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과 파리 밑바닥에 살던 조지 오웰과의 대화

나는 왜 쓰는가

by 무쌍

불편한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익숙했다.

남몰래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하는 듯하고 싶은 말을 노트를 채우는 일을 시작했다. 일기장으로 시작했지만, 곧 가족들의 눈에 띄지 않는 허름한 겉표지의 공책으로 바뀌었다.


하기 싫은 일을 붙들고 있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에 유난 떠는 것이 즐거웠다. 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두 담고 있다.

먼저 텍스트가 꽉 들어차 있다. 글씨 같은 궁서체 인쇄물을 좋아했는데, 작은 글씨로 된 책이 더 매력적이었다. 등장인물을 포함한 작가, 새로운 장소, 처음 보는 사진과 그림, 내밀한 은유, 편집된 단정한 문장 같은 것들 사랑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자유로운 방랑병은 책 읽기가 절반은 잠잠하게 만들어 주었다.


답답하고 대책이 떠오르지 않는 질문에 답을 구하고 싶던 나를 만족시켜주는 건 바로 문학이었다. 작가들의 책을 펼치는 순간 신기루처럼 다른 세상으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책을 보느라 보낸 시간은 아깝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던 시절엔 책을 보는 건 귀찮은 일들을 안 해도 되는 핑계를 제공해 주었다. 히 좋아하는 물건이 없던 나였지만 책은 수집 욕구도 느끼게 했다. 작고 네모난 책은 어디에 두어도 뿌듯했지만, 권수가 많아지면 감당이 안 됐다.


그래서 나에겐 도서관이 믿을 만한 곳이다.

두 아이를 태우고 다녔던 유모차는 여러 가지로 유용했다. 세월이 지나고 아이는 더 이상 타지 않은 유모차를 끌고 도서관엘 갔다. 가족카드를 포함해서 스무 권이 넘는 책을 빌려와야 했기 때문이다. 대출권수가 점점 늘어나자 책을 읽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도서관에선 모든 것이 용납되었다. 대출 기간을 연장하면서 붙들고 있던 책도 있었고, 한 챕터를 보고는 그냥 반납하기도 했다. 인기 도서도 예약해 두고 순서를 기다리면 되었다. 아무리 대출자가 많아도 한 달 이내면 내 차례가 왔다.


한 달에 두 번 간 도서가 도착할 때를 맞춰가면, 새책에서 풍기는 냄새가 가슴 뛰게 했다. 책을 사서 읽을 때 보다 도서관에서 욕심 껏 잔뜩 빌려오는 책은 내게 더 자신감을 주었다. 어쩌면 책을 읽는 법을 터득하는 일도 연습량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책을 직접 구매한다는 것은 좀 다르다.

당장 읽기도 하지만 미래에 나를 위한 소비였다. '만약에'라는 단서를 달고 구입 목록을 정했다. 그 책은 충동구매라기 보단 오래 살펴보고 신중하게 결정되었다. 하지만 매번 선택에 만족하지는 못했다. 막상 읽고 난 후 나와 어울리지 않는 책이란 기분이 들고 후회가 되었다. 다시 펼쳐보기 싫어진 책은 중고책으로 팔아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소중하게 책꽂이에 보관하고 싶었던 마음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전히 나는 책을 통한 즐거움보다 더 나은 오락거리는 찾지 못했다.

무작정 읽는 것이 좋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읽지는 않는다. 더 좋아하는 일이 생기니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미 글쓰기에 푹 빠져 있다.




조지 오웰의 산문집을 보면 책에 대한 그의 독특한 계산법이 나온다. 기자였던 조지 오웰은 그 당시 책 가격이 비싸서 책 소비량이 줄어든다는 이유를 찾고 싶어 했다. 자신이 소장한 책에 구매한 이력, 출처를 따져 소장 권수를 계산했고, 읽는 시간을 계산했다. 그가 사는 시대의 영국의 화폐가치를 지금과 비교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가 낸 결론은 현재 상황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가 산출해 낸 계산으론 영화 한 편을 보는 값이나 책을 한 권 사서 보는 값이 비슷했다. 새책일 경우가 그렇고 헌책을 사서 보면 3/1 정도 가격이면 되고, 공립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건 공짜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보는 소비량이 계속 줄어드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책 소비량이 지금까지 처럼 계속 적다면, 최소한 책을 사거나 빌리는 돈이 너무 비싸기 때문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보다 투견장이나 영화관, 술집에 가는 것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인정하자.
- <조지 오웰 산문선> 중에서

언젠가 내 책을 쓰고 싶다고 했더니, 이미 책을 출간해본 누군가 그랬다.

" 책으로 돈 벌려고 하지 마세요. 책 쓰는 건 돈 안 돼요."

그래서일까? 대답을 한 그는 지금 책과 거리가 먼 사람이 되었다.


조지 오웰의 계산법으로도 지금 출판현실로 봐서도 책 판매 수익은 쉬운 수입은 아닌 듯하다. 그런데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일이 잠깐 빠졌다가 그만둘 취미가 아닌 것처럼,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들에겐 한평생을 두고두고 갖고 갈 유희라는 건 인정하고 싶다. 그들 중엔 작가가 되기도 하고, 수집가로 장서가가 되기도 하고, 충직한 독자가 되기도 할 테니까 말이다. 론 세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작가들도 많다. 조지 오웰이 말했듯이 책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해보기로 했다. 책이 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람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더 재미있는 쪽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기자이면서 소설가인 그는 편안한 경찰공무원을 그만두고 참전군인으로 서점 직원으로 작가가 되기 위한 밑바닥 생활을 스스로 택했다. 타깝게도 조지 오웰은 너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 나와 만난다면 친구가 되었을 나이였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 전 책을 좋아해요. 책을 보는 시간이 가장 즐거워요. 어느 날 책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자꾸만 왜 글을 쓰고 싶어 진 건지 모르겠어요.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요?"


내 질문에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에서 첫 번째 항목을 빌려오고 싶다.


'순전한 자기만족'이에요....
사람은 서른 언저리를 지나면 개인적 야심을 버리고 주로 타인을 위해 살거나 고역에 깔려 질식한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는 완고하고 재능이 뛰어난 소수가 존재하는데, 작가도 그 부류에 속한다.
<조지 오웰 산문집> 중에서


조지 오웰의 표현대로라면 '끝까지 자기로 살고 싶은 진지한 작가가 된다면 기자보다 허영심 많고 자기중심적이지만 돈에 대한 관심은 덜하다'라고 했다. 글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잊고 자기만족에 집중한다면 작가가 될 가능성이 높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모르고 자라왔다. 너무 빨리 어른 행세를 하고 지내서 인지 엄마가 되고는 나의 길을 아주 잃어버렸다. 길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책 한 권에 한 걸음씩 나아가는 듯했다. 종종 날개를 단 듯 더 멀리 점프해 날아가는 날도 있었다. 발을 헛디디면 넘어지기도 했지만, 한발 앞에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길게 놓여 있어서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질 일은 없었다.


읽고 싶은 책, 읽어야 할 책이 있다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빤히 바라보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있다는 건 내게도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란 믿음도 주었다.


많은 작가들이 책을 많이 읽다 보면 쓰고 싶어 진다고 했다. 그들이 말한 대로 읽다 보니, 뭔가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기가 만족할만한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내게 글쓰기란 아직 좋아하는 일에 더 가깝다. 쓰이지 않은 내 책은 나의 밑바닥에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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