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떠나 글쓰기 섬에서 만난 장 그르니에와 대화
섬
제주 섬, 그곳은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타지 사람들이 파도처럼 쉼 없이 몰려와 들썩이는 제주는 내가 좋은 곳에 살고 있구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섬, 제주는 섬이다.
학교에 입학하며, 중산간 마을을 떠나 바닷가 근처로 내려와 살았다. 귤나무가 둘러싼 우리 집이 그리웠지만, 바다와 가까운 도시의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다. 낯선 사람들에게 눈에 띄는 것이 불편했지만 도시의 길은 좁고 숨을 곳이 없었다.
서점이 하나, 빵집도 하나 시장도 하나인 동네는 일가친척이나 어른들을 어디서든 만나야 했고, 집안 일도 소문처럼 빨리 퍼졌다. 바닷바람이 부는 동네에선 조용히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도시의 건물을 피해 숨을 곳은 바다였다. 하지만 바닷가 근처에 산다는 건 약간의 상실감을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었다. 땅과 바다가 만나는 곳엔 멈추지 않고 파도치며 시끄러웠고, 썰물이 되면 숭숭 구멍 난 현무암 돌이 걸어가는 발을 아프게 했다.
거품이 이는 파도에 눈이 간지러웠고, 짠 냄새가 진동하는 바닷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바다 위로 보이는 건 하늘과 닿은 바다뿐이었다. 어디로 가든 끝이 바다라는 건 내가 사는 곳이 섬이라는 걸 알려 주었다.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섬에 남던지, 섬 밖으로 떠나던지 둘 중 하나였다.
장 그르니에는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교수였는데 알베르 카뮈가 제자였고, 그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섬>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자주 인용하고 좋아하는 책이었다. '섬'이란 제목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책을 샀을 땐 글을 잘 쓰는 비법이라도 들어 있을지 모른다는 순진한 마음이었다.
잠시나마 '제주'라는 글자보다는 '섬'이라는 단어 뒤에서 고향에 온 기분을 달래는 기분을 느꼈다.
막상 책을 읽고 나니, 작문서도 아니었고, 그가 쓴 다른 책들이 더 궁금해졌다.
그의 책엔 나와 주변과의 사이에 무엇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지 자기 인식에 대한 깊은 시선이 있었다.
알베르 카뮈는 <섬>을 이렇게 설명했다.
내가 <섬>을 발견하던 무렵쯤에는 나도 글을 쓰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막연한 생각이 진정으로 나의 결심이 된 것은 그 책을 읽고 난 뒤였다.
우리들에게 단순하고 친숙한 경험들을 눈에 드러날 만큼 꾸미는 일이 없는 언어로 이야기한다. 그러고 나서 그는 우리들 자신이 스스로 좋은 대로 해석하도록 맡겨둔다.
- 알베르 카뮈 <섬에 부쳐서> 중
십 년 전에 책을 읽었을 땐 알베르 카뮈가 쓴 글 '섬에 부쳐서'에 밑줄을 많이 그었다. 작가들을 잘 모르던 그땐 장 그르니에보다는 알베르 카뮈가 매력적이었던 것일까? 그런데 다시 들여다보니 전엔 보지 못했던 바닷가에 살았던 어린 날의 기억을 써 내려간 작가의 글이 눈앞에서 파도쳤다. 그리고 알고 있는 얼굴처럼 친근하게 나를 소개했다.
"저도 바다가 가까운 곳에서 자랐어요. 바닷바람은 늘 저를 피곤하게 만들었어요. 파도치는 바다는 밀려왔다 다시 쓸려가면서 끝도 없었거든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만들어졌어요.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지만, 갈 곳도 없었어요.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나 봐요. "
그리고 그가 예닐곱으로 기억하는 어린 시절을 따라가 보니 나도 그처럼 비슷한 몽상을 했던 것이 느껴졌다.
저 자신 속에 너무나도 깊이 꼭꼭 파 묻혀 있어서 도무지 새벽빛이 찾아들 것 같지가 않아 보이는 어린아이들도 있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여러 해 걸친 시간 속에 흩어진 꿈처럼 어렴풋한 기억이다.
눈을 뜬 채 잠자는 사람과 같은 그런 상태였다. 날이면 날마다 나는 그 음울한 벌판으로 씨앗 하나 싹트는 일 없는 그 황량한 모래톱으로 쏘다녔다.
참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길을 잃은 채, 어쩔 도리도 없이 길을 잃은 채, 눈에 보이는 별 하나 없었다. 나는 그 몽상을 마음 편하게 펼쳐가고 있었다.
- 장 그르니에 <섬>
그도 바닷가 가까운 마을에서 자랐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나열한 단어를 주어 담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의 글을 읽다 말고 제주섬에서 살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바닷가 집에서 귤밭으로 가려면 차로 삼십 분이면 도착했다. 한라산 근처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작은 숲들, 공동묘지, 수많은 오름, 나머지는 모두 귤밭이었는데, 빌딩처럼 솟은 숙대낭(방풍림)들이 귤밭을 둘러싸고 있었다.
산을 등지면 어디든 바다가 보였다. 잘 보이는 날은 푸른 물결이 만드는 하얀 파도가 끝이 없는 행군을 하는 모습이 훤히 보였다. 섬에선 역시 바다가 주인이었다. 보이는 건 오직 바다, 수평선 저너머엔 육지가 있는지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에 뜬 섬이었다. 내가 있는 곳은 그런 섬이었다.
누구도 섬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포효하는 호랑이입처럼 거침이 없었다. 나를 향해 부릅뜬 눈을 한 파도를 넘어가 보라고 놀리는 것 같기도 했다. 바다가 나를 겁주려고 했지만 나는 고향이 가족이 더 두려운 존재였다.
" 내가 섬을 떠난 이유는 내가 섬이 되고 싶어서였어요. 나만 홀로 떠있는 상태를 원했던 것 같아요. 바다는 너무 멀었고, 길은 미로처럼 복잡한 도시로 왔어요. 그런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있는 듯 오히려 모든 것이 꿈속 같았어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이 발견한 알스테르담에 살던 데카르트의 삶과 비슷할지도 모르겠어요."
사람의 왕래가 가장 잦은 대도시가 갖추고 있는 편리함은 골고루 다 누려가면서 나는 가장 한갓진 사막 한가운데서 사는 것 못지않게 고독하고 호젓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데카르트의 선택은 적절한 것이었다. 그는 생활을 완전히 개방해 놓음으로써 정신은 자기만의 것으로 간직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기분 내키는 대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예를 들어서 이름 없는 어떤 카페의 한갓진 방에서 두 시간씩이나 허송할 수도 있다. 런던에도 그런 카페들이 있다.
- 장 그르니에 <섬>
제주에서 서울 그리고 다시 난 런던으로 가는 꿈을 꾸고 있다. 그가 말하는 런던의 카페가 어딘지 물어보고 싶지만, 책에선 더 이상의 힌트는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중요하지 않았다.
우습겠지만 그건 내가 훗날 런던에서 살게 되면 차차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바다를 건너는 법은 파도를 가르는 여객선이 아니었다. 창공을 나는 여객기는 구름 사이를 날으며, 하늘 아래 바다와 끝이 보이지 않는 육지를 구경시켜 주었다.
내겐 섬을 떠난 서울 생활이 정말 자유로웠다. 그리고 어린 시절에 우리 집 말고는 없던 귤나무 숲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도시의 빌딩 숲과 아스팔트 위로 부는 바람은 예전에 알고 있던 서늘한 숲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그윽한 숲의 바람은 그리운 아빠의 얼굴처럼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안개구름이 자욱한 숲에 오래 머물렀다. 부는 바람에 안개구름은 천천히 굴려가며 이리저리 나를 부르는 듯했다. 온몸을 감싸는 숲의 바람은 몸에 배어 있는 바닷가 짠 소금도 씻겨주며 바다를 잊어버리게 해 주었다.
도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내 몸에 밴 섬의 바다 냄새는 사라져 버렸지만, 충만하고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지 찾지 못했다.
작가들이 읽었다던 장 그르니에의 <섬>을 따라 읽었더니, 나도 비슷한 섬을 찾은 듯했다. 그건 바로 글쓰기 섬이었다. 그의 책을 십 년도 넘게 들고 있었지만, 난 이제야 흔들리는 배에 올라 지도책처럼 펼쳐 들었던 것 같다.
섬을 발견하자 배는 항해를 끝내고, 다시 섬으로 들어가 나를 향한 여행을 시작했다.
막 섬에 다다른 나는 글을 쓰며 여행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