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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떨결정 May 08. 2021

어버이날, 부모에게 용돈을

왜 공부를 그만두었나.

새롭게 알게 된 사람이 왜 공부를 그만뒀냐고 물었다. 나는 돈 벌고 싶어서 그만뒀다고 말했다. 사회학 공부를 처음 시작할 때 하고 싶었던 것이 있지 않았냐고 다시 질문이 돌아왔다. 애석하게도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쉬웠다.


내가 속한 사회의 어떤 부분을 바꾸는 것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고, 이제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만 몰두하는 삶을 산다. 새삼스러운 척 하지만 사회학 공부를 할 때도 나는 나 자신을 바꾸는 것에만 집중해왔다. 사회를 바꾸려고 사회학 공부를 한 게 아니고 재밌기 때문에 했다. 학자들과 좋은 연구자들에 대한 동경과 선망, 그리고 명예욕 같은 것들이 나를 공부하게끔 했다.


남들이 바보라서 그냥 그렇게 회사 취직해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아니라, 그게 제일 좋은 선택이어서 그렇게 한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사회는 남들이 바꾸게 두라는 말을 들었다. 취직 후 일을 마치고 집에서 가만히 누워있을 때, 가만히 누워있는데 내가 무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압박과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때 이게 사람 사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돈이 부족해서 시민단체에 내는 기부금을 끊을지 말지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좋았다.


1인분의 몫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나도 알고 부모도 알게 되었다. 내가 내 생활을 책임지는 게 더 이상 자랑이 아닌 게 당연한 나이가 됐을 때 공부하는 걸 관뒀다. 아빠에게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데, 그게 진짜 진심일 때 그때의 행복이 생각보다 너무 컸다. 내가 돈을 모으면 아빠가 다음에 나이 드셨을 때 병원비를 낼 수 있겠지 하는 안도감도 컸다.


작년인가, 할머니가 요양병원에 누워서 야윈 손으로 내 손을 잡고 빚은 없냐고 물어봤다. 나는 없다고 했고, 할머니는 이제 안심이 된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가 안심했다는 것에 대해서 안심했다.


어버이 날이다. 다음 달 생활비를 걱정하지 않고 용돈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이게 몇 년 뒤에 가능한 일인지 계산하지 않고, 다음에는 내가 더 많이 이런 말 없이, 지금 당장 적당한 금액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첫 월급을 받고 용돈을 보내던 때만큼 좋았다. 너무 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만족감이어서 당황스러웠다.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만 하는 게 아닌 삶. 내가 느끼는 안도감을 부모도 느끼는 것. 데면데면 한 척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비빌 언덕이 나라고 알려줄 수 있는 것. 돈이 필요하면 어디서 대출받거나 카드론 같은 거 알아보지 말고 나한테 말을 하라고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 나는 정작 정말 돈이 필요할 때 부모나 친척이 아닌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아빠에게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줄 수 있는 것.


이런 이유로 행복하다는 것이 씁쓸하지 않다는 게 어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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