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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Oct 06. 2017

게임에서의 저장장치에 대해

현실세계 도입이 시급합니다!!!

☝︎ 100% 지금의 내 상태


  작가랍시고 브런치에 등단(...)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이 글의 마지막 저장 일자와 마지막 발행한 글이 작년 5월 중순이었다는 것을 보면 이렇게 게으를 수도 있구나 싶다. (덜덜)

  나는 그동안 현실 게임을 했다. 이 현실 세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과 같이 시작한 숫자가 변하고, 날짜 앱의 숫자를 바꾼다. 그리고 많은 선택의 순간을 경험했다. 인생사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때마다 우리는 선택에서 괴로워하기도 하고 기뻐하기도 한다. 선택의 전에 앞날을 잠깐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옷을 사기 전에도 미리 입어 볼 수 있고, 게임을 사기 전에도 체험판을 해 볼 수 있는데!


  이처럼 현실세계에서 세이브/로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본 적이 있을 것이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게임처럼 현실세계에 저장장치의 도입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 나는 이 글을 굉장히 오래전에 시작했고 나의 서랍에 '저장'을 해두었다. 그리고 '저장'을 해 둔 글을 불러와 오늘은 마무리를 해야지! 오늘은 발행할 거야!라는 포부 가득한 상태로 몇 자 두드리고, 또다시 '저장'을 누른다.



| Ctrl+S! Cmd+S!

저는 엄지와 약지로 누릅니다.


  저장이라고 하는 속성은 현재의 세계를 그대로 보존함에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재구현할 수 있음에 있을 것이다. 저장장치는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세계에서의 불안감과 걱정을 봉인하는 안식처가 된다. 그리고, 저장과 불러오기라는 장치의 유무는 가끔 게임의 존속 여부까지 결정짓는다. 실제로 나는 게임을 할 때 (가능하다면) 저장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심지어 같은 상태에서 두 번을 하는 경우도 있다. 여담이지만 나는 작업을 할 때 종종 Cmd+S를 두 번 이상 누른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저장 10회 이내로 클리어'와 같은 트로피입니다.


  저장과 불러오기라는 기능은 게임의 난이도를 결정한다.


  또한 게임의 컨셉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사실 하드웨어에서 저장하는 형태의 게임들을 제외하고, 게임에서의 저장 기능은 게임의 컨텍스트에서 발현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오래된 게임의 경우는 대부분 '메뉴'를 통해서 '저장'을 했다. 하지만 게임들이 점점 시네마틱 해지고 세계관이 정교해짐에 따라, '저장'이 가진 이질감을 최소화하려는 과제가 생겼고, 이에 따라 유저가 게임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튜토리얼이 주는 이질감과 비슷하게 '저장'과 '불러오기'의 경우에도 몰입을 결정짓는 요소 중 하나이다. 예를 들어 MGS시리즈의 경우 특정 주파수 140.96로 무전을 보내는 형식으로 저장을 하는데, 이는 게임과 현실과의 차이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무전을 보내는 행위 자체가 게임의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게임의 시나리오에서도 이를 충실히 서포트한다. '누군가'에게 임무의 기록을 보내서 '저장'한다 라는 개념으로 주파수 140.96를 사용하라고 하기 때문이다. 오오 이런 요소들이 나오면 유저는 감탄한다! 이것은 확실히 '메뉴'를 열어 '저장' 하라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주파수는 140.96


  이번 달(?)은 게임에서의 다양한 저장장치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 절대적 권력이 허용되지 않는 곳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사실 저장과 불러오기라는 것은 현실세계와 같은 리얼타임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다. 나 하나의 세계를 기록하는 것이 가능해지면, 다른 사람의 세계와의 균열이 생기기 때문이다. 마치 캡틴 아메리카의 냉동장치안에서 나만 냉동상태로 있다가, 외압과 동시에 굴러가고 있던 세계로 떨어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상의 게임 세계에서는 저장과 불러오기 기능은 없다. 현실세계처럼 평행하게 다양한 사람들의 세계가 얽혀있는 공간에서 상태의 기록은 의미가 없을뿐더러, 집행검이 넘쳐나는 세계가 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신의 권력을 가진 관리자 정도일 듯. (이 경우에는 나의 상태가 일부 버그로 인해 달라질 경우를 제외한다.)

 

 따라서 온라인 게임에서의 저장은 로그인/아웃과 같은 접속상태에 따라 나의 상태를 잠시 멈춤이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 의미는 냉동장치이며, 타임머신이 아니다.

 


|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콜라보~ㅇ


 위에서 하드웨어의 저장장치가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라고 언급했지만 개인적 관점에서의 이러한 경우가 상쇄되는 것이 하나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는 포켓몬스터 DS IP의 경우가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포켓몬스터는 명실상부 닌텐도의 킬러 아이템 중 하나다. 닌텐도 소프트 판매량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닌텐도와 포켓몬스터 소프트를 세트 구매(...)하여 내내 복작거릴 정도로 인기가 있다. 닌텐도가 포켓 덱스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지는 않았겠지만, 어린이들과 어른이 들은 포켓 덱스를 실제로 구현한듯한 존재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조그만 기계는 게임 속에서 포켓몬을 기록하고 마치 여권처럼 트레이너 신분인 나를 증명한다. 그리고 이것이 현실로 나와서 나의 여행의 동반자가 된 것이다! 오오! 실제로 포켓몬고에서는 내 손 안의 모바일이 자그마한 포켓 덱스가 되었다. 이 경우에는 하드웨어 자체가 현실세계와 연결됨으로써 저장장치의 이질감이 상쇄되었다.

 



| 저장이 가능한 공간


  지난 게임들을 주마등처럼 떠올려 보면, 대부분의 게임 내에서 기록이 가능했던 형태는 '용기'와 같은 형태이거나 나아가 '공간'이었다.


 DQDragonQuest 시리즈의 경우 대대로 저장이 '교회'라는 곳에서 가능하다. 유저는 이야기의 보존을 위해 교회로 향한다. '모험의 서'라는 기록이 가능한 형태의 오브제라고 볼 수도 있으나, '교회'라는 장소적 특성을 시리즈 대대로 이어오는 까닭에 공간으로 분류한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교회라는 존재 자체가 이미 초자연과 맞닿아 있고, 사제님이 덕담과 함께 '모험의 서'에 기록을 해준다는 것은 지친 육신과 정신을 달래기 위함이 옳다. 사제님의 뒤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많은 모험의 서가 꽂힌 책장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0.01초도 안 걸리게 나의 모험의 서를 찾아내는 능력자이시다.


 두 번째는 모든 유저들의 친구 '여관'이다. 사실 꼬꼬마 때부터 게임을 많이 해온 유저라면 간판에 'INN'이라고 쓰인 건물을 기억할 것이다. 나 역시도 ABC송과 하ㄹ와유 아임파인땡큐앤유만 외치는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단어의 모양새는 비교적 뇌리에 남았다. 나는 상당히 머리가 큰 이후에서야 그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 띵가띵가 모험가 아저씨들의 취중 노래가 들려오는 여관임을 알았다.

 

 여관은 기록이라는 행위를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여관의 마스터라는 사람은 대체로 세상 물정에 귀가 밝고 나아가 게임 밖 세상의 정보들을 흘리는 존재로, 조정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절대적인 힐링파워와 게임 세계의 시간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안식처를 제공한다. 보통 여관은(리얼하게도) 잠을 자는데 일정한 돈을 요구하지만, 데스크에 있는 방명록을 통해 저장 기능을 제공한다. 그리고는 보통 "하루 묵는데 190G고요, 묵으시겠어요? 아니면 저장'만' 하시겠어요?" 하고 물어보며, 저장만 하면 내심 아쉬워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덜덜) 그래서 나는 종종 잠과 저장을 함께 하는데, 그때는 배부른 상태에서 눕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괜스레 기부니가 좋다.



| 저장이 가능한 오브제


 보통 '저장'이라는 것은 모험자로 하여금 그 세계, 그 시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불러오는 약간의 '神權'이 발휘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절대적인 힘이 작용하는 장치로써 구현이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 장치는 Orb의 형태나, Crystal의 형태로 발현된다. 그것은 대체로 어두운 곳에서도 빛을 발하며 유저로 하여금 잠시나마 마음의 안정을 준다. 유저가 가까이 접근하면, 출처도 불분명한 장치가 발동이 되고, 게임의 세계와 동떨어진 시스템상에 기록된다. 특히 게임 디자이너의 성향이나 게임의 컨셉에 따라 저장장치가 설치된 간격은 조절이 되며, 게임의 난이도를 변화시킨다. 그때마다 나와 같은 유저들은 롤러코스터를 탄다.


  그리고 많은 형태의 종이와 같은 기록이 가능한 것들이 있다. 그것은 책이거나, 방명록이거나, 아니면 내가 가진 수첩 등의 형태로 구현이 된다. 이는 OrbCrystal보다는 좀 더 '현실적'이고 '있음직' 하다.  



| 침대라고 쓰고 최고라고 읽는다


침대가최고야짜릿해


  저장이라는 단어와 제일 맞닿아있는 '무언가'를 떠올리면 많은 유저들이 '침대'를 떠올릴 것이다. RPG를 많이 하는 나와 같은 사람 한정일 수도 이처럼 침대는 모두에게 좋은 안식처가 된다. 실제로도 낮과 밤을 불문하고 눕고 싶은 공간을 게임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야호침대가최고야) 짚 침대 건 솜 침대 건 호화로운 침대이건 침대가 주는 이미지는 확실하다.


  특이한 점은 보통 다른 사람의 공간(집, 가게 등)에서는 자는 것이 불가능하고, 본인이 소유한 공간이나 여관 등의 침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같은 침대라도 놓인 위치에 따라 기능이 다르다. 사실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가능한 게임이지만, 남의 집에서 맘대로 자는 것은 대체로 허용되지 않는다. 남의 집 보물상자는 털어도... 침대의 존재감은 가구가 아닌 과학으로, 침대가 존재하는 곳이 누군가의 공간임을 나타낸다. 침대가 있는 공간은 없는 공간보다 좀 더 '안전한' 느낌을 준다. 그것이 흰색과 나무 색인 여러 개의 픽셀의 조합일지라도, 침대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대단하다.


 때때로 게임에서 침대를 사용/조사하면 "대답이 없다. 그냥 침대인 것 같다."와 함께 이용할지 말지?를 물어본다. 시간 개념이 없는 (낮과 밤의 구분이 없는) 게임에서의 침대인 경우에는 보통 선택지가 나오지 않고, 시간 개념이 있는 게임의 경우 선택지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는 내가 지금 현재 존재하는 '시간'이 침대를 이용함과 동시에 흘러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일부 게임의 경우 쪽잠과 풀잠(?)을 선택할 수 있는데 잠이라는 게 그렇게 정확하게 잘 수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불가능하다.




  이처럼 저장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사물들은 게임 속에 여기저기 설치되어있고, 그것은 '예상 가능한' 형태로 '눈치챌 수 있는 곳에' 자리한다. 누구에게는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되고, 누구에게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안식을 구할 수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저장장치는 게임과 밀접하게 자리 잡아, 잠시나마 이 즐거운 가상의 세계에서 나의 섣부른 행동을 되돌릴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이와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며, 충실하게 나의 통제하에 새로운 세상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  

  빠르게 진행되어가는 현실 게임에 가끔은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한 때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더 치열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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