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 편지 2.
오늘 하루는 어땠니? 평범했니? 대체로 평범하지.
그게 끔찍하게 느껴지곤 해. 그 사람은 이미 없는데 평범하게 하루가 흘러간다는 게 슬퍼. 그렇지 않니?
세상이 참 가혹해. 뭔가 아주 중요한 걸 잃어버린 것 같은데 어쩌면 모든 게 무너져 버린 것 같은데, 사실 아무 일 없이 잘만 돌아가잖아. 그 사람이 떠나도 세상은 잘만 굴러가. 나도 일어나서 학교를 가야 했듯이, 너도 일상을 살아가야겠지. 밥도 먹고, 잠도 자고, 꼭 해야 하는 일인 건 아니지만 넷플릭스도 보고. 어색하지 않아? 가끔 억울하고. 솔직히 나는 내가 웃는 게 어색했어. 뭔가 기이한 느낌 있잖아. ‘아, 내가 웃고 있군’하는 자각이 몰려와서 이상했지.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도 종종 하고 말이야. 기분이 어색하다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크고 깊은 데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누군가 없는 세상을 산다는 게 싫어서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내일 눈뜨지 않길 바라도, 사람이란 눈을 뜨기만 하면 숨 쉬고, 밥 먹고, 일하고, 혹은 누워서 휴대폰이라도 보잖아. 원래 그렇게 되는 것 같아. 정확히 말하면 그래도 되는 거 같아. 어색하게 느껴질지라도 말이야. 그 일이 있기 전 세상과 이후의 세상은 완전히 달라. 당연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 사라지지.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지만 일상의 자질구레한 삶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게 힘들어. 그리고 스스로가 그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자체가 견디기 어렵고 무서워.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면 애쓰고 있는 네게 고생한다고 전하고 싶어. 가끔 그냥 갑자기 울어도 된다고도 말해주고 싶어. 갑자기 하던 걸 중단하고 쉬어도 된다고도 말해 주고 싶어. 물론 쉬면서 집에 혼자 있는 건 반대야. 그건 우울해지기 쉽거든. 내 말은 완벽하게 그 일 이전의 너를 유지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거야. 나는 유지하려고 엄청 노력했거든. 대신 부작용으로 독서실 칸막이 같은 곳 앞에 앉으면 이상한 상상을 했어. 막 갑자기 괴물들이 쫓아오거나 테러가 발생하는 그런 상상. 꿈에서는 모두가 죽고 나만 살아남는 꿈을 자주 꿨어. 그래도 학교 수업을 듣고 시험을 쳤지. 세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일상이 유지되고 있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어. 네가 약해서가 아냐. 어쩌면 일상을 유지하려고 애썼던 나보다 더 강한 걸지도 몰라. 너는 가까운 이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고 애도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는 거야. 나는 그러지 못했어. 원래 애도의 과정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부정’의 기간을 거치기도 한대. 돌이켜보면 한 3년 정도 내게 그런 일이 없는 셈 치고 살았어. 그 이후에 슬픔, 분노, 죄책감 같은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 넌 그걸 더 이르게 하고 있는 것뿐이야. 일상을 유지하지 못하는 게 당연해.
우리가 그 사람이 사라진 이전과는 완벽히 다른 세상에서 어떻게 일상을 지내고 있든 괜찮다는 걸 기억하자. 일상을 잘 지내도 괜찮고, 엉망진창으로 지내도 괜찮아.
네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내게 너무나도 큰 위로가 되었던 시의 한 구절을 소개할게. 그냥 사는 삶이 이어진다는 게 버겁게 느껴질 때도 혹은 그냥 그렇게 지나갈 때도 있었어. 가끔은 누구를 붙잡고 울기도 하고, 대체로 혼자 웅크려 숨을 골랐어. 아주 아주 깊은 절망감이 느껴질 때면 마지막에 늘 이 시를 떠올렸던 것 같아. '그러나'라는 단어가 힘을 준다는 게 신기했지. 네게도 전달되길 바라.
돋아나는 잎들
숨가쁘게 완성되는 꽃
그러나 완성되는 절망이란 없다
그만 지고 싶다는 생각
늙고 싶다는 생각
삶이 내 손을 그만 놓아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 '고통에게 2' 중에서, 나희덕, 『그곳이 멀지 않다』, 문학동네, 2004
나는 이제 모두가 죽고 나 혼자 남겨지는 꿈같은 건 꾸지 않아. 대체로 꿈 없이 숙면을 취하지. 난 종교를 믿지 않지만 너도 오늘은 그러길 기도할게.
2022년 9월 16일