 있는지 알서도 못 본척하며, 글쓰기를 뤄야 하는 유를 노트에 적었다. 핑계는 많았다. 집안일, 아픈 갑상선, 두 아이의 육아, 미숙한 작문실력, 글감 부족, 부족한 시간, 평가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손으로 갈겨쓴 핑계 목록은 노트 하나론 부족한지, 노트는 계속 늘어갔다. 다 쓴 노트가 빈 책장을 꽉 채웠지만 돌덩이처럼 말이 없었다.

대체 나는 무얼 쓰고 있었을까?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잠깐 스쳐가는 바람처럼 지나가버렸고, 노트가 쌓여갈수록 핑계가 아닌 다른 것이 글이 되었다. 빙글빙글 주변을 돌며 글자 하나하나가 모두 한 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내가 쓰고 싶은 건 나에 관한 것이었다. 계속해서 내가 누군지 글로 표현하고 남기고 싶은 욕구를 노트에다 완곡하게 풀어쓰고 있었다.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은 쓰는 것 밖에 없다고 믿게 되었다. 나는 나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몰랐던 것 같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좋았지만 늘 주변에 휘둘리는 삶이 고단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어서야 안심이 되었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나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시키는 대로 살던 나에게 익숙해있었다. 그래서일까? 용기는 그냥 솟아나지 않았다. 아니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늘 자신감이 없었다.

'누가 나를 궁금해할까?'

'나에 대해 쓰면 누가 읽어주기나 할까?'

이 질문에 답을 낼 수 있어야 글을 쓰는 이유가 설명 될 듯싶었다. 자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것밖에 할 수 없잖아.'

'쓰는 것 말고 하고 싶지 않아'


소리는 남들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나에게는 가장 크게 들렸다. 날마다 심장을 두드리듯 울먹이기도 하고, 잠깐 지나는 아이들의 고함처럼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만 보면 그만이지'라는 합리화를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쓸 수밖에 없었다.



평소 글 쓰는 시간은 대중없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찾아서 글쓰기에만 바치고 싶지만, 아무 때나 자투리 시간이 나의 작업 시간이다. 그리고 그의 책을 만지작거린다. 내가 갖고 있는 책 중에 가장 두껍고 무거운 책 <몽테뉴의 수상록>이다. 영어사전처럼 어디든 펼치면 낯선 단어가 있지만 또 아는 문장도 있다. 아무 때나 손을 뻗어 들추는 오래된 책이지만, 책을 볼 때마다 새로운 문장들이 날 집중시킨다.


몽테뉴가 <수상록;Essai>를 쓴 건 아버지에게 몽테뉴 성을 물려받고 성에 있는 서재를 독차지한 후였다. 하지만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아야 할 것은 또 있었다.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도 담석증 환자였다. 그 당시 치료법은 없었으니 사실상 인생의 끝자락에서 시작한 글쓰기였다.


몽테뉴의 서재를 상상해 보았다. 아버지가 떠난 뒤 몽테뉴성의 주인으로 아버지의 서재에 들어갔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홀로 남겨진 그를 떠올려보았다. 아마도 그는 빽빽하게 쌓인 책들이 말을 거는 통에 서재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 것 같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였다고 해도 그랬을 것이다. 직접 그에게 물어볼 수 없지만 수상록을 남기는 동안 그가 서재를 벗어나지 않았다는 기록은 남아 있다.


문득 몽테뉴처럼 내게도 큰 성과 돈, 시간이 한꺼번에 주어지면 어떨까? 그에게 묻고 싶었다.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인생이 좋아요. 뭔가 내 능력을 확인하는 것 같고, 그들이 즐거워하면 나도 행복한 기분이 들거든요. 하지만 진짜 나를 감추고 있는 내가 측은하기도 해요. 전 태어날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초록 숲의 공기처럼 느껴져요. 막혔던 코가 뚫려 숨통이 트이고, 글을 쓰다 보면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아요. 신은 어떻게 해서 글을 쓰게 된 건가요?"


남을 위해서 실컷 살아 보았으니, 인생 말기에는 자기를 위해서 살아보자.
우리를 다른 데 매이게 하고 자신과 멀어지게 하는 가혹한 속박에서 벗어나자. 이제부터는 이것저것 즐겨 보며, 무엇보다도 자신 외에는 위하지 말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자기 자신으로 있을 줄 아는 일이다.
그대와 그대 자신만으로 족하다.
그대가 어떻게 그대 자신에게 말해야 할 것인 가를 찾으라.
-몽테뉴의 <수상록>

몽테뉴가 서문에도 밝힌 바 있다.

내가 묘사하는 것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이 바로 내 책의 재료이다.
-<수상록 서문>


글을 쓰다가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가 남긴 <몽테뉴 수상록>을 펼쳤다. 그처럼 나의 아버지가 큰 부자도 아니었지만,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다. 사회적으로 이룬 것도 없지만 그래도 그는 나를 지지해 주는 것 만 같았다.
그리고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책은 펼쳐진 대로 금방 빠져들었다. 찾아갈 때마다 있는 대로 대답을 해주는 친절하지만 말이 많은 아저씨 같았다. 글의 재료가 '나'라는 그의 대답처럼 나도 흉내 내듯 그를 따라 해보고 싶었다.


사실 몽테뉴는 아버지에게 몽테뉴 성과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유전적인 질병도 물려받아야 했다. 담석증으로 죽을 때까지 고생했지만, 다행히 그의 책은 인기가 많았다. 그는 몽테뉴 성탑에서 3편에 이르는 수상록은 생전에 모두 완성했다. 자신의 글을 사랑해 주는 독자들이 있었고, 그 성원에 마지막까지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었다. 그가 부러운 대목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과 큰 성이 아니라 그가 쓴 자신에 대한 책이었다.




내 삶은 모두 집안에 있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고 회사를 떠나고 나니 명함은 없어졌다. 대신 결혼한 나와 아이의 엄마 그리고 글을 쓰고 있는 나 사이에서 갈팡질팡 소모전으로 녹초가 된다.
'글쓰기'를 너무 사랑하지만 하루 종일 누리진 못했다. 그나마 정해진 원고 마감이 없으니 아무 때나 유희처럼 즐기기도 하고, 수양을 하듯 마음을 잡고 쓰기도 한다. 늘 일상의 작고 고요한 틈을 찾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에게 다시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지치지 않고 현실 속의 나와 글 쓰는 나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까요?"

일은 떠맡아도 그 일을 내 몸에 합체시키지는 않는다. 일을 보살펴 주기는 한다. 그러나 절대로 열중하지 않는다. 나는 일을 쳐다보기는 하지만 끌어안지 않는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주 조용하게 하며 그다지 많이 바라지도 않는다. 미끄러져 가게 두어야 한다.
- 몽테뉴의 <수상록>

그가 맞았다. 모든 것을 다 완벽하게 해낼 수 없었다. 강박에서 벗어나 나를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마음을 다하지만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글쓰기가 하루아침에 나아지지 않는 것도 괜찮았다. 그래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쓰며 사는 삶은 무대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삶에서 내려와 홀로 남겨진 방안에 '나'를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쓰며 무대에서 내려온 기분을 즐기는 새로운 나를 만났다.


글을 쓰는데 용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삶을 은퇴하기 위한 용기였다. 그건 바로 글쓰기 전에 살아왔던 이전의 삶을 은퇴한다는 뜻이었다. 테뉴가 '나'라는 자신을 글로 쓰기 위해 은퇴한 이유도 그러했다. 무엇을 하건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선택으로 인한 결과가 궁금하고 불안하건 당연한 것이었다. 겁이 났지만 시작하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궁금해하지는 않겠지만, 나 자신에 관한 글을 써도 된다고 그가 귀띔해 주는 듯했다.


'엄마, 누가 엄마 글을 읽기나 해?'

맞다. 몽테뉴가 아닌데 누가 내 에세이를 읽겠는가.

바짝 쫄아 세상밖으로 나가려니 무섭기만 했다. 그래서 다시 몽테뉴의 책을 펼쳤다. 그가 시키는 대로 살아보려고 말이다.

일단 은퇴식부터 했다. 글쓰기 전 내 삶은 이젠 은퇴한 과거가 되어 버렸다.






2. 문학에서 나를 묻다 -몽테뉴 성에 살던 성주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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